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독볶이 02화

와퍼 백 개가 깨우쳐 준 노동의 가치

독.볶.이 - 독백으로 볶은 이야기 (1)

by Fernweh

독.볶.이

(1) 와퍼 백 개가 깨우쳐 준 노동의 가치



[2m 남짓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커다란 기계가 무대 중앙에 놓여 있다. 성인 눈높이 위치에서 기계 안을 들여다보면 레일에 감겨 있는 석쇠가 보인다. 그렇다, 이 기계는 고기 패티를 굽는 자동 회전식 그릴이다. 그릴 양옆에는 성인의 허리 높이에 걸쳐 길쭉한 판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깔려 있다. 각각의 판 앞에는 스테인리스 통에 소스나 각종 채소가 담겨 있다. 그 위에 놓인 식품 저장용 함에도 고기를 비롯한 각종 재료가 담겨 있다. 왼쪽 판 너머에는 튀김기가 세 대 놓여 있다]


솬: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곳은 한 패스트푸드점의 주방입니다. 혹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셨다면 익숙한 광경이겠네요. 저처럼 말이죠. 잠시 노래 좀 틀게요. (핸드폰으로 린의 ‘시간을 거슬러’를 튼다) 그럼 저와 같이 시간을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로요.


[조명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2년 후에 당장 수능을 봐야 하는 고1이 무슨 아르바이트냐고요? 그게 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음악 학원에 다니겠다고 설친 제 탓이랍니다. 대학 입시를 위한 뻔하디 뻔하고 지난하디 지난한 학창 시절이 당시에는 몸서리치게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대학을 안 가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기술을 배워서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할 것도 아니었고, 대학은 다니고 싶긴 한데... 딱히 마음이 끌리는 전공도 없고 모두가 갈망하는 명문대에 가고 싶다는 열의도 없었죠. 애초에 그럴 만한 성적도 아니었네요. 차라리 갱생 불가의 성적이었다면 진로를 정하기가 편했을까요? 성적이 애매하게 잘 나올 때면 제 부모님은 어쩌면 이 아이가 하늘(SKY)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기도 했답니다. 결국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시 학원이란 데를 끌려갔지만 얼마 못 가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리고는 인문계열은 가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실용음악 학원에 다니겠다는 선포로 재탄생시켜 부모님께 건네 드렸죠. 어머니는 반대하긴커녕 다니라고 하더라고요. 다만, 학원비는 절대 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이셨어요. 명목상의 허락이었죠. 고등학생에게 주어진 용돈으로는 학원비를 절대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음악에 뜻이 있다거나 재능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 이런 상황까지 왔을 때는 일전의 선포를 없던 일로 해야 했을 텐데요. 학원비쯤이야 내가 벌면 되지 않냐는 밑도 끝도 없는 오기를 부려버립니다. 그 길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던 근처 ‘버거킹’에 가서 면접을 봤고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의외로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몸이 고될 것도 없는 게 신참 아르바이트생은 여기 보이는 이 그릴 앞에서 고기만 구우면 됐거든요. 회전식 그릴이라 냉동 패티를 하나씩 넣기만 하면 알아서 척척 고기가 구워져 나왔으니 굽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한 정도였어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종이면서 학생들 스케줄은 방과 후로 거의 다 몰리다 보니 또래들과 같이 일 하다보니 옹기종기 모여서 노는 즐거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몰랐었죠. 즐거움을 개뿔, 뼈저리게 노동의 가치를 곧 깨우치게 될 거란 걸요.


[뒤로 돌아 그릴 쪽으로 가다가 왼편에 놓인 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 여기 길쭉한 판때기 보이시죠? 이런 공간을 ‘보드’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있는 이 보드는 ‘버거 보드’였어요. 말 그대로 버거를 만드는 공간이죠. 패티 굽기에서 한 단계 레벨 업! 하면 당도하는 곳이 여기였습니다. 아, 먼저 버거킹의 메뉴를 좀 분류해 드려야겠군요. 일단 시그니처 메뉴는 와퍼죠. 맞아요. 넓적하게 큼지막한 그 버거요. 속 재료에 따라 치즈 와퍼나 불고기 와퍼 등, 여러 메뉴가 생겨난답니다. 거기서 크기만 줄인 게 ‘와퍼 주니어’고, 앞서 줄기차게 구워내던 소고기 패티가 아닌 다른 고기가 들어가는 치킨 버거 등도 있답니다. 제가 서 있는 이 ‘버거 보드’에선 주니어 제품과 치킨 버거를 만들었어요. 여기서 한 단계 또 레벨 업! 하면, 건너편 보드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곳이 ‘와퍼 보드’인데, 명칭 그대로 버거킹의 주력 상품인 와퍼를 만드는 곳이죠.


[건너편 보드로 이동하며]

별 탈 없이 승격된 저 역시 어느덧 와퍼 보드에 오게 됐습니다. 와퍼를 만드는 것 자체는 복잡할 게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미니어처 격인 와퍼 주니어로 단련이 돼 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조의 측면이 아니라 주문량의 압도적인 차이에서 비롯됐습니다. 여러분도 버거킹을 떠올리면 바로 ‘와퍼’부터 떠올리시죠? 그만큼 와퍼 주문이 제일 많다는 거죠. 식사 시간이면 주문이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밀려 들어옵니다. 버거 보드를 담당할 땐 점심, 저녁때라도 허둥지둥하거나 주문을 밀린 적이 없어서 일 잘한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는데, 와퍼 보드로 밀려 들어오는 주문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쁠 때는 직원 둘이서 달라붙어야 하는 곳이 이 악명 높은 와퍼 보드였어요.


