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일지 모를 여행
-저예요
-(살짝 잠긴 목소리로) 으응
-어디 아파요?
-감기가 다시 걸려서 약 먹고 누웠어
-감기? 날씨도 풀맀는데… 우짜다가?
-요 며칠 바람이 씨게 불더니…
-목소리가 영… 마이 아파요?
-약 뭇으니 괜찮겠지
-죽 사가까? 같이 먹게
-오늘 쉬나?
-네
-집에 누워 있을게. 볼 일 보고 만나고 그래
-입맛 없다고 안 드시지 말고, 꼭 챙겨 먹어요
-그러께
어지간해선 아픈 티를 내지 않는(건 엄마를 닮았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본인 상처를 드러냈구나) 분인데, 혹시라도 감기 옮을까 봐 오지 말라는 걸 보니 많이 안 좋으신가 보다.
날씨 변화에 엄마의 몸이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기 걸리면 몇 달씩 간다. 건강한 엄마를 볼 날이, 엄마와 여행 다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데 실감하는 날이 잦다. 늙고 죽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막상 그 현실을 접하면 나는 어째야 하나?
시간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사라진다
작년에도 8월 여행을 위해 연차를 아끼고 모았다. 아끼다 똥 된다더니 한순간에 여행 자체가 폭파돼서 연차 쓸 일이 없었건만, 몸에 탈이 나서 병가로 사용했다. 뭐든 총량의 법칙!
작년 대체휴무 이월 된 거랑 올해 대체 휴무에 법정 휴무일을 붙이면 최대 9일을 쉴 수 있는 휴가 같은 긴 휴무일이 만들어졌다. 오토바이로 완도/서울을 갈까, 낯선 곳에 머물다 오자 싶어 호이안, 방콕, 후쿠오카 가는 항공편과 숙소를 검색했었다. 어디가 될지 정한 곳 없이 어디로 갈 고민을 하며 구글맵으로 예상 숙소 근처 동네를 돌아다니는 즐거움, 여행이 주는 재미다.
그러다 문득 지금 아니면 엄마랑 언제 가겠나 싶어 근 1년 만에 한국 들어온 나주 사는 띠동갑 막내에게 연락했다.
-4월에도 한국 있나?
-6월 말 까지는 계속 있을 거예요
-다름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 드셔서 어디 가는 걸 불편해하시지만 앞으로 엄마랑 여행 다닐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잖아. 마침 너도 한국 있고 나도 4월에 휴가낼 수 있거든. 엄마, 나, 너 여행 갈라는데…
-그러게. 잘 안 가시려고 하시대.
-우리 둘이 가자면 가시지 않겠나? 내가 말씀드려 볼게.
-근데 내가 도선사 시험 준비하고 있어서 2~3일은 가능한데 길게는 어려울 거 같은데…
-응, 그럼 국내나 일본 2박 3일 갔다 오까?
-그 정도는 내가 언제든 시간 괜찮으니까. 형님이 정하는 대로 할게
-알았어. 내가 찾아볼게
-그래~ 좋은 하루 보내고요. 운전조심하고^^
바로 엄마께 연락
-엄마, 막내랑 얘기했는데 우리 일본 갔다 와요
-아이고~ 댕길 때 내가 마이 걸거친다
-걸거칠끼 어딨노? 우리끼리만 가는데!
-우리끼리… 우째 가노?
-내가 명색이 여행업자였고, 막내는 외국 선원들과 일하는 선장인데 뭔 걱정이고
-다른 사람이랑 여럿이 같이 댕기는 거 그거 아이가?
-아~ 패키지? 그거 아이고 우리 셋이만 댕기는 거라 엄마 몸에 맞차서 댕기면 돼요. 그리고 나랑 막내랑 여행 같이 갈 기회도 많지 않잖아.(이 말을 하는데 왈칵 눈물 쏟을 뻔했다) 가자아~
-그럼 그러까?
-응, 그러자
번갯불에 콩 볶듯, 쇠뿔도 단 김에 빼듯, 후다닥~ 여행 간다. 여권 사진 보내달라고 해서 항공과 숙소를 바로 결제했다. 모든 여행은 결제에서 시작되고 준비는 천천히 하던가 안 해도 그만이다. 여권만 있음 된다.
40대, 50대 아들 둘이 엄마랑 떠나는 첫 여행이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라 아쉬움은 있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엄마 움직임에 맞춰서 최대한 천천히 느긋하게, 여러 곳 다니지 말고 한 곳에 오래 머물자. 그러자.
그러고 보니 S와 첫 해외여행지가 후쿠오카였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여행도 그런가? 20여 년 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경유지로 머문 곳이라 후쿠오카의 공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 호텔방이 비행기 이코노미구역처럼 효율성만 갖춘 좁은 구조였다는 정도. 후쿠오카, 20여 년 만에 다시 찾는 낯선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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