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독볶이 01화

독.볶.이 PROLOGUE

'독'백으로 '볶'은 '이'야기 PROLOGUE

by Fernweh

독백으로 볶은 이야기

prologue – 꼬꼬독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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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패러디한 장면입니다


[작은 테이블이 무대 가운데 놓여 있다. 주인공(솬)은 비스듬히 앉아 있어 관객에겐 왼쪽 얼굴만 보인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하나가 건너편에 삐뚤게 놓여 있다]


솬: (책 두 권을 테이블에 툭, 놓으며) 이 책들, 본 적 있니?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맨 위에 있는 책은 목정원 작가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야. 작가는 공연 예술을 전공했다고 해. 그래서인지 한 꼭지에서 희곡 작가인 배삼식 선생님을 언급하더라고. 마침 그때 우리나라 희곡을 좀 읽어보고 싶어서 흥미롭게 읽은 꼭지였어. 이 책에 희곡집이 소개되어 있으니 겸사겸사 그 책도 찾아서 읽어 봤지. 그게 바로 아래에 놓인 <배삼식 희곡집>이야.


[암전]


솬: (책 세 권을 테이블에 툭, 놓으며) 웬 외국 서적이냐고? 파리에 살 때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읽었던 희곡들이야. 국내에선 <정의의 사람들>로 번역된 알베르 카뮈의 <le justes>, 그 옆에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le rinochéro>, <코뿔소>라는 희곡이야. 둘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


[암전]


솬: (책 한 권을 테이블에 툭, 놓으며) 러시아 고전을 접해봤다면 작가 이름이 굉장히 익숙할 거야. 안톤 체호프. 이 책은 그가 쓴 희곡 <바냐 아저씨>야. 체호프의 글은 이전에 읽어 본 적은 없어. 책 꺼내 놓고 정작 읽어본 적 없다고 하니 부끄럽네. <바냐 아저씨>도 사실 영화 때문에 알게 된 작품이야. (핸드폰 화면에 한 영화 포스터를 띄워서 보여주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이 연극배우인데, 그가 영화에서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고 연기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 영화도 참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연극적인 요소도 인상 깊었던 터라 영화를 본 뒤에 <바냐 아저씨>도 읽어 보게 되었어.


[암전됐다 잠시 후 조명 ON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 주인공이 덩그러니 선 채로 대사를 이어간다]


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이름하여 ‘꼬꼬독’. 한 번쯤은 보셨을 SBS의 한 방송을 패러디해 봤어요. 여러분께 제가 왜 이 글을 희곡의 독백으로 쓰는지 알려 드리고자 과거의 세 장면을 일련의 과정처럼 선보였답니다. 누구든 경험해보신 적 있으시죠?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거기에 소개된 또 다른 책을 읽게 된 경험. 책이 책을 이어준, 그러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죠. 희곡에 관심이 생기면서 예전에 읽은 프랑스 희곡 작품부터 <배삼식 희곡집>과 <바냐 아저씨>까지 줄줄이 읽게 되었답니다. 마치 알고리즘에 이끌린 것처럼요.


이러한 독서의 끝에는 언제나 비슷한 종류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기 마련이죠. 근데 무턱대고 희곡을 쓰려니 막막했답니다. 제가 뭐 희곡 창작을 따로 배운 적이 있지도 않거니와 문학적인 글쓰기라면 그나마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이 차라리 더 쉬웠겠죠. 물론 소설 쓰는 게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튼, 희곡, 즉 무대에 극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쓰여야 하는 작품인 만큼 장과 막의 구성, 등장인물과 무대장치와 소품 등에 관한 설명 따위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곡 이론엔 문외한인 제겐 꽤 버거운 설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독백을 선택했습니다. 과감히 많은 부연 설명을 생략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등장인물이야 저 한 명만 있으면 되고, 이야기의 전달이 핵심이니 그 외의 연출은 힘을 좀 빼고 해도 되겠다, 싶었죠. 물론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배경과 사건을 상상해볼 수 있게끔 이런저런 장치를 달아보려고는 해요. 전형적인 희곡 작품은 아니니 형식적인 측면에서 너무 많은 지적은 삼가시고 그저 재미있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정리하자면, 희곡을 읽다 영감을 받아 에세이를 희곡의 한 형태인 독백으로 썼다고 할 수 있겠네요.

처음부터 구구절절 변명 같은 이야기만 하느냐, 불평하실 분을 달래 드리고자 앞으로의 이야기는 달달 볶아서 내어드리려 합니다. 후식으로 볶음밥을 먹는 볶음밥의 민족이랍시고 하다 하다 이젠 이야기를 볶네요. 볶은 음식은 맛있죠. 그러니 글을 볶으면 글도 맛깔나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일단 소재가 맛을 잘 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여야겠죠? 단출한 일상의 기록인 단상이나 감정을 세심히 드러내야 하는 고백보다는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 담긴 이야기가 적합하겠죠. 덤벙대기 일쑤이고 엉성한 면이 많은 저는 무슨 일을 하든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남기기로 유명하답니다. 서른 해가 넘도록 살아오며 여러 일을 해오다 보니 쌓이고 쌓인 에피소드가 참 많더라고요. 이 책에서 독백으로 볶아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가 바로 일터에서 겪은 해프닝이랍니다.

제목은 ‘독’백으로 ‘볶’아 만든 ‘이’야기, 독. 볶. 이! 네, 떡볶이가 떠오르시죠? 매콤, 달달, 쫄깃.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떡볶이랍니다. 최애 음식에서 제목을 따왔으니 ‘독볶이’도 여러분께 매콤하고 달달하고 쫄깃한 감칠맛을 남길 수 있도록 잘 한번 볶아 보겠습니다. 마침 떡볶이 얘기가 나왔으니 떡볶이를 주문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무쪼록 입으로는 떡볶이를, 눈으로는 ‘독볶이’를 맛있게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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