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요정'은 볼수록 매력을 더하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안녕달’님의 그림책이다. '안녕달'님의 그림책에는 처음 보면 약간 거부감이 들 정도의 모습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안녕’이라는 그림책에서는 희멀건 빛의 분홍 소시지도, 이곳저곳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들도 그다지 예쁘거나 귀엽지 않다. 소시지는 무표정하며 색은 바래 있고, 할머니들은 입가와 눈가의 주름이 그대로 드러나고 등허리는 굽었다. 보고 있으면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판타지를 넣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그런데도 큰 표정의 변화 없는 희멀건하고, 무뚝뚝한 표정에 주름만 늘어버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 만난 무언가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적인 그림과 따뜻한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한다.
‘쓰레기통 요정’에서 '요정님'은 어느 날 ‘짠’ 하고 쓰레기통 속에서 태어난다. 얼굴에 버려진 장난감 보석 반지를 끼고서. 몸은 동글동글하며, 색깔은 무지갯빛이다. 쓰레기통 요정의 무지갯빛이 하도 찬란하여 요정이 머리에 끼고 있는 반지가 아무런 색이 없어 보일 정도이다. 오동통한 몸에 화려한 무늬를 가진 요정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여리고 귀여운 요정님은 아니어서 처음 볼 때는 조금 실망스럽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 쓰레기통 요정‘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소원인 듯하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지갯빛으로 크게 말한다.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러운 쓰레기통과 무언가 요정 같지 않은 요정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거나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쓰레기통 요정은 너무 슬프다. 그래서 엉엉 운다. 그때 또 엉엉 우는 아이가 나타난다. 쓰레기통 요정은 언제 울었냐는 듯 금방 힘을 내어 아이에게 ‘소원을 들어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가 버린 곰 인형을 찾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쓰레기통 요정의 전문분야가 아닌가. 엄마가 버린 헤지고 더러워진 곰 인형을 금세 찾아준다.
그렇게 시작된 요정의 엉뚱하지만 진심을 담은 소원 들어주기가 계속된다. 요정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죽하면이라면 말이 나올 정도로 짠하고, 요정님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들어주는 소원의 결과는 멋들어지고 완벽하기보다는 웃기고 안쓰럽다. 쓰레기통 요정의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귀 기울인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소원에 요정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쓰고 있던 보석 반지를 드린다. 자기는 이거 없어도 괜찮다고 다른 거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떠난 후 요정님은 캔 뚜껑을 머리에 쓰고 있다. 반지가 사라지면 요정님이 사라질까 봐 걱정했는데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동그란 뚜껑에 위로 삐죽 올라간 마개를 쓰고 진지하게 다음 소원을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요정은 화려한 보석반지를 쓰고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한 무지개색으로 변한 듯했다. 요정은 여전히 소원을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처음에 태어났을 때보다 어쩐지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된 것 같다.
이렇게나 외양이 중요하다. 머리에 뚜껑 하나 달라진 것으로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어떤 이야기가 없이 갑자기 보석반지에서 병뚜껑으로 바뀌었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짐작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석반지보다는 병뚜껑이 아무래도 덜 화려하니 다양한 나쁜 쪽으로 이어진 생각이 가능하며 결국 요정님을 불쌍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요정님이 어떤 이야기를 거쳐 병뚜껑을 쓰게 되었는지. 그래서 내 눈에는 이전보다 더 예쁜 요정님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언제나 힘을 준다. 자세히 사연을 들여다보며 오래 보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야기를 모르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예쁜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안녕달'님이 우리가 보지 않고 있던 귀 기울이지 않고 있던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주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것들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행복을 선물하는 쓰레기통 요정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꾸깃꾸깃 버려진 종잇조각들로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스레 빚어낸 이 보석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작디작은 존재가 선사하는 절대 작지 않은 기쁨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버려진 영수증이나 로또 종이를 작게 찢어 만든 배경이라던가, 휴지와 노란 종이를 이용한 빛 표현이 이야기 속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쓰레기를 모아 붙여진 배경 위에 만들어진 무지개색 요정님은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다가 무지갯빛으로 씩씩하게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할 때는 웃음이 터진다.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아저씨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서 자기 몸에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동전을 가득 들고 왔을 때 요정님이 배에 새겨진 ‘王’을 보면 깔깔 웃게 된다. 읽고 있으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무지개가 내 몸을 휘감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레기통 요정'을 통해 쓰고 난 뒤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버렸던 많은 것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책 소개를 읽다가 작가 소개를 본다. 작가님은 이름도 필명을 쓰시더니 얼굴도 가리고 사진을 찍으셨다.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 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저 멀리 바닷가 마을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습니다.’라는 소개에 그곳이 어딘지 너무나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작가님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도 작가님이 사는 고향을 추측할 거리가 더는 없었다. 대신 작가님의 그림책처럼 이상한데 귀엽고,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쪽이 몽글몽글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림이 가득하다. 작디작은 존재가 선사하는 작지 않은 기쁨을 글과 그림으로 전하는 작가님의 세계가 오래오래 많이 지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