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허윤진 - Raise y_our glass
- 15% [ 핸드메이드 야채 키링 ] -
야채 키링? 귀여운 제목에 도저히 버튼을 안 누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15%나 할인하고 있다니. 버섯, 당근, 가지 등등 하찮은 양모 펠트의 야채 모양 키링들이 오밀조밀한 눈과 입을 달고 있었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어떤 모양을 사야 잘 샀다고 소문이 날까. 제일 귀여운 게 뭘까? 한참을 고민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다 한 키링을 보고 잠시 멈췄다. ‘와인 청포도’. 이야. 너무 귀엽네, 이거 사야겠다. 커플 키링을 할까? 우리한텐 의미 있는 거니까. 사지 말까? 오빠가 키링을 걸 곳이 이제 더 이상 없다고 하긴 했는데… 아니야. 그래도 의미 있는 거니까 하나 사줄까? 하잇 고민되네.
와인 청포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단어다. 엄밀히 말하면… 포도주! 포도주를 생각하면, 그때 그 밤이 기억난다. 와인잔에 따라진 포도주처럼 투명하고도 연붉은 마음이 넘실대던 밤. 왕왕 울음이 터진 어느 날이었다. 나를 배려해 준 그와 달리,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해달라고 찡찡거렸다. 내 모습이 너무 어린아이 같았고, 떼를 쓰는 내게 짜증 한 번을 내지 않고 차분히 설명해 준 그에게 고마웠다. 그는 울음이 터진 나를, 있는 힘껏 꽉 안아서 달래줬다.
내 눈은 쓸데없이 솔직한 편인데. 조금만 눈시울이 붉어져도 눈 밑이 통통~하게 부어올라, 함부로 울었다간 된통 들키는 눈이다. 조금만 눈물을 똑! 떨어트려도 눈이 붓는데, 으앙- 울었으니… 아마 사람 눈은 아니었을 거다. 그의 어깨가 아주 축축-하게 젖어갈 때쯤(오빠 미안), 통통해져 잘 보이지 않는 눈 틈 사이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나를 보고는 자꾸 귀엽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가 귀엽다는 건지. 이 정도면 그의 눈도 제구실은 못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엽다고 말해주니, 더 눈물이 났다. 귀엽다고 말해줘서 눈물이 난 건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가면 하나 없는 내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는 그가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차갑고, 까다롭고, 예민한.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였달까. 그게 그냥 나인 줄 알았는데. 떼도 쓰고, 울기도 하고, 마냥 웃고 있으면 문득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까지도 예뻐해 주는 그 사람 덕분에, 본래의 내 모습을 찾게 된 것 같아 감사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이 모습에 반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지?”
“응?”
“내가 일 잘하고, 차가운 그 모습에 반한 거잖아. 근데 지금은 바뀌었으니까. 근데 어떻게 이런 모습까지 좋아해 줄 수가 있지?”
“있잖아, 옛날에 한 대학 종교학 시험에서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에 어떠한 영적인 중요성이 담겨 있는가’에 대해 쓰는 시험이 있었대. 근데 한 학생이 답을 안 쓰고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랬더니 교수가 그 학생한테 빨리 한 줄이라도 쓰라고, 안 쓰면 F학점이라고 한 거지. 그랬더니, 그 학생이 딱 한 줄을 쓰고 나갔대. 근데 그게 그 시험에서 1등을 했대. 뭐라고 쓴 줄 알아?”
“음… 물은 원래 포도주다?”
“아니”
“음… 뭐라고 했는데?”
“물이 주인을 만나 얼굴을 붉혔다.”
“우와….”
“그니까, 나는 민서를 만나서 포도주처럼 이렇게 변한 거야. 나는 민서의 차가운 모습도 좋고, 이런 따스한 모습도 너무너무 좋아.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그날,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나를 만나서 변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하며, 그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물론, 울음 끝이 매우 짧은 사람이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바로 웃었지만. 히히. 나야 뭐. 맨날천날 울어대니까, 울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그가 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떨어져, 혼자일 때면 끝도 없는 불안감과 그리움이 올라와 나를 못살게 굴었는데. 이후로 그가 울며 해준 말을 떠올릴 때마다 괜찮아졌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에게서 ‘확신’이라는 걸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겠지만, 투명하고도 연붉은 그 사랑스러운 마음을 오래도록 내 와인잔에 담아 함께해야겠다.
아아, 그래서 이 키링 살까 말까. 그래 오빠랑 떨어져 있을 때마다, 이 키링 보면 추억이 떠오를 테니까, 좀 비싸더라도 사자! 오케이. 구매하기 클릭하고, 옵션 들어가서, 와인 청포도 클릭. 오케-…
에이씨, 품절이네. 에라이~
(결국 못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