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욕고불만 03화

(2) CONNARD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2)

by Fernweh

CONNARD / CONNASSE [꼬나ㅎ/꼬나쓰]


얼음의 신이 점점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빙하가 녹는 속도는 빨라져만 간다고 한다. 신이 되가지고 고작 얼음 하나 간수하는 일을 그르치고 있으니 그는 가히 빙신(氷神)이라 불릴만하다. 이런 빙신... 사실 빙하가 녹는 문제야 우리 손으로 망쳐버린 환경 탓이고, 신을 더 농락했다간 천벌을 받을 테니 농담은 여기까지. 갑자기 빙신 타령을 한 이유는 발음을 약간 달리 하여 내뱉는 그 욕, 종종 얼음의 신을 칭하는 발음 그대로 하기도 하는 바로 그 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CONNARD’는 비읍 시옷 욕을 뜻하는 단어다. 앞서 피똥 쌀 때를 떠올리며 혼잣말로 ‘putain, putain!’하던 것과 달리 저주를 퍼부을 상대를 정확히 지칭하여 하는 욕이다.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상대방을 콕 짚어야하기에 이 욕은 아주 쉽게 외울 수 있다. 상대를 ‘꼬나’보며 ‘CONNARD!’라고 외치면 된다.


물론 발음을 자세히 보면 히읗이 하나 덜렁 놓여 있다. 하하 호호 웃을 때의 히읗 음가와는 전혀 다른, 가래 뱉듯 성대를 긁으며 끌어 올리는 히읗 소리다. 고상함의 대명사 프랑스어와 거리가 먼 유일한 발음이 조악한 이 소리를 내게끔 하는 알파벳 ‘R’의 발음이다. 익숙해지면 그리 어렵지 않은 발음이긴 한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 R발음을 어려워한다. R소리가 아직 익숙지 않은 이에게 ‘Connard’ 옆에 나란히 자리한, 누가 봐도 같은 뜻일 ‘Connasse’를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만, 아쉽게도 두 단어는 뜻은 같지만 쓰임새가 달라 바꿔 쓸 수 없다. 뜻의 차이 없이 소리만 살짝 다른 ‘빙신과 병신’같은 것일 텐데 왜 바꿔 쓰지 못하냐면, 한국어에는 없는 문법이라 처음 마주했을 때 꼬나볼 수밖에 없는 불문법인 명사의 성(性)때문이다. ‘명사를 남성과 여성을 구분한다.’라... 우리말에서 성이 나뉜 욕을 떠올려 보면 사실 아주 쉽게 떠오른다. ○○놈, ××년 말이다. 근데 명사에 붙는 문법적인 성은 개념이 다르다. 이를 테면, 책상은 여성 명사고 볼펜은 남성 명사다.


요즘 유튜브 영상에 자주 삽입되는 사극의 한 장면, ‘이게 뭔 개소리야.’ 짤이 바로 떠오른다. 한국인인 나로선 존재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문법이다. 문법적 성의 존재 이유를 속 시원히 대답해줄 프랑스인도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라고 한국어 문법 전부를 속속들이 설명해낼 수 없듯이. 그러니 그저 외울 수밖에. 분석, 추론보다 암기에 특화된, 수능 사탐 영역 중 무려 세 과목을 역사를 선택한 내게 명사를 구분해 외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프랑스어를 꼬나본 이유는 외우면 외울수록 불어나는 예외 때문이었다. 불어라서 예외도 그렇게 불어난 건진 모르겠다만...(죄송합니다)


문법, 즉 규칙이기 때문에 일정한 시스템은 있다. ‘e’로 끝나면 여성 명사라거나 하는 규칙. 근데 ‘age’로 끝나면 남성 명사다. 앞서 붙은 규칙을 다시 읽어보니 ‘대체로’라는 부사가 붙어 있다. (한숨) 학문적 관점에서 명사를 분류하는 정도라면 언어학자도 아니니 공들여 외울 필요가 없겠다만, 명사에 붙는 말이 그대로 성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암기해야 하는 사항이었다. 감기던 눈을 다시 부릅뜨고 꼬나봐야 했다.


