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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Oct 17. 2022

살면서 꼴찌 해보셨나요?

1순위는 연봉 1억이라고요.

인생을 살면서 꼴찌를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중 누가 더 많을까? 당연히 안 해본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다. 어디에서나 꼴찌는 유일하게 온니 원, 한 명뿐이다. 꼴찌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꼴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하기 어렵다는 꼴찌를 오랜만에 경험한 날이었다.    

 

꼴찌라는 단어는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깝다. 그래서 가급적 피하고 싶다. 꼴찌의 심경은 남다르다. 일단 남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은 기본, 스스로 느끼는 비참함이 동반된다. 이러한 심리적 상처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으며, 어쩌면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이불을 차게 만들 수도 있다. 꼴찌를 안 해본 사람도, 사실 떠올려보면 어느 순간 꼴찌라는 비참함은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처음에 7명으로 시작했던 풋살 클럽 멤버가 15명이 넘어선 이후 감독님의 새로운 고민이 추가되었다. 풋살 기술 연마보다 어렵다는 연습경기 편 나누기. 매번 감독님이 알아서 공평하게 나눠주셨지만, 오늘은 달랐다.     

에이스 두 명 나오세요.
자, 절대 상처받지 마시고요, 한 명 씩 선수를 뽑아가면 됩니다.     

이건 무슨 운동선수 선발 드래프트도 아니고 뭐지? 실력 있는 사람을 일 순위로 뽑아 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데, 이걸 여기서 쓴다고요?      


1순위는 연봉 1억입니다.    

진담 같은 농담이 들린다. 마지막 6순위 연습생은 연봉 2500만 원이다. 설마, 내가 연봉 2500만 원짜리는 아니겠지. 아무리 재미로 하는 거지만, 다들 표정이 진지하다. 선수 실력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그것은 바로 팀 승리로 직결되기 때문에 재미로 뽑을 수 없다. ‘그래도 5순위는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한 배경에는 내가 풋살 클럽에 등록한 이후에 3명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믿음인가. 풋살 실력이 가입 순이라 믿고 싶은,  꼴찌만은 안돼 하는 처절한 마음이었다.


두려움 속에 한 명 씩 차출되었고 예상(?)한 순서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남은 사람은 이제 4명뿐.


‘어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가 저 사람보다 잘 뛰고, 공도 더 잘 차잖아요.’  난 곧 뽑힐 것처럼 맘이 두근두근했다. 그때 주장 언니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장 부주장 모두 나 말고 객관적으로 나보다 못하다고 내심 생각했던 사람을 뽑아가는 것이 아닌가. 헉. 그렇게 나는 2... 1... 텅 빈자리에 쓸쓸히 꼴찌로 남았다. 잘하고 싶었던 풋살에서 꼴찌를 경험할 줄이야.     

꼴찌로 뽑혀서 인지, 내가 꼴찌인가 하는 분노와 나는 꼴찌가 아니야 하는 자신감이 폭발하였지만, 실력은 폭발하지 못했다. 넘치는 의욕에 비해, 실력은 따라가지 못하니 매 순간 공이 발을 조금씩 비껴갔다. 난 연봉 2500만 원짜리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경기 내내 따라다녔고, 정말 내 실력은 그보다 한참 떨어졌다.     


만약 꼴찌가 아닌 조금 더 일찍 뽑혔다면 고마운 마음에 내 실력보다 더 열심히 뛸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차피 실력은 똑같으니 다를 게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꼴찌한테 네가 꼴찌야 확인사살을 하니 의욕도 떨어지고 그나마 있던  의욕도 사라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뜻밖의 경험을 선사해준 풋살 수업.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꼴찌의 남다른 소회.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한 단계씩 올라가면 되지 뭐. 애써 위안을 해보지만 소용없는 듯하다.

 

두 번 다시 꼴찌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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