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미스도 사랑을 원한다. 그것이 불같은 사랑이던 은은한 뚝배기 같은 사랑이던 사랑이 다가오는 것에 거부감은 없다.
처음부터 결심하여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나이를 먹다 뒤늦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사람도 있다. 또 대부분 많은 여자들이 본인의 발전을 위해 젊은 시절을 노력하다 보니 오드미스가 된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결혼을 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아이 한둘은 있는 부모가 되어 있다. 그 모습이 문득 부러워질 때가 오면 결혼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결혼 적령기인가? 정신적 성숙이 늦게 온 건지, 육체적 욕망이 늦게 온 건지 오드가 되어 찾으려고 하면 주변은 온통 유부남들 뿐이다. 연하를 만나기에도 쉽지 않고 내 또래의 남자는 나보다 많이 어린 여자를 찾는다. 그럼 위로 3~4살을 올려 찾아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문득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본인의 육체가 최상의 가치를 발휘할 때 한 껏 꾸며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란 말인가? 그렇게 결혼한 친구들이 지금 아이들의 엄마, 부인으로 살고 있는 삶과 내가 매일 회사에 몸 바치며 일하고 승진과 자기 계발, 재테크 등을 공부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삶과 비교도 해보게 된다. 정말 혼자인 시간 동안 자기 발전이란 명목으로 공부한 것이 인생의 도움이 되었을까? 빨리 결혼하여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좋은 인생일까? 둘을 비교하는 거 자체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가끔 비교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때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지금 비록 내 옆에 나와 함께 걷는 동반자가 있던 진실로 혼자이던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자. 아마도 그게 등 떠밀려 한 기분이거나 그때 한 결정이 너무 성급했다는 후회도 필요 없다. 언제나 인생에서 선택은 스스로 했고 그 결과도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한 사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나와 함께 동행해줄 동반자를 늦게라도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상대도 그런 삶을 살아온 남자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굳은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 사람을 찾기 의한 과정이라 생각하자. 오드미스가 바라는 건 내가 이룩한 만큼보다 더 많은 것을 쌓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와 같이 평범하게 본인의 삶을 택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은 이미 세상에서 종말 한 거처럼 느껴진다.
평범이란 무엇일까? 중간. 수학 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모인 그룹과 낮은 학생들이 모인 그룹에서 중간은 과연 같을 수 있을까? 오드미스 집단의 평균은 과연 어디에 맞춰져 있을까? 더구나 계속 자기 발전을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라면? 오드미스는 자기들의 평범하다의 기준을 결코 낮게 봐서는 안된다. 내가 노력해 온 만큼 평범의 기준이 더욱 높아져 있을 수 있기에 평범한 사람을 찾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 일수도 있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평범한 사람이 안 나타난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내 평범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도 평범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평범한 사랑을 찾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