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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Oct 18. 2022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중학교 풋살팀과 경기를 합니다.

매번 수업이 있는 화, 목요일은 아침부터 설렌다. 저녁에 있을 풋살만 떠올려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풋살 수업을 잊지 말고 꼭 참석하라는 찐한 당부의 문자를 보면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때, 남편의 비극적인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일이 많아 야근할 수도 있다는 것. 어찌 됐든 남편의 야근은 막아야 한다. 집에 일찍 와서 밤에 일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전 하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헐레벌떡 퇴근한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풋살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 아저씨(?)들하고 우리 언니들하고 시합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목소리가 앳되다. 몸놀림이 가볍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눈동자가 커져 버렸다. 누구예요? 물어보니 감독님이 가르치는 중학교 풋살 클럽 선수들이란다. 오늘 친선 경기 차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체격부터가 우리랑 달랐다. 기본 170이 넘는듯한 키에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날쌘 몸의 소유자들이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고 끊임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공을 잡자마자 빠르게 패스하거나 골대로 드리블하고 슛까지 연결하는데 채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굉장히 빠르고 공격적인 팀이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쑥쑥 커가는 중닭 같은 그들에 비하면 난 뚱뚱한 엄마 닭 같다. 날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마음이 급하고 숨차서 동료 이름 부르는 것도 경기 중 겨우 한두 번이다. 공격적인 플레이는 무슨 기본기도 매우 딸리는 상황. 다행히도 우리 팀에는 에이스 언니들이 있고 감독님이 같이 뛴다고 하니 그래도 선전하지 않을까 긍정적인 기대를 해본다.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 언니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감독님이 진짜 선수처럼 뛰는 바람에 우리 팀 에이스가 되었고, 주장 언니는 평소에 아껴두었던 실력 발휘를 하였다. 우리끼리 하는 것보다 속도 빠른 선수들하고 하니 언니들의 기량도 한껏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같이 후보로 응원하던 언니가 말했다. 잘하는 팀이랑 하면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노력하니 결국은 잘하게 된다고. 언니는 벤치에 머무는 시간에도 근육 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아킬레스건을 풀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몸을 움직여본다.     

지치지도 않는 체력의 중학생(?)들과 평균 나이 40-50에 육박하는 아줌마들의 대결은 예상외로 막상막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교체 멤버에 나도 투입이 되었다. 중학생 아이들과 상대하다 보니 너무 빠른 경기 흐름에 공 잡을 기회도 없을뿐더러 어쩌다 한번 공을 잡고 슛을 날렸는데 야속하게 골대를 크게 벗어났다. 공이 어찌나 빠른지 중간에 커트하는 것도 어렵고, 그 좁은 풋살장에서 내가 있을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몸을 날렵한 그들을 따라잡을 스피드가 없으니 수비에 조금 더 열중하게 된다.     


자꾸 죄송할 일이 생기고, 스스로 위축되니 실수가 계속된다. 이거 괜찮은 건가? 싶어 전반전이 끝나고 주장 언니에게 상대편이 너무 잘해서 자꾸 쪼그라든다 하소연하니 언니는 담담하게 말한다. 잘하는 팀 하고 연습하면 나중에 덜 잘하는 팀 하고 붙었을 때 여유롭게 공 찰 수 있다고. 오늘 한번 경험해보라고 말이다. 나도 10년쯤 공을 차면 이렇게 여유롭게 말할 수 있을까.      


경기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숨이 턱 끝까지 찬 것보다 구린 내 실력을 직접 보는 일이었다. 아니 이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상대방이 너무 잘하니까 내가 더 못나 보이는 경험. 겪어보지 못하면 절대 알지 못할 감정이다. 너무 오랜만에 이런 비루한 감정을 겪다 보니 마음이 덜덜 흔들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더 내려갈 데도 없는데,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엉뚱한 생각이 피어난다. 이미 알고 있는데 뭘 새삼스레 없는 실력 탓을 하나. 오늘은 이렇게 뛰어보는 거지 뭐.


그날 결과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들과의 경기가  자극이 되어 조금  풋살을 잘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었다는 . 평소에 숨기고만 싶었던 내 모습 오랜만에 마주했고, 지고 싶지 않다는 것. 완벽한 연습 없이는 이기는 실전이 없다. 결국 이기는 경기는 완벽한 연습의 결과다.


그럼 이제 연습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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