‘connard’ 역시 명사다. 즉, 남성을 꼬나볼 때와 여성을 꼬나볼 때 각각 다른 얼음의 신을 소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표제에 ‘connard’ 옆에 달린 ‘connasse’의 정체가 드러났다. 고의로든 실수로든 남자에게 ‘connasse’하면 그의 남성성에 하자가 있다는 모욕까지 덧붙일 수도 있진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효과는 전무하다. 오히려 욕을 날린 화자가 명사의 성도 구분 못 하는 천치라고 여겨지기에 십상이다. 욕조차 성별을 구분 짓는 단계를 거쳐서 해야 하니 나오던 욕도 다시 들어갈 판이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자꾸만 남성과 여성의 갈림길에서 멈칫멈칫하다가 어느 순간 내 성별마저 헷갈리는 단계에 봉착할 때가 있었다. 상대뿐 아니라 화자 자신의 성별에 따라서도 단어를 구별 지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남자라서 날 칭할 때 성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 (불어를 공부하는 여자분들께 소소한 위로를 표한다...) 그러나 여자 청자와 광속의 랠리로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이 명사는 남성 명사로 써야 하는지 저 명사는 여성 명사로 써야 하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는 경험도 했다. (너무 옛날 작품이라 제목을 검색해봐야 했던) <로망스>의 명대사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에 프랑스식 과장을 곁들이면 “난 여선생이고 넌 남학생이야.”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차, 선생이란 뜻의 ‘professeur’는 여성형으로 변화시킬 순 있지만, 남녀 모두 저 단어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명사의 성을 구분하라더니 이번엔 또 양성이 한 단어만 쓰는 단어도 있단다. 역시 불어는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꼬나봐야 제맛이다.


우리말엔 명사의 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욕에는 또 성을 구분 짓곤 한다. ‘놈’, 그리고 ‘년.’ 확실히 후자가 속된 어감이 더 짙다(고 한다). 농담으로 ‘예끼, 이놈아.’는 괜찮아도 ‘이 년아.’는 뭔가 농담이라기엔 심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자꾸 문장에 괄호를 붙여 인용문인 척한 이유는 내 개념이 프랑스어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문법적 개념이 적용된 프랑스어로는 여성에게 여성을 욕하는 단어를 쓰는 게 당연한 이치다. 물론 여성이 남자보다 약자라는 인간의 공통 정서상, 욕하는 상대가 남자가 아닌 여자일 때 더 몰상식해 보이는 건 똑같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남자에게 connard, 여자에겐 connasse를 하는 개념으로 년(여성)에게 년이라 했다가 싸늘한 눈초리를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농담조로 ‘이놈 보소?’라는 말을 한 상황에서 친구가 여자라 ‘이 년 보소?’라고 했다. 단순히 놈을 년으로 바꿨을 뿐, 더한 모욕을 주려했다거나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친구는 그 단어 자체를 불쾌해했다. 평소에 더한 욕도 주고받던 친한 사이였는데도 그랬다. 그렇다고 ‘이놈 보소?’하긴 좀 이상하다.


주저리주저리 요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 이유. 성 이야기를 꺼냈더니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 대결’ 양상이 떠올랐기 때문.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우리 진영이 더 이익을 봐야한다는 아집에 이르기 전에 ‘남자’, ‘여자’ 자체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서로서로 꼬나보는 행태가 나아지지 않을까. ‘connard’를 [꼬나ㅎ], ‘connasse’를 [꼬나쓰] 그대로 말하는 게 당연하듯이. 여기서 가타부타할 사안은 아니니 이쯤에서 글은 마무리 짓는다.


크로크 무슈 & 크로크 마담. 무슈 = Mr., 마담 = Mrs. 음식에도 성을 갈라 이름을 붙일 건 뭐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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