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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Feb 03. 2018

살림이라는 핑계


늦가을이면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없는 식물들은 화분에 담겨 집안으로 옮겨진다. 이미 기온이 많이 내려간 마당에서 지내던 식물들이라 갑자기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오면 봄이 온 줄 착각해서인지 연한 가지들을 밀어 올리고 초록색 이파리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성장을 멈춘다.


 긴 겨울을 앞두고 봄인 줄로 착각을 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서인지 성급하게 내놓았던 줄기와 잎들은 금세 풀이 죽어 휘청거리다가 말라버린다. 식물 스스로 집안에서 겨울을 지내는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는 몸살을 앓는다. 잎은 시들고 마르며 줄기 일부분도 색이 변하면서 가늘어지다가 급기야 검게 변해버리기도 한다.  

    

장미가 시든 자리에 로즈힙이 열렸다.  동그랗게 엮어서 만든 리스는 늦가을의 정취를 집안에 끌어들리기 제격이다.


화분들은 볕이 드는 창가에 오종종 모여 있어서 창밖을 내다보기 좋아하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분들이 놓인 곳으로 간다. 치자와 유칼립투스, 명자나무와 아보카도와 커피나무가 사는 화분들을 지날 때마다 시든 잎, 말라서 떨어진 이파리, 색이 변해버린 나뭇가지들을 볼 수 있다. 바삭 말라서 손으로 만지면 순간에 부서져버릴 것 같은 이파리들이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모습에 절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떤 풍경은 마음을 건드린다. 미동도 하지 않던 감정들이 작은 호수처럼 모여 있다가 갑자기  출렁거린다. 왈칵 뜨거워진다. 수분도 색도 사라진 갈색 이파리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부스러기들을 받아내면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던 작은 풍경이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춘다. 바다를 보러 갔던 날, 몸살이 났던 날, 눈물이 흐를 때까지 모니터를 노려봤던 날, 고단하고 서러운 걸 내색 않던 날, 골목 끝까지 나가서 편지를 기다렸던 날, 옛날.     




소금물을 끓여 브로콜리를 파랗게 데쳤다. 올리브유에 마늘을 넉넉하게 넣고 볶다가 새우와 데친 브로콜리를 넣고 끓이듯이 볶았다. 검은 후추를 굵게 갈아서 화장하듯이 뿌렸다. 양파를 가늘고 둥글게 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이고 방울토마토, 얇게 조각을 낸 레몬 반개를 함께 볼에 담은 후에 씨겨자와 소금, 후추, 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뿌렸다. 훈제 연어를 한 입 크기로 뜯어서 넣었다. 새우 브로콜리 볶음 한 접시, 연어 초절임 한 접시에 식탁이 오랜만에 화사해졌다.  



주방 풍경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양파가 절여지는 동안 주방과 책방을 오가면서 책상을 치웠다. 탑처럼 쌓여있던 책들을 책장에 꽂아두고 청구서와 카탈로그와 메모가 적힌 종이들을 모아서 버렸다. 책장에서 오래된 잡지 몇 권을 뽑아 폐지 바구니에 넣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다른 날들과 섞여서 이름을 잃어버리고 지나간 날이 된다. 1 월이 다 갔다.     


거실로 들어온 직후의 유칼립투스 나무와  혼자 있는 시간의 흔한 풍경

 

매일 실수를 한다. 진한 색 옷을 세탁하면서 표백세제를 사용하거나 스웨터를 건조기에 넣어버리기도 한다. 소금을 넣지 않은 반죽과 타버린 냄비, 잘못 보낸 메일, 스마트폰의 자동 완성 기능 때문에 황당해진 문자들과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가 있다. 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다. 터널 안은 지루하고 출구는 멀다. 터널 끝에는 봄이 있을까. 끓고 있는 찌개 냄비에 파를 썰어 넣으려다가 칼과 가위들이 모두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있는 걸 알았다. 손으로 비틀어 길게 끊은 파를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문제는 없고 사는 건 단순하고 밥상이 차려진 식탁에서 터널은 잊힌다.     



스콘을 굽거나 귤껍질, 로즈마리 줄기, 마가목, 타임들을 냄비에 넣고 끓이면 집안이 고소하고 알싸한 향기로 가득찬다. 추운 겨울을 향기롭게 보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가끔은 몸살이 난다. 몸을 둥글게 말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의자에 파묻히거나 침대에 누운 채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린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 되고 싶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지도다. 읽고 싶은 책들과 그 작가들을 그렸다. 어떤 날엔 가고 싶은 도시와 들판이 표시된 지도를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닮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이들의 이름을 적어두고 거기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을 표시했다. 길을 잃어도 좋은 마을의 지도다.        

             

먹고 마시고 읽는 시간

                   

지도를 기억하거나 간직하지는 않는다. 밤마다 그렸다가 아침이면 잊는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식사 준비를 할 때가 되면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서 부엌에 섰다. 고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몸살이 잦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남편은 그럴 때마다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집안일이 많아서 지쳐버린 것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게 참 고맙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핑곗거리는 항상 있다. 나는 그중 그럴듯한 것을 골라 아침마다 앞치마를 입듯이 가볍게 걸친다. 한 걸음 내딛기가 두려우면 살림을 핑계로 삼고 살림이 지겨우면 예전의 꿈을 핑계로 삼는다. 몸살을 핑계로 살림에서 손을 놓고 살림을 핑계로 꿈에서 멀어진다. 선택은 자유롭고 유예는 달콤하다. 선택의 자유가 도피와 변명의 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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