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

매일 생각하는 문장이지만, 큰 글씨로 눈에 띄니 더 속상한 문장이다.

by 선풍기

잠든 아이의 배가 오르락내리락 평화롭게 숨을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오늘도 나의 반성일기가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아기에게 집중했나?”
“오늘 혹시나 힘든 게 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닐까?”
“상처는 햇빛을 많이 보지 않았을까? 로션은 잘 발라준 건가?”

어릴 적 과학실험을 하고 나서 나 쓸법한 고찰 일기를 매일 저녁 잠든 아이를 보고 써 내려가고 있다.



아이가 18개월이 된 어느 날, 코로나 확진을 받아 가정 보육을 하고 있는 힘들고 힘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재택을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울려대는 업무용 전화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하루 종일 아픈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픈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나는 “육아”를 하는 것보단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열이 나고 먹지 않으면 탈수 증세가 올 수 있어서 물을 계속 마시게 하고, 한 끼도 먹지 않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나 고민스럽지만 정답은 없었던 숨 막히던 순간들.


그러던 날 들 중 아이가 화상을 입게 되었다.


곰국에 국수를 넣어주면 잘 먹는다는 이야기에 코로나 확진 받기 전 사둔 사골을 팔팔 끓여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고, 잠시 생선을 굽는 사이 아이가 손을 담갔다.

찢어질듯한 비명

상황 파악을 하고 옷을 바로 벗겼다. 그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눈물 콧물 범벅인 아기가 추울까 봐 반팔을 입히고 119에 전화를 했다. 화상 열기를 빼주라는 상담사의 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빼주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열기만 빼주라는 그 말이 어찌나 야속한지
또 나는 왜 응급 처치 방법조차 알아두지 않았을까? 여전히 밤마다 괴롭고 슬픈 순간이다.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이 왔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이 30분은 걸렸나 보다. 엉엉 우는 아이를 안고 카시트도 채우지 못한 채 어떤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접수대에서 아기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아이가 첫 코로나에 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사고가 생길줄은 몰랐지..


“코로나 확진은 진료 못 봅니다”

아..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찢어지게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근처에 화상 외과를 가보라면서 병원의 주소와 이름을 알려주는데.. 어차피 거기도 코로나 확진이라 진료를 못 보는 건 매한가지인데 매뉴얼대로 한 조치였을 텐데 참 야속하고 슬픈 현실이었다.아기의 찢어지는 울음소리에 콜을 받고 내려온 소아과 선생님이 이대로 어떻게 보내냐며 응급조치를 해주셨다. 진료실은 들어가지 못하고 작게 마련된 대기실? 같은 곳에서 받은 처치였지만 그때 그 의사선생님의 행동이 살면서 내가 받은 제일 큰 행운이지 않았을까.

집에 오는 길에도 울음이 멎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항생제 가득 거기에 코로나 약까지 먹을 수 있는 약은 다 먹고 잠든 아이를 보니 가슴이 찢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손목에 깊고 진하게 남은 흉터.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생생한 장면. 아기의 울음소리.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아이에게 평생 갈 흉터를 만들어줬다는 무거운 형벌이 나에게 생긴 것이다. “나는 정말 엄마의 자격이 없다” 오늘도 잠든 아이의 손을 마사지하면서 돼 새기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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