싸이월드가 복구됐을 때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의 사진을 좀 뒤적여봤습니다. 같이 일했던 누나가 올린 사진 아래에는 ‘차카지만 와퍼 보드 일은 좀 못 하는 수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하하. 제 이름은 수’환’입니다만... 아무튼, 와퍼 보드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민폐를 끼쳤던 모양입니다. 일 못 한다고 콕 짚은 걸 보면요. 저도 출근할 때면 오늘은 홀 청소를 해도 좋으니 제발 와퍼 보드만은 안 맡기를 바란 적도 종종 있었어요. 대망의 그날도 제 바람과는 달리 버젓이 와퍼 보드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돈도 좀 더 벌자며 평일 3일 정도는 오전부터 풀로 일할 때였어요. 출근하고 나면 점심 러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죠.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 먹으러 몰린 많은 손님이 제가 와퍼 보드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와퍼를 주문하더라고요. 이놈의 인기란, 휴... 쉴 새 없이 와퍼를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상한 주문 하나가 들어옵니다.


"와퍼 백"

받은 주문은 카운터에서 마이크로 주방에 전달하는데, 처음엔 오디오가 고장 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와퍼 보드에 있던 저와 다른 아르바이트생 말고도 다른 보드에 있던 친구까지 카운터 쪽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돌렸습니다.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주문 다시’라고 외쳤습니다.


"와퍼 백 개요. 백 개 맞아요. 원 헌드레드."

누가 들어도 투박한 한글 발음 그대로의 ‘헌드레드’라는 말이 또박또박 들렸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안 쪽에는 점장이나 매니저가 사무를 보는 자그마한 공간이 있었는데, 당시 업무를 보던 매니저까지 주방으로 나오게 만든 어마어마한 주문이었죠. 밥시간이 아니어도 백 개는 기가 찰 법한 양인데, 빠른 속도로 와퍼의 재고가 줄어드는 점심시간에 백 개를 채우라뇨.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밑 빠진 독으로 콸콸 넘치는 물을 온몸으로 막으려는 두꺼비가 ‘콩쥐야 ㅈ 됐어’라고 울부짖는 밈을 보시면 저 날의 제 심경을 잘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보드라는 공간은 길쭉하기는 하지만 두 명만 서도 꽉 찹니다. 그런데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니 방금 뛰쳐나온 매니저까지 합세해 셋이서 비좁은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끊임없이 와퍼를 만들어야 했어요. 밀려드는 현장 주문은 현장 주문대로 처리하고 결제하고 삼십여 분 뒤에 찾으러 오겠다며 유유히 사라진 ‘와퍼 백’ 씨의 대량 주문은 대량 주문대로 백 개의 수량을 채워야 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와퍼와의 싸움이었죠. 단체 주문을 미리 안 하고서 이렇게 백 개를 주문하는 심보가 고약하게만 느껴졌답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 와퍼 주문이 많이 줄었고 그제야 겨우 포장 봉투에 와퍼 백 개를 다 담을 수 있었습니다. 끝나고 나니 손이 떨리더라고요. 과장이 아니라 힘없이 보드 위에 툭 올려둔 손이 정말 파르르, 옅게 떨렸습니다. 육체노동을 괜히 육체노동이라고 하는 게 아님을 실감한 날이었어요. 당시의 시급은 기껏해야 삼천 원이었습니다. 손이 벌벌 떨리도록 일했는데 만 원도 쥘 수 없다니, 어른들이 말로만 하는 줄 알았던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줄 아냐’는 말이 절절하게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때는 ‘와퍼 백’ 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햄버거 백 개를 주문한다는 건, 최소 백 명의 게스트를 부른 행사가 있다는 거죠. 어떻게 그런 큰 행사를 주최하면서 음식 주문을 미리 해 놓지 않은 건지, 와퍼 백 씨를 무능한 인간이라고 폄하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사회생활을 해 보고 나서는 와퍼 백 씨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 몇 시간을 앞두고 예약했던 케이터링이 제대로 오지 않은 처절한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던 거죠. 음식을 제공해야 하긴 했을 테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제격이었을 거고요. 패스트푸드가 괜히 패스트푸드겠어요? 빨리 나오니까 패스트푸드지. 담당자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바탕 곤혹을 치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된 듯 ‘여봐라, 삼십 분 뒤에 올 테니 와퍼 백 개를 마련해 두거라.’하고 잰 척하며 통보했을 것 같아 괘씸했는데, 실상은 그 역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사무실과 버거킹을 번갈아 오가며 상황을 수습하는 미생이었을 거란 생각에 이르자 뒤늦은 안쓰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회사 일을 하던 그도, 아르바이트하던 저도 모두 다 노동의 혹독한 가치가 무엇인지 절로 떠올렸을 날이겠네요. 이 에피소드를 쭉 들려드리고 나니 타인이 흘린 땀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한 적은 없는지 괜스레 반성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햄버거를 만들고, 만들어진 햄버거를 가져다 나른 거라고, 별거 아닌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손이 떨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는 다급했던 노동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요. 긴 얘기를 하고 나니 배가 고파옵니다. 오늘은 와퍼를 먹어야겠어요.

[암전]


*문제의 ‘차카지만 와퍼 보드 일은 좀 못 하는 수완이’ 사진. 고대 유물 같은 사진이라 화질은 이게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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