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렸다
작년쯤인가 독립 극장에서 엄청 졸았다. 극장에서 졸았던 적은 얼마 없는데, 몇 해 전 마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볼 때는 상영 시간의 절반을 곯아떨어졌다. 팝콘을 입에 물고 잠들었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번 '라파엘로, 예술의 군주'는 달랐다. 수십 번 졸았지만 그때마다 1~3초의 찰나만 졸았다.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는 순간 다음 순간엔 자막을 읽으며 영화를 쫓고 있었다. 어쩌면 졸음은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든 리셋 버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격한 관객이 아니다. 재미없거나 흥미 없는 영화를 억지로 참고 보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본다. 재작년 개봉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혹평 일색이었지만 한 달 만에 상업 장편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생겨 극장에 갔다. 내 생각에 영화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유머 코드가 내 취향과 맞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 시리즈를 오마주 하고 패러디하며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응원하고 싶었다.
'라파엘로, 예술의 군주'는 이탈리아의 자부심이 짙게 배인 다큐멘터리였다.
우리나라의 단원 김홍도 선생님이나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국보급 인물이라는 수식어가 화면을 수놓았고 장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예술혼'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나는 그 와중에 졸음과 싸웠다. 자세를 고쳐 앉고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차렸다. 티켓 값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정신을 붙잡았다. 덕분에 자막과 대사와 그림을 놓치지 않았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를 다룬 영화는 그를 '신이 모든 재능을 몰아준 자'로 묘사했다. 자연이 숨죽일 정도로 조화롭다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처럼 '신이 사랑한 사람'이라는 맥락과 같았다. 그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의 작품은 공학처럼 정교했고 대칭적이었다. 색채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고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또렷했다. 인물들의 표정은 감정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담아냈다. 괜히 라파엘로가 3대 거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극장에서 비생산적인 존재였다. 변명하자면 근래 야근이 잦았다. 새벽에 책을 읽었고 퇴근 후 8시까지 매일 운동했다. 주말도 반납하며 일했고 상영 한 시간 전까지 일을 마쳤다. 극장은 적당히 어두웠고 에어컨은 시원했다. 의자는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아서 내 침대 매트리스 같았다. 내레이션은 낮고 잔잔한 외국인 성우의 목소리였고 더불어 단조로운 클래식 음악이 배경을 채웠다. 이쯤이면 웬만한 사람이로면 졸음을 참기 어려울 만했다.
하지만 이 졸음은 단순한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려온 내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였다. 시간을 쥐어짜 극장에 갔지만 몸과 정신은 고요한 휴식을 원했다. 그 덕분에 라파엘로의 작품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작품이 스크린에서 움직이듯 편집된 장면들이 졸음과 겹쳐지며 매직아이처럼 살아났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림이 더 또렷해졌다. 이상했지만 내겐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졸음 속에서도 예술을 붙잡으려 했던 그 순간. 나는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산에 올랐던 날을 떠올렸다. 등산은 내게 낯선 도전이었다. 평소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무작정 산행에 나섰다. 정상 근처도 못 간 산 중턱에서부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땀은 비 오듯 흘렀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친구의 격려와 함께 한 발 한 발 간신히 내디뎠다.
정상에 올랐을 때 펼쳐진 풍경은 잊을 수 없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감싸고 바람이 온몸을 스쳤다. 그 순간의 피로는 내게 삶의 신호였다.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그 길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라파엘로의 영화 속 졸음도 그와 같았다. 피곤한 몸으로 극장에 앉아 있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졸음 사이사이 라파엘로의 그림을 만났고 그 선명함은 등산 후 본 구름처럼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삶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짜를 찾는 과정이 예술이고 삶이다.
과거 독립영화 촬영 스태프로 세 번 일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붐마이크 겸 음향 담당이었고 한 번은 조감독이었다. 또 한 번은 B팀 감독으로 모회사 직원 모집 광고 영상을 찍었다. 그런 내가 이 글을 쓰며 졸음에 대해 변명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이 글은 수필이라기보다 일기에 가깝다.
원래는 다른 이야기를 쓰려했다. 속상했던 기억을 꺼내려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오늘은 라파엘로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작품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존재의 본질을 담았다. 그래서 3대 거장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하늘의 구름이 아름다웠다. 형체 없는 부드러운 덩어리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등산 후 보았던 그 구름과 닮아 있었다. 라파엘로가 아무리 천재여도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자연의 일부다. 자연이 아름답다면 나도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다. 이 생각은 엉뚱하지만 다정한 위로로 다가왔다.
졸음은 죄가 아니다. 삶의 신호다. 예술 앞에서 눈을 감았던 그 순간이 오히려 예술이 내 몸 깊이 스며든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졸았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었다. 피곤한 몸으로도 예술을 보고 싶었던 마음은 진짜였다. 어쩌면 그런 순간이 예술이 가장 깊이 들어오는 시간일 것이다. 등산길에서 만난 구름처럼 졸음 사이로 본 라파엘로의 그림은 내게 삶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