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리버 리 Apr 20. 2024

일찍 일어난 새는 빨리 피곤하다

후쿠오카 가족여행

가족 세 명이 해외여행을 처음 왔고, 같은 방에서 잤다. 그러고 보니 세 명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잔 적이 언제였을까? 아득하다.


원하지 않아도 아침 6시면 몸이 알아서 깨는 70대, 50대, 40대 여행자는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 샐러드, 나또김밥(은 먹지말자!) 등과 음료수로 간단 요기하고 숙소를 나섰다.


후쿠오카의 대표 축제인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마쓰리‘의 중심이라는 구시다 신사는 그냥저냥 했는데 천 년 된 우람한 은행나무를 만나 반가웠고, 목불상으로 유명하다는 토쵸지에서는 아직 공개 시간이 안 돼서 목불상은 보지 못하고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눠서 좋았다. 세상 일이 그렇듯 여행도 예상대로 되지 않아서 좋은 일도 있다.


어디를 가고, 어디서 먹고 미리 정한 게 없으니 다음 목적지는 지금 정한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보여,

-엄마 괜찮아요?

-엄마, 힘들어요?

막내와 동시에 묻는다.

-쪼께 피곤해도 괜찮다

-무릎도?

-응

구글맵을 보던 막내가

-엄마, 후쿠오카 타워 갈래요?

-거긴 뭐 있는데?

-용두산타워처럼 전망대 있대요. 안 걸어도 되고

-거 가보까?

-거기 갔다가 오호리공원 들리고, 점심 먹으면 되겠다

#후쿠오카타워, 바닷가에 세워진 전망대였다. 그랬다.


#오호리공원, 오~호리! 도심에 이런 큰 호수공원을 두다니, 주변에 높은 빌딩도 없고, 차량 통행이 안된다. 후쿠오카 시민은 좋겠다, 부럽다. 거북이, 잉어를 원 없이 봤다. 오가는 사람 구경하고, 호수에 부는 바람맞으며 하루 종일 머물러도 괜찮겠다.


도심 곳곳에 숲과 거대한 나무들이 있는 사찰과 신사가 있고, 바로 옆이 오호리공원이라 그런지 일본정원은 그저 그랬다. 굳이 돈 주고 입장할 수준은 아닌데, 시간대별로 인공적으로 물안개를 피워주는데 그림이 나왔다. 딱 그 정도다.


바로 옆 #후쿠오카_미술관 갈려는데, 엄마가 피곤한지 망설이신다.

-많이 피곤해요?

-여기 갔다가 또 어디 가노?

-밥 먹고 숙소 가서 쉬었다 저녁에 시내 투어버스 탈라는데

-엄마 피곤하면 미술관 안 가도 돼요

-니가 좋아하잖아

-나 안 봐도 돼

-아이다. 정 힘들면 앉아서 쉬면 되지


미로, 샤갈, 달리의 그림을 보시더니,

-이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이제?

-야아. 아주 유명하지

엘비스 프레슬리를 그린 앤디 워홀 작품을 보시더니,

-이 사람은 여배우도 이런 식으로 안 했나?

-맞아요. 마릴린 먼로

-그래! 이야~ 들어오기 잘했네.

-ㅎㅎ


그리고 2층 소파에 앉아 쉬면서,

-배 안고파요?

-괜찮다

-(막내가) 라면, 우동, 전골 같은 게 유명해요. 초밥은 어제 먹었고.

-밀가루는 별로…

-아침에 보니까 숙소 바로 앞에 베트남 식당 있던데, 엄마 쌀국수 좋아하잖아요?

-쌀국수, 거기 가자


10명도 못 앉을 좁은 식당은 몇 명의 손님으로도 꽉 찼다. 인근에 사는 베트남인들이 주말 나들이 와서 자국 음식 먹고 얘기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함께 먹으면 더 단단해지는 건 세상 이치인가 보다. 밥이 이렇게 중요하다.


소고기 쌀국수, 스프링롤, 분짜, 반미, 볶음밥을 먹으며,

-어때요?

-한국 보다 국물이 진하네

-이것도(분짜) 먹어봐요?

-국수뿐인데 우째 먹노?

-소바처럼 소스 국물에 담갔다가 고기랑 먹으면 돼요

-맛있네

-엄마는 고수향 안 싫어요?

-야들도 그래 먹잖아

-응

-우리가 김치에 제피가루 넣는기랑 같은 기지. 야들 음식인데 야들 식으로 먹어야지

-엄마, 멋져!

-뭐라노~


Open Top Bus는 방문 또는 전화 예약, 현장 판매뿐이라 숙소 로비에 도와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줬다. 방에 들어가서  몇 마디 나누고, 언제 잠들었나 싶게 푹 잤다. 원기 회복!


후쿠오카 시청으로 이동, 막내는 주변 둘러본다기에 엄마랑 시청 로비에서 기다린다.

-막내한테 아버지 얘기했나?

-아뇨. 본인이 필요하면 연락하시잖아요

-막내가 여려서…

-엄마도 얘기하지 마세요

-그래

-이번 일본 여행 어때요?

-아들 덕분에 호강이지

-호강은 무슨!

-패키지 따라댕길라믄 많이 힘들거든. 아까 단체로 우르르 돌아댕기는거 봐라.

-괜찮아요?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아주 좋다.

-다행이네. 또 여행 가려면 건강해야 돼요

-그래, 건강해야지

-엄마?

-응?

-건강해서 고맙고, 너무 늦어서 미안해

-뭐라노~


Open Top Bus, 뚜껑 없는 이층 버스로 후쿠오카 주요 지역을 무정차로 60분(야간은 80분)간 타는데 괜찮다. 단, 바람을 그대로 맞는데 4월 중순은 아직 춥다. 옷 단디 입어야 한다.


저녁을 뭐 먹을까 하다가 모츠나베(인듯한) 식당이 보여서 들어갔다. 여행 출발 전에 후쿠오카 맛집을 검색했더니 웨이팅 1시간은 기본이라길래, 구글맵에서 평판 괜찮은 식당 몇 군데 찍어뒀는데, 한 곳도 가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고,  주변 둘러보다 괜찮다 싶으면 들어갔다.


한국인이 그렇게 많이 온다는 후쿠오카에서 이런 식으로 식당을 찾으니 익숙한 한국말이 들리지 않고, 한국어 메뉴가 없어서 여행의 매력인 낯섬이 그나마 가능했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함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먹고, 자는 일상이 2/3를 차지한다. 엄마, 나, 막내의 첫 여행인데 여행방식과 입맛이 맞다. 이 멤버로 또 가도 되겠다. 일찍 일어난 여행자는 빨리 피곤해지는 법, 숙소로 돌아와 몇 마디 나누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이전 16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