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신인류 – 작가미정
갈아먹으려고 산 냉동 애플망고가 조각째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지금 화딱지가 잔뜩 났기 때문이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냉동 애플망고는 사르륵 녹아 재빨리 사라진다. 먹고 나면, 기분 좋을 만큼의 달콤함만이 입안에 머문다. 왜 이렇게 화딱지가 났는가 하면. 그래, 맞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근데 그렇다고 또 뭐 엄청 불행한 것 같진 않다. 불행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닌 그 어디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행복의 반대말이 꼭 불행은 아닌 것 같다. 시련과 고난이 닥쳐 불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실실 웃음이 날 정도로 행복하지 않은 일상도 많으니까.
그저 그런 듯한 일상이 반복되는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었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아무 일도 없으면 된다.’ 항상 그렇게 최면을 걸었다. 그러곤, 내 인생 최악의 사건들을 떠올리며 불행하지 않은 지금을 위안으로 삼았다. 달콤하지도 않고, 씁쓸하지도 않은. 그저 촉감만이 살아있는 그런 하루들. 질겅질겅 고무를 씹어 삼켜내듯 버텼다. 어떤 일이든지 내가 힘들고 아파야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면, 내게 노력의 기준은 고통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가. 별로 불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과가 좋게 나오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노력도 안 하고 나온 성과가 반갑지 않았다. 항상 마음 한편에는 ‘완벽’이라는 돌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게, 자꾸 나 자신을 무너뜨렸다.
항상 남들보다 느렸던 사람이었기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만큼이라도 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이 정도면 내 꿈은 마법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문을 걸었다. 그러고 나면, 반복되고 지치는 일상도 꽤 견뎌낼 만한 일상이 되곤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뭐, 공부한다고 유세다 유세야. 내게 뱉은 말들을 모아서 한 구석으로 치워두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앨 수가 없는 슬픔이었다. 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 골칫거리인, 알갱이 같은 마음이었다. 그 알갱이가 조금씩 모이고 쌓이더니, 큰 돌담 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치울 생각도 없었다. 돌담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딱히 엄청나게 행복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 돌담이 슬픔인지도 몰랐다. 그냥 마음을 만드는 벽 정도? 부서질 수도 있는 벽이라는 걸 몰랐던 거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최근에 그 벽을 허물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처음으로. 행복은 찾아지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거였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행복이 느껴졌다. 이 녀석, 생각보다 별거 아닌 놈이었다. 녀석을 찾는 방법은 꽤 쉬웠다. 예를 들어, 그와 이야기하다가 불쑥 같은 말을 했다거나,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는데 생각 보다 맛이 있다던가, 방귀를 뀌었는데 운 좋게 냄새가 안 났다던가, 같이 걷는데 유난히 발걸음이 잘 맞았다던가. 그런 소소하고도 소중한 것들. 꼭 고오급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요즘 핫하다는 핫플을 가지 않아도. 그와 함께라면 찾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행복을 잘 느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불행이 더 잘 느껴진다는 것. 평소에 당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기가 싫어졌다. 왜 이렇게도 하기가 싫어지는 건지. 돈 많은 백수를 꿈꿔본 적이 없는데, 해파리처럼 물에 둥둥 떠다니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불행을 많이 느낀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행복이 더 잘 느껴진다는 것.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닌데. 두 감정은 왠지 많이 닮아 있었다. 행복할 때면, 불행할 때가 떠올랐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이 두려웠다. 불행할 때면, 행복할 때가 떠올랐다. 행복하던 때도 있었으니, 언젠가 다시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나는 익숙한 불행을 찾으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행복하면 금방 두려워질 테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날 안아주며 불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하긴 당연한 아픔이라는 건 없었다. 누군가는 즐겁게 일하면서도 성과를 내고, 누군가는 재밌게 공부하면서도 성적을 낸다. 물론, 그 누군가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애써 우울한 누군가가 될 필요도 없었다. 그걸 참 늦게 깨달았다.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그의 손길에 힘을 내, 처음으로 그 돌담의 돌을 하나씩 두드렸다. 조금씩 떨어지는 알갱이를 열심히 닦아냈다. 울퉁불퉁하고 모난 알갱이를 주워다가 실로 꿰었다. 비슷한 애들이 둥글게 모이니, 제법 빛이 났다. 자꾸 쌓아두지만 말고, 가끔 꺼내서 팔찌라도 만들어야겠다. 그래, 쌓이면 팔찌나 만들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눈앞을 가린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곁을 지켜준 사람이 보인다. 슬퍼 울어도, 두려워 짜증을 내도. 내 마음의 작은 구석에서 언제든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 사람. 가만히 지켜봐 주는 사람. 내게 정말 고마운 사람.
행복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가게가 생긴다면, 이른 새벽 내 잠을 줄여 가면서 줄을 서야겠다. 그런 다음, 막 나와서 가장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한 행복을 그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나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곁을 지켜준 그에게, 가장 맛있고 기쁜 행복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
(띠링 - 가게 문이 열린다)
- 실례합니다. 혹시 행복을 파는 가게가 맞나요?
(https://youtu.be/3 FxIZ53-XZc 글의 제목은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을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