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사량 14화
이선정作 바다 가는 길 oil on canvas
가야만 하는 이유
I
힘들은 발걸음으로 나섰다
시리게 만져지는 새벽 공기에
행여 고려호가 출항하지 않을까
근심 안고 항구에 닿았다
석유 냄새 폴폴 나는
철망 쳐진 난롯가엔
한 짐의 낚시꾼이
두런두런 얘기하고
주름살만큼 처져버린 촌로는
꾸벅꾸벅 선잠으로 서 있네
도.서.상.륙.권.
보라색 인장 눌린
푸른빛 종이 뒤편
이름 주민번호 흘려 적고
컴컴한 어둠 속
고려호 객실에 들어서니
퀴퀴한 기름 냄새
시큼하게 퍼져온다.
II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 속
허우적거리듯 발 디뎌도
한겨울 바닷속 몸 담그듯
한없이 빨려드는
아득한 내 그림자
스치듯 지나는 한 줌 바람결에
이제는 찾을 수 없는
내 젊은 날들
파도를 가르고 내닫는
작은 사량도에는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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