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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Feb 28. 2024

가야만 하는 이유

다시 만난 사량 14화

이선정作 바다 가는 길  oil on canvas


가야만 하는 이유


I


힘들은 발걸음으로 나섰다     


시리게 만져지는 새벽 공기에

행여 고려호가 출항하지 않을까

근심 안고 항구에 닿았다     


석유 냄새 폴폴 나는

철망 쳐진 난롯가엔

한 짐의 낚시꾼이

두런두런 얘기하고

주름살만큼 처져버린 촌로는

꾸벅꾸벅 선잠으로 서 있네     


도.서.상.륙.권. 

보라색 인장 눌린

푸른빛 종이 뒤편

이름 주민번호 흘려 적고

컴컴한 어둠 속

고려호 객실에 들어서니

퀴퀴한 기름 냄새

시큼하게 퍼져온다.


II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 속

허우적거리듯 발 디뎌도

한겨울 바닷속 몸 담그듯

한없이 빨려드는

아득한 내 그림자     


스치듯 지나는 한 줌 바람결에

이제는 찾을 수 없는

내 젊은 날들     


파도를 가르고 내닫는

작은 사량도에는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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