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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밥

by 딜리버 리 Mar 02. 2025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해도 최저시급 오르면 자영업자 다 죽고 한국경제가 일순간 몰락한다며 선동해 대는 정치권과 언론 덕분에 노동계가 갖은 노력과 발버둥을 쳐야 쥐꼬리만큼 오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월급은 잘만 올리면서, 재벌 사주들과 대기업 사장들 연봉은 수십 억 소리가 나도 아무 말 없으면서, 겨우 만원 넘었는데 죽는 소리를 해대고 온갖 생색을 낸다. 수십'억'버는 인간과 고정 연장수당 받아야 겨우 세후 월 삼백 버는 택배노동자 중에 동네 자영업자 가게를 이용할 확률이 누가 높을까?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만 오르니 도시락 싸오는 동료들이 많아졌다. 최저시급이 올라야 자영업자가 살 확률이 높아진다.


점심(點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은 마음에 점을 찍듯 간단하게 먹는 거라는데 월급쟁이 택배족에게 제대로 먹는 유일한 한 끼가 점심이라 휴게를 겸해 식당밥을 먹는다. 직장인에게 점심 메뉴는 출근 즉시 고민거리지만 택배족은 주차하기 편한 식당이 있으면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간다. 어차피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크지 않다. 그래서 가격대비 괜찮은 식당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다. 비싼데 맛없는 식당은 망해야 하고, 비싸고 맛있는 식당은 당연한 거다. 배송구역과 배송물량이 매일 달라서 점심 식사시간이 일정할 수 없는 택배족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을만한 시간과 경제력이 없으니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대를 지나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식당들이 있어서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설혹 괜찮은 식당이라도 반복해서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라 한 집에서 계속 먹지 않는다. 


언제 가도 먹을 수 있는, 2회차 복귀하면서 거의 매일 들리는 식당을 만났다. 메뉴는 언제나 선지국밥(7천 원)이다. 간혹 일찍 문을 닫으면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사서 회사 휴게실에서 먹는 불상사를 치른다. 1회차 배송 집수가 적었던 어느 날에 점심 같이 먹자며 동료가,


-형님, 오늘도 소방서 옆집?

-어, 난 거기가 좋아

-또 선짓국?

-응, 매일 먹어도 괜찮던데

-대단하다

-선짓국도 선짓국이지만 반찬이 안 물리는 거 같아. 집에서도 매일 같은 반찬이면 물리잖아. 근데 거긴 안 그래

-그러게, 딱히 특별한 반찬도 없는데... 안 물려

-오늘 물어봐야지


2회차 물량 적재하러 복귀하면서 그렇게 그 집을 들어섰다. 매번 점심시간을 지나서 들리는지라 식당 안에 손님은 없다. 그게 살짝 미안하기도 해서 의례적으로 묻는다.

-식사되지요?

-(당연한데 또 묻냐는 듯) 그럼요

-사장님, 장사하신 지 오래됐어요?

-와요?

-아니, 택배기사들이 여기저기서 점심을 먹는데, 식당밥이 사실 잘 물려서 한 집에서 계속 안 먹거든요

-근데요?

-이 집은 선짓국 매일 먹는데도 안 물리는 게 신기해서요

-입에 맞나 보네

-아무리 입에 맞아도 이리 매일 먹을까요?

-나야 고맙지요. 특별할 것도 없는 반찬인데 이리 찾아주니...

-반찬이 간결하고 솜씨가 좋아서 얼마나 됐나 물어봤지요

-식당 한 지는 엄청 됐지요

-아~


마침 회사가 최대 매출을 냈고, 영업이익을 연속으로 기록했다는 TV뉴스가 나온다. 사장님 혼잣말로,

-하이고~ 저라마 뭐하노? 택배기사들은 죽어나는데...


몇 년 전 택배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땐 월수입이 어마무시하다며, 미국 증시 상장됐을 땐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 양 국뽕차는 얘기를 쏟아냈다. 이번엔 최대 매출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이런 뉴스를 보면 회사 수익을 노동자 수입과 동일시하며 회사가 수익 나서 좋겠다 어떻다 대화를 시작한다. 예전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한민국 국민 평균소득이 3만 불이 넘는데 사장님도 그러세요? 회사 수익은 주주 수익과 연결되지 노동자 수입과 무관할 수 있다, 최저시급이 올라야 다 같이 살 수 있다는 얘기로 응수하곤 했다. 그러다 그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아~예, 느우무 좋아죽겠어요 하고 입을 막았다. 


가게 간판은 없는데, 카드 결제내역엔 #불통 이 집, 밥이 안 물리는 이유는 사장님의 마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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