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밀려 빛 못보는 부르고뉴 악파
부르고뉴 공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르네상스 음악은 전쟁과 무역으로 인해 나라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범 세계적인 양식으로 화려한 변신을 합니다.
15세기 중반의 작곡가들이 주로 작곡했던 장르는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어요.
세속 샹송
모테트
마니피카트
미사 통상문
그런데 저는 이게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모테트만 르네상스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나고
샹송은 우리가 아는 샹송과는 조금 다른, 프랑스어로 된 시에 붙인 모든 다성음악이고요,
마니피카트는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로 미사 때마다 불렸고요,
미사 통상문은 중세 때 살짝 지나간 것 같기도 하나,
미사 때마다 매번 바뀌지 않고 불리는 음악이라네요.
부르고뉴 악파의 작곡가들은 2 명만 기억하시면 돼요.
기욤 뒤페(1397년경~1474)와 질 드 뱅수아(1400년경~1460) 선생님이네요.
많은 업적을 남긴 세대인데 이 두 작곡가만 알면 되니, 참 쉬워요, 잉?
기욤 뒤페는 1395~1400년대 즈음에 태어나 15세기 중반에 활동을 하신 "원조" 할아버지이십니다.
부르고뉴 궁정에 고용된 적은 없었지만, 명예 음악 감독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셨지요.
어릴 적, 프랑스 북부 캉브레 대 성당 성가대원으로 훈련을 받고,
이탈리아의 피자로 궁정, 페라라의 궁정에서 봉직했고,
로마의 교황청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요.
뒤페는 많은 여행을 통해, 국제적인 양식의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데요,
일단, 세속 음악을 교회음악과 같이 다성음악으로 작곡하셨습니다.
발라드와 비를레라는 이탈리아 세속 음악들도 작곡하셨지만, 대부분은 샹송을 작곡하셨습니다.
우리가 외국 나가 있으면 이상하게 김치 먹고 싶고 고국이 그립듯이
뒤페도 이탈리아에서 고국의 샹송이 그리웠나 봐요.
그래서 대부분의 뒤페의 샹송은 이탈리아에서 근무할 때, 프랑스어로 작곡했다네요.
나라 떠나면 다 애국자 되나 봐요.
뒤페의 샹송들의 대부분은 3 성부였고, 87개를 남겼다는데 아주 드물게 4 성부 곡도 있다네요.
재미있는 것은 뒤페의 작품들은 대부분의 부르고뉴 악파들의 작품들과 같이
영국의 옥스퍼드 대 박물관의 "보들리언" 사본과 "트렌트" 사본에 남아있다는데,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들이 영국 박물관에 남아있다는 게 특이하네요.
뒤페는 캐논적이지 않은 모방 기법을 쓴 첫 번째 작곡가라는데요,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하는 돌림 노래 있지요? 그 노래처럼 계속 캐논으로 돌아가는 기법을
안 쓰는 듯, 쓰는 듯 또 안 쓰는 척하면서 음악을 이어가는 기법을 만든 "원조" 라네요.
나중에 바흐가 이 형식으로 작곡을 해서, 바흐의 작품들을 분석하며 뒤페가 언급되지요.
또한, 뒤페의 샹송은 기악음악과 함께 했으며,
모테트나 미사처럼 가사가 모든 파트에 다 있지는 않고 파트를 옮겨 다니며 기악과 함께
노래했다 연주했다 하며 훨씬 자유로운 형식으로
성악 독창 내지는 듀엣, 그리고 기악 간주의 형식을 썼다고 하네요.
뒤페는 물론 모테트도 썼지요. 뒤페는 2가지의 아주 중요한 기법을 그의 모테트에 적용하였는데,
바로 "동형 리듬 모테트"와 "포브르동"입니다.
1436년, 피렌체 대성당 봉헌을 위해 작곡한 4 성부 모테트에
동형 리듬(아이소 리듬이라고 아시는 게 이해가 더 빠릅니다)을 썼는데
아이소 리듬은 간단하게, "여있다 리듬"이라고 생각하시면 아주 간단합니다.
각 파트마다 똑같은 리듬이 여있다! 여있다! 하고 손을 든다고 생각하면 되는
똑같은 리듬이 각 파트마다 반복되는 모테트의 중요한 작곡 기법이고
이 기법 또한 뒤페가 원조라네요.
