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줄 곧 집 별채에 지어진 작은 조립식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작업을 이어오던 중, 부산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작업의 방향이 그림에서 설치로 많이 전향이 되었다. 그러면서 공간의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고 새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마침 아버지 지인분이 운영하시던 철강회사의 안 쓰던 공장 창고를 빌려 쓸 기회가 생겼다.
여느 공장들과 다르지 않게 그 창고는 마을에서 떨어진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 그리고 건너편은 공장의 외국인노동자 숙소, 뒤편은 철강공장이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철판을 자르던 공장이라 야간근무들을 하시는 날에는 12시까지도 철이 탕탕 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며, 나는 깊숙한 공단의 고요함을 만끽했다. 주변은 논밭뿐인 그곳에서 새벽의 적막한 산새 소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나더러 "무섭지 않냐"라고 물었지만 무서움은 없었다. 작업실 지천에 널린 망치와 삽 등으로 나 자신 하나는 보호할 자신이 있어서일까. 그런 걸 생각하면 담력 하나는 큰 편인 듯하다.
그렇게 물도, 화장실도 없는 작업실에서 어쩌다 보니 4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은 남자뿐인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빌렸고, 물은 그 숙소에서 호스를 연결해 끌어왔다. 작업실 옆으로는 작은 내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더워서 그곳에서 세수를 하기도 하고 손을 씻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내천은 동네 구정물이라는 구정물은 다 흘러 보내는 곳인 것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창고는 담벼락도 없는 뚫린 공간이었고, 비가 오면 물이 새기도 했지만,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름에는 문을 열고 작업하다 보면 개구리들이 들어와 개굴거리는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 번은 12시가 넘어가던 새벽 무렵, 목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중년의 남자가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왔다. 깜짝 놀라 망치를 집어 들고는 “누구세요?!”라고 외쳤다.
"아, 지나가다 불빛이 보여서 와봤소. 혼자 뭘 하고 있소?"라며 태연하게 물었다. 어이가 없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니, 그제야 그는 “난 여기 동네 이장이오”라고 했다. 동네 이장이라면 밤중에 무례하게 불쑥 찾아와도 되는 건가? 그는 한참을 둘러보더니, 망치를 들고 경계하는 내 태도에 슬슬 눈치를 보고 나갔다. 그때가 작업실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한적한 작업실에서 몇 년 뒤, 창고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왔고 1년 동안 다른 작업실을 알아보다가 지금의 작업실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습은 것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업실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지금의 작업실은 그 낡은 창고에서 불과 200m가 떨어진 공간에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께 듣고 알게 된 건데, 내가 태어난 동네가 바로 이 작업실이 있는 동네라는 거다. 참 묘한 인연 아닌가?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게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작업실은 화장실, 수도, 전기, 공간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런데, 이 완벽한 작업실에 앉아 있을 때면 가끔 그 공간이 떠오르곤 한다. 허름한 공간, 개구리울음소리 가득한 여름밤, 불쑥 찾아온 동네 이장과의 묘한 긴장감까지. 불편하고 거칠었지만,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특별했던 그 공간이 지금도 종종 그립다. 그 창고가 때때로 그립다니, 참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조건이 다 있다고 해서, 꼭 마음에 완벽하게 맞는 건 아닌가 보다. 지금의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기에 작업까지도 완벽하게 좋아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 낡은 창고가 생각날 때면 슬며시 밖으로 나가 멀리서 바라본다. 불편하고 거칠었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웠던 그 공간.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어줬던 그곳이 문득 그리워진다. 결국 완벽함이란, 모든 게 다 갖춰진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가장 편안한 곳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