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리버 리 Apr 06. 2024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2023년 8월 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체코 데친을 중심으로 인근 도시의 위치, 경로, 현지 정보(숙소, 식당, 볼거리 등)를 구글맵으로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를 포함해서 중늙은이들이 세상 좋아졌다는 말을 하면 대체 뭐를 보고 좋아졌나 싶었는데, 예전 같으면 유명하지 않은 소도시의 정보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했는데, 구글맵 보면서 과연 그렇구나! 끄덕이게 된다.


유명 관광지의 뛰어난 풍광과 엄청난 유적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짧다. 십 년 전에 갔다 왔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난다? 두 가지다. 유명 관광지니 다른 이들도 많이 찾을 테고, 그들이 퍼트린 최신 기억을 나의 과거 기억에 덧씌우거나 십 년 동안 다른 데를 안 가봤거나. 수십 년 전 군대에서 축구했던 무용담을 어제 일처럼 떠드는 남자들처럼 말이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주문에 겨우 성공하고,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하는데 왠지 통하는 것 같고, 정작 가려던 곳은 못 찾고 우연히 들어간 곳이 좋았고, 며칠 머문 동네를 어슬렁대다 동네 사람들과 아는 체하며 어색한 웃음을 나누고, 그렇게 느긋하게 머문 몸의 기억이 좋았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욕심이 앞서면 시간과 만족은 줄어든다. 여행은 비워야 채울 수 있는 자루와 같다는 말도 있잖아.


다음에 또 언제 올지 모르고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보다 많이 보고 하나라도 놓치지 말자 싶어 일분일초가 아까워 부지런을 떨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전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여행에 욕심 버튼이 작동되면 느긋함은 사라지고, 강행군이 시작된다. 특히, S의 무릎이 안 좋으니 무리해서도 안되고 무리할 이유도 없다.


8월 체코 여행엔 데친, 프라하, 드레스덴만!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지만 시간은 유한하니 선택을 해야 한다. 좋은 게 있으면 아닌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란 말처럼 등가교환은 여행에도 적용된다. 선택과 집중, 여행에 필수요소다.


2023년 4월에 SNS에 썼던 글이다. S와 떠나는 오랜만의 여행에 한껏 설렘과 기대감에 들떠 여행업자 시절에도 하지 않던 다양한 루트를 이리저리 짜고, 이동경로와 숙소 등을 알아보다가 ‘비워야 채우는’ 여행의 명제를 떠올리고 단순하게 정리했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체코 여행은, 약속은 연기처럼 펑~ 사라졌다. 어제까지 별일 없었던 인생도, 계속될 줄 알았던 관계라도 내일 어떻게 바뀔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모른다.


무릎 안좋은 엄마랑 같이 가는 여행이라 많이 돌아다닐 수 없고 동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호리공원, 미술관, 토쵸지, 다자이후 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인데 후쿠오카의 현지 정보(숙소, 식당, 볼거리 등)를 구글맵으로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여행의 재미는 떠나기 전 설렘에서 시작된다.


이전 14화 번갯불에 콩 볶듯, 쇠뿔도 단 김에 빼듯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