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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동상담사가 추천하는 관계육아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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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지혜 Sep 06. 2023

느린 기질의 아이 부모님께

괜찮아요.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 사회에서 뭔가 "빨리빨리"하면 칭찬을 받거나, 뛰어난 아이라는 평을 받는 듯하다. 걸음 떼기, 말하기, 기저귀를 떼기가 친구들보다 빠르면 느린 엄마들의 부러움을 산다.

조금 더 크면 어린이집 적응, 유치원 적응, 학원 적응 등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시간과 적응과정이 화두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헤어지는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이 빠르다고 칭찬을 받는다. 엄마와 떨어지는 데 오만 년, 어린이집 문 턱을 넘는데 삼만 년 걸리는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에 대한 걱정의 눈빛을 받는다.

더 크면 이 학원 저 학원, 이 학습지 저 학습지 등으로 한글을 배워야 하고, 요즘은 영어도 같이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유치원도 잘 다니는데 학원까지 척척척이면 부모는 뿌듯 뿌듯하고 어깨뽕(?)이 올라간다. 그런데 한글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학습지 선생님을 만나고, 학원에 가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는 아이들이 있다.

뭐 하나 시작하는 게 왜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어요.

아기 때 문화센터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까요.
다른 애들 다 천사 날개하고 있는데
우리 애만 제가 안고 있었어요.

키즈카페에서도 다른 애들
우르르 뛰어가는데
우리 애만 제 옆에 앉아서 한 2~30분은
앉아 있다가 가서 놀아요.

제한 시간 다 돼서 나가려고 하면
못 놀았다고 불만이에요.
그럼 문 열었을 때부터 놀면 되잖아요.

상담센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 대부분 이런 내용은 아이가 느린 기질일 경우가 많다. 느린 기질은 발달이 느리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달은 빠를 수도 있다. 느린 기질은 영어로 "Slow-to-warm-up temperament"라고 쓴다. 즉, 발달이 느린 것이 아니라 warm-up 이 느린 것이다.

warm-up을 "준비"라고도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적응" 또는 "수용"이라고도 이해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

키즈카페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부모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신나는 놀잇감으로 향해 뛰어가는 아이를 보고 싶다. 주변의 아들은 키즈카페 입장부터 들떠서 문이 열리자마자 원하는 곳으로 우르르 뛰어간다. 그런데 우리 아이만 내 옆에 앉아 있다. 분명 아이가 오고 싶어 해서 온 것임에도 벤치에 앉아 커피 마시는 엄마 아빠 옆에 앉는다. "가서 놀아 네가 오자고 해서 왔잖아"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쭈뼛쭈뼛 뭉그적뭉그적 앉아 있다가 과자하나 사달라고 한다. "다 먹지도 않으면서 꼭 사달라고 하더라. 이러다 시간 돼서 나갈 때 다 못 놀았다고 울지 마"라고 속 터지는 말을 뱉는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더 난감하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나는 느린 기질이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내가 오자고 해서 왔지만 벤치에 앉아 오늘의 공기, 분위기를 눈으로 익혀야 한다. 귀로는 음악소리, 아이들 소리에 적응해야 한다. 특별히 놀고 싶은 분야를 찾아야 하고 살펴야 한다. 온몸과 감각으로 이곳에서 놀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움직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계속 가서 놀라고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자를 하나 사달라고 했다. 먹으면서 아니 먹는 척하면서 조금 더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제 온 뭄으로 이곳이 적응이 되었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40분이 지났다. 제한 시간이 2시간이니까 1시간 20분 놀이야 한다. 이상하다.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만족스럽게 충분히 놀지 못한다. 그래서 나갈 때마다 아쉽고, 울고, 혼난다.

문화센터도 마찬가지다. 부모 입장에서는 매주마다 와서 천사, 애벌레, 난쟁이 등 깜찍한 캐릭터로 변신하고 신체 활동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경쟁률이 높아서 앱을 열고 5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오픈되자마자 빠른 터치로 신청했다.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 첫날 안 들어가겠다고, 안 하겠다고 버텨서 40분 내내 안고 있었다. 둘째 주, 셋째 주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캐릭터 변신은 한 번도 못했다. 문제는 얼마 전부터 40분 지나서 다 집에 가는데 그때 캐릭터 입고 싶고, 신체활동 하고 싶다고 한다. 강사님도 정리하셔야 하고 다음 타임을 위해 나가야 하는데 난감하다. 활동 다 끝나서 남들 다 벗을 때 입으려고 한다. 아오...

아이 입장에서 보면 40분 내내 다른 아이들을 보며 적응하고 있었다. 모자가 있구나. 날개도 있구나. 한 바퀴 뛰어서 엄마에게 안기는 활동이구나. 눈과 귀로 살피고, 온몸으로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 다 적응되어서 입으려고 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다 벗고 있다. 꼭 하고 싶은데 어쩌나....지난 주에도 이랬는데...

도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반 친구들과 함께 키즈카페 놀러 가서 난감하지 않으려면 3시에 키즈카페에서 반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면 2시에 미리 가길 추천한다. 한 시간 동안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고 3시에 친구들이 오면 만족스럽게 놀 수 있다. 문화 센터 역시 전 타임에 가서 창문으로 그 날의 캐릭터 옷과 활동 내용을 보고 다음 타임에 들어가는 식으로 다니면 아이가 적응이 다 되어서 들어가서 캐릭터 옷이 낯설지 않다.

필자의 쌀둥이 자녀 중 한 아이는 느린기질이다. 비가 오늘 날 갑자기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면 어색해서 등원하기 힘들 수 있기에 미리 연습했다. 집에서 우비도 입어보고 우산도 써보고 외출도 해보며 비 오는 날 등원을 대비하였다. 조금 더 커서 줄넘기 학원을 다니기 위해 2주 전부터 줄넘기 학원 시간에 맞추어 가서 구경을 하였다. 2주 정도 구경하고 나니 적응되고 그 곳이 수용되었다. 사실 줄넘기를 잘 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욕구였다. 줄넘기 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다니기 힘들어 한다. 처음 시작이 낯설어서 어려운 부분을 민감하게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학교 입학 전 부터는 집에서 다닐 학교까지 도보로 산책 하였다. 3월에 낯설 길로 등교하며 긴장감을 느낄 아이를 위해서 그 길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였다.

넉넉하고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아이를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 비가 오늘 날 등원은 해야 하고, 아이는 우비와 우산에 적응이 안 되서 징징대면 점점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충분한 시간과 안전함을 경험하면 점점 그 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고 스스로 견디면서 적응을 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중요 포인트는 천천히 조금씩 삶속에서 경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는 같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 삶의 맥락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모든 기질이 그렇지만 느린기질은 더욱 이해하고, 수용하고, 생활 속에서 잘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라면서 그 어느 날 사회에서 원하는 적당한 시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재촉한다고 빠르게 되지 않고, 다그친다고 빠릿빠릿해 지지 않는다. 기질은 타고 난 것이다. 그러니 "속 터진다. 빨리 빨리 안 하니" 라고 한 숨 쉬며 대하지 않길 부탁한다.

덧 붙이는 말 : 답답함 이해합니다. 아이의 에너지 수준, 성격, 성향, 양육환경, 생활 태도,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고, 느린 기질만 바라 본 글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빠른 한국 사회에서 느린기질의 아이를 기르며 힘든 부모님이 계시다면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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