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가 행복을 몰고 올 거야.

bgm : 최유리 - 이것밖에

by 민서


날씨가 정말 좋았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멈춰서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을 꺼낼 만큼. 마음이 흐려서 그런가. 더 좋게만 느껴지는 게. 마음이라는 게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마음도 저 예쁜 구름처럼 몽실몽실 떠다니다가, 어디론가 흘러가 주었으면. 저 구름은 벌써 저기까지 날아갔는데, 이 작은 바람으로는 내 구름이 흘러갈 수 없나 보다. 모든 구름은 언젠가는 날아가지만, 그 구름은 꽤 오래 머무른 먹구름이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떠 있던 먹구름. 자꾸 시도 때도 없이 내리니까. 우산을 써도, 장화를 신어도. 비를 온전히 막을 수가 없어서. 조금씩 튀어나오는 빗물을 받아내기도, 벅찼나 보다.


사랑만 하고 싶었는데. 사랑이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깨닫게 된다. 너무 좋은 사람일수록, 내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 알게 되니까.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물웅덩이에 비친 온 세상이 울렁대는 건지, 내 눈가에 물웅덩이가 생긴 건지. 흐릿해져 바라볼 수 없는 앞을 새까만 우산으로 가려본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고작 이런 사람 밖에 아닌 나를, 바라보는 너는, 안 힘들까. 같이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 어딘가는 젖을 수밖에 없을 텐데. 괜찮을까. 네가 나로 인해 이 폭풍우 속에 같이 뛰어든 건 아닐까. 새까만 우산 속에 서 있던 내 모습조차 마주하기 힘들었는데, 같이 걸어가는 너의 팔이 젖어 들어가는 걸 봐버리고 말았다. 너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다. 네가 자꾸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게, 자꾸만 젖어 들어가는 게. 난 괜찮지가 않다.


놓아줄까. 같이 해결해 보자고 너는 말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몰아치는 이 폭풍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폭풍우에 너를 가두고 싶지 않다. 놓아줘야겠다. 자꾸만 이 빗속에 뛰어드는 너를 이만 놓아줘야겠다. 놓아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 남은 용기가 있던가. 너와의 사랑에 그 많던 용기를 다 써버렸나 보다. 나는 폭풍우 속에서 바닥난 용기를 도저히 채울 수가 없었다. 혼자 서 있으면 폭풍우인데, 너랑 서 있으면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함께 걸을 순 있으니까. 난 이 폭풍우 속에서 네가 없이 살아갈 용기가 없는데. 용기가 채워지지 않아 네가 필요한 나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이기적인 사랑이지만, 함부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없이 살 수 없으니까. 고작 이런 마음밖에 보여줄 수 없는 나를, 남겨진 모든 걸 꾹꾹 눌러 담아 너에게 준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놓아줄게’라는 말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용기를 낼 힘도 없어서 철부지처럼 다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런 구질구질한 나를 보고도 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주먹으로 내 머리를 콩 때렸다. 그리고는 빈틈없이 안아줬다. 아무래도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이렇게 좋은 네가 떠날까 두려워, 스스로 만들어낸 폭풍 우였나 보다. 이렇게 염치도 없이, 이런 순간에도 나는 네가 좋다. 눈물로 가득 찬 폭풍우라도 너와 함께이고 싶다. 네가 옆에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떠날 용기가 사라져만 갔다. 네게 있는 용기라도 써줬으면 해서.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고, 이렇게 별로인 사람이라는 걸 구차하게 설명했다. 이런데도 날 사랑할 리가 없을 거라며 말렸다. 너는 네게 말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공자나 노자처럼 성현을 만나지 않았겠느냐고. 나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 내게 넌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널 사랑하는 거고, 그걸로 되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너는 한결같이 말재주도 좋다. 폭풍우 속에 울고 있는 나를, 매번 이렇게 끄집어내는 걸 보면.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걸 보면.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또 지나갔다. 솔직히 또 다른 폭풍우가 언제 어떻게 쏟아질지 모르겠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너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마 나는 더 아프게 될 것 같다. 나의 연약함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두려워하고. 또 반복하겠지. 아무리 예상하고 추측해도 엇나가는 기상청 일기 예보처럼. 이 비가 언제 내릴지, 언제 그칠지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그렇지만, 그런 아픔도 너와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너의 팔이 젖지 않도록 네게 기대면,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주는 너처럼. 나도 용기를 내봐야겠다. 어떤 폭풍우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내 옆엔 언제나 네가 있을 거고.


그 비는 행복을 몰고 올 테니까.




최유리 - 이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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