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가족여행
어느덧 3일 차, 마지막 날이다. 역시나 6시 즈음 일어난 여행자들은 편의점 메뉴와 막내가 가지고 온 드립백 커피로 아침 먹으며,
-밥 먹고 짐 싸서 나가야 되제?
-아뇨. 12시 체크아웃이라, 아침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쉬다가 짐 싸면 돼요
-비행기는 밤인데 짐을 들고 댕기나?
-호텔에 맡기고, 다자이후 갔다가 저녁 먹고 짐 찾아서 공항 가면 돼요
-그걸 우째 들고 댕기나 싶었는데, 잘됐네
오전은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신사를 갔다 오기로 했다. 골목을 걷던 엄마에게,
-우리랑 다니느라 피곤하지, 무릎은 괜찮아요?
-응, 쉬고 싶을 때 쉬니까 괜찮아
-재미있었어요?
-재밌다. 패키지로 다닐 땐 일정에 쫓겨서 버겁기도 하고, 눈은 외국인데 귀는 한국이어서 쫌 그랬거든
-눈은 외국, 귀는 한국?
-보이는 건 낯선 건물과 풍경인데, 한국 사람들끼리 몰려다니고 밥 먹고 하니까 한국말만 들리고
-아~ 표현력 죽인다.
-근데 여기는 부산멜로(처럼) 항군데 평지네. 그래서 걷기 편하네.
-그러고 보니 산비탈이나 언덕이 없네
-(막내가) 엄마 관찰력 좋네.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어제 갔던 오호리공원은 작정하고 조성한 곳이라 예외라 하더라도 숲과 큰 나무가 있는 사찰과 신사가 후쿠오카 시내 곳곳에 있어 산책하고, 쉴 틈을 줘서 좋다. 아침 일찍이어서 그런지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신사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근처 동네 시장을 들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문 닫은 날이다. 천변을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쉬다가 짐 맡긴 후 기차 타고 다자이후로 출발, 교토도 그렇더만 유명 관광지로 들어서는 길 양쪽으로 기념품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한중일 동북아 3국 사람들로 북적댄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왈가왈부하는 시대에 시험과 학업에 영험하다며 줄 서서 만지는 소 귀,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과학적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믿음의 상징물을 만들고 따르는 인간의 마음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시험 준비 중인 막내도 소 귀를 만졌으니 소기의 좋은 성과가 있을꺼다.
#다자이후, 방문한 첫 번째 미션도 달성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잉어와 거북이(또는 자라)도 보며 천천히 둘러보는데,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시 올 이유는 있다.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와 덴진역 근처 케코 신사에서 쉬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어~ 일본은 주 5일 아닌가?
-맞을낀데
-오늘 토요일인데 교복을 입고 다니네
-어, 맞네
-(엄마, 아빠와 같이 가는 청소녀를 보고) 쟈도 교복 입었네. 학생들 외출복인가?
-그렇네. 니 6학년 때 담임쌤 결혼식에서 니는 교복 입어서 예식 사진 같이 찍고, 성철인 못 찍었다 아이가
-우리 때 교복 안 입었는데
-와 안 입어? 까만색 입었잖아
-아~ 맞다. 하얀색 카라 있는 거. 근데 엄마가 우째 알아?
-우째 알긴, 니가 얘기해 줘서 알지
-그걸 기억해?
-그러게. 그걸 기억하고 있네
-엄마 덕분에 기억에 없었던 40여 년 전 사실을 알게 됐네. 고마워
-고맙긴
-엄마, 여행 재밌다했잖아? 막내도 재밌대.
-응. 이리 댕기니까 재밌네
-막내 시험 치고 또 여행 가까?
-아이구~ 내 델꼬 다닌다고 너거 불편하고, 내 몸이 되겠나?
-나는 괜찮아. 엄마는 당연히 건강해야지. 운동 꾸준히 하고
-그래, 안 아프면 또 가자
가정식 백반 파는 체인점 식당에서 고등어조림으로 저녁 먹고, 천변에 앉아 쉬다가 공항으로 출발했다. 실제 비행시간은 30여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후쿠오카, 70대, 50대, 40대 가족이 함께 한 첫 해외여행이었다.
이색적이고 멋진 풍경, 맛난 음식을 만나는 여행이라도 대화가 즐겁고, 취향이 맞는 사람과 있는 시간보다 좋을 수 없다. 여행은 일상의 일부로 낯선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