뒤페의 또 다른 모테트의 중요 기법은, 영국의 "디스칸트" 기법에서 따온 "포부르동" 이라네요.
뒤페는 이 기법을 모테트에 적용해 화성적으로 사용했어요.
이건 그냥 멜로디 3도나 4도 위, 혹은 6도 아래로 병행하게 악보로 기보한 것이고요
영국의 디스칸트 기법과 비슷하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포부르동이라고 부르며
모테트와 찬미가(이게 마니피카트이지요) 등에 사용하였다네요.
뒤페의 업적은 끝이 나지를 않는데요, 종지라고 하는 곡의 끝맺음을 기보 하기 시작한 것도 뒤페가 원조,
세속적인 가사를 모테트에 붙이기 시작한 원조 할아버지도 뒤페,
그래서 심지어 16세기부터 모테트가 라틴어가 아닌 종교음악에 편입돼서,
궁정 등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연주가 되기 시작했다니, 지금까지의 업적만 해도 어마어마하네요.
뒤페는 미사도 작곡을 했지요. 그런데 뒤페는 "원조"인 만큼 통일도 좋아하셨나 봅니다.
모테트에서 여있다 리듬으로(아이소 리듬)으로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부여하더니,
미사에서는 정선율 미사(캔투스 퍼머스 미사)로
미사 통상문의 5악장(키리에-글로리아-크레도-상투스-베네딕투스-아뉴스 데이)을 통일시켰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미사의 각 악장의 테너 성부에 똑같은 멜로디들을 넣어서,
누가 봐도 이건 같은 미사의 곡들이다 하고 알 수 있게 합니다.
심지어 샹송 음악을 미사에까지 쓱 넣어 세속 음악과의 콜라보도 주도하시고,
테너 밑에 베이스를 넣어 미사는 4 성부를 기존으로 하는 것을 또 통일시키시고,
각 악장의 첫 부분에 똑같은 선율적 동기를 붙이는 "동기 미사"를 작곡하여 전체 미사를 통일시키시는,
"원조"가 일상인 통일왕 이셨네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뱅수아는 선량 공 필립(선한 공작님이라는 뜻이라네요)의 밑에서 일하신 궁중 음악가이십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음악보다는 샹송을 비롯한 세속 음악을 더 많이 작곡했다네요.
그의 샹송은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전통을 따라 정형화 된 사랑 시에 음악을 붙였는데요,
론도 형식(론도란 ABACADAEA 이렇게 자꾸 똑같은 음악이 반복되는 것)이 대부분이라네요.
지금까지 알려진 뱅수아의 60여 개의 샹송 가운데는,
3 성부의 샹송이 주가 되고요,
수페리우스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자리에는 사랑의 시로 된 가사가,
나머지 2 성부는 악기가 연주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랍니다.
예외적으로, 가사가 2개의 성부에 붙여지기도 하고,
옥타브를 뜀뛰며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기법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종지에는 아래위 파트가 같이 줄 맞추는 것 같이 5도로 올라가는 병행 5도 보다는 옥타브를 선호했다고 하는데
이건 들어도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
대부분의 샹송들은 기악 반주의 독창곡들 같은 형태고요,
특히 뱅수아의 곡들은 나중에 기악곡으로 많이 편곡돼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
뱅수아도 모테트와 미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5악장의 전곡 형태의 미사는 남아있지 않고요,
남아있는 뱅수아의 미사 작품들은 대개 단악장 형태로 남아 있다네요.
3 성부 모테트도 남아있기는 하나, 굉장히 보수적인 기법으로 쓴 것으로 보아, 초기 작품인 듯해요.
영국의 포부르동 기법(화음을 넣는 기법)을 이용해
단선율 성가를 3 성부로 편곡한 모테트, 콘트라 팍툼을 이용한 모테트가 있다네요.
콘트라 팍툼이란 원래의 가사를 다른 가사로 바꾸어 부르는 것으로,
대중가요에 찬송가 가사 붙여 부른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13세기의 트루베르들이 종교곡을 개사해서 부르던 전통에서부터 시작됐다니, 무척 옛 기법이지요?
이 기법은 16세기, 종교개혁 후 세속 선율에 종교적인 가사를 붙여 성가로 쓰기 시작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네요.
부르고뉴 악파는 부르고뉴 공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결혼과 전쟁을 통해 프랑스로 합쳐지면서,
부르고뉴 악파의 전통과 기술은 플랑드르 악파에게 전수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