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 안의 소녀'는 단편 중에서도 짧은 편이다. 두께도 얇고 글자 수도 얼마 되지 않아 책은 금방 넘어가는데 전해주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 세계도 좋지만, 그보다 아무도 외롭지 않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의 제일 마지막의 작가의 말이다. 보통 나오는 작가의 말은 적어도 한쪽 분량은 되는데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는 작가의 말마저도 한 줄 요약으로 표현했다. 짧은 한 문장은 책을 다 읽고 보면 작가가 '원통 안의 소녀'에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가의 말도, 이야기도 길지 않은데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읽고 나면 묘한 성취감이 들게 하는 것도 소설 첫 만남 시리즈의 장점이다.
우리는 단편소설을 읽을 때 대부분 단숨에 읽는다. 한 페이지에 가득 글을 담고 짧게는 10쪽 길게는 3~40쪽이면 이야기가 끝이 난다. 장편과 다른 단편만의 매력이 있다. 읽고 나면 늘 마무리가 되지 않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그런 찝찝함이 단편의 매력만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원통 안의 소녀'를 비롯한 '소설 첫 만남'시리즈는 그런 단편의 매력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 그냥 단편집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읽는다면 한 페이지에 적어도 3 문단 이상이 들어갈 것이다. 들어있는 그림도 빼고, 글자크기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에 나오는 크기로 줄인다면 대략 20쪽 정도의 분량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무려 82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웹툰, 그림책의 양식을 조금씩 혼용하여 쓰고 있다. 소설처럼 이야기를 쓰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웹툰처럼 말풍선을 넣는다.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장면은 글을 줄이고 그림으로 표현한다. 사이사이 그림을 넣고 문단을 장으로 나누니 글을 읽는 호흡이 느려진다. 한쪽을 읽고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생각의 시간이 길어진다. 책은 마치 시의 연을 나누듯 책의 문단을 장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설정이 조금 더 책에 몰입도를 높인다.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이 문학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설의 첫 만남’은 문학적으로 뛰어난 단편소설에 풍성한 일러스트를 더한 새로운 소설 읽기 시리즈로서 2017년 처음 출간된 이래 많은 독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어 왔다.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소개글 중에서>
'원통 안의 소녀'에는 모든 것이 인공으로 통제되는 완벽한 미래의 도시에서 원통 안에 살아야 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도시는 지구온난화와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어로이드'라는 신물질을 개발하고 매일 도시에 분사한다. 그런데 소녀는 오염된 도시에 꼭 필요한 에어로이드에 알레르기가 있다. 첨단의 세상에서는 이 소녀에게 에어로이드가 차단되는 원통을 만들어 준다. 소녀는 이제 외출을 할 때면 원통을 타고 다녀야 한다. 일반인들과 신체적 접촉은 불가능하다. 소녀는 이전 세상에서는 평범했겠지만 에어로이드가 뿌려지는 세상에서는 장애인과 같다. 사람들은 호기심과 불편함,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소녀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기계로 완벽한 보완을 한 것 같지만 원통 안에 들어가 있는 소녀는 소외감을 느낀다.
소녀의 이름은 지유 그녀가 어느 날 원통으로 움직이다 실수로 에어 로이드 분사기를 망가뜨린다. 그리고 노아를 만난다. 노아는 도시의 안전을 위해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분사기 파손을 눈감아 주는 대신 무언가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둘은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카메라와 스피커로 연결되어 소통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유는 노아의 소망을 실현시켜 준다. 비 오는 날에만 원통에서 나올 수 있는 지유와 의료용 클론으로 제작된 노아는 도시 안에 소속되지 못하고 있다. 둘은 소속되지 못함의 공통점으로 가까워진다.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두 아이의 모습은 현재의 어느 곳에서도 만난 것 같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봤었다. 1998년 대작을 감상하며 내린 결론은 그런 것이었다. 왜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 아닌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남다른 생각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통 안의 소녀'를 읽고, 두 아이를 보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문득 그때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은 실격당한 인생이라고 표현되는 장애인들과 사회 소외 계층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냥 사람(홍은전)'은 실격당한 사람과 동물들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며 편안하게 늙어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은 차별과 혐오가 나, 너 그리고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왕진가방 속 페미니즘(추혜인)'은 서울 은평구에서 살림 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추혜인 의사가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녕 커뮤니티(다드래기)'는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동네를 배경으로 노인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함께 걸어 나가는 이야기로 그 안에서 재개발의 방향, 외국인,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까지 버무린 만화책이다. 나는 이 책들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원통 안의 소녀'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바로 이 책들과 연결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소외감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기를 꿈꾸는 이야기들 아닐까? 국가가 여러 명이 희생하는 것보다 라이언 일병이 그냥 죽도록 두는 선택을 했다면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처음에는 나처럼 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자꾸만 생겨난다면 나도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것이다. '원통 안의 소녀'같은 도시가 되지 않았다면 소녀는 '특별한 대상'으로 취급받지 않을 수 있었다. '라이언 일병'도 전쟁에 징병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청년으로 여생을 살았을 것이다. '특별한 어떤 사람이나 대상'이 되는 일은 개인적인 불행으로 생길 수도 있고, 국가적인 재난, 세상의 변화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생겨난다.
그런 일들이 생겼을 때 내가 속한 사회가 나를 이해하고 보호해 준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당연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완벽하게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사는 사회는 유토피아라고 생각될 수 도 있다. 정답이지만 영원히 우리 손에 잡아서 가져갈 수 없는 그런 것을 우리는 '유토피아'라고 부르지 않나? 완전한 유토피아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치열하게 이런 고민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외하지 않으려는 대상 또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나 또한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았을 그때와 시선이 달라졌다. 작가가 바라는 세상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는 일은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위해 이렇게 표현하고 보여주는 김초엽 작가와 같은 사람들이 있고, 이를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