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외할머니댁에 갔다. 충청남도 아산에 있던 외가는 가도 가도 닿지 않아서 굉장히 먼 곳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바다처럼 막막하게 펼쳐졌던 논과 밭을 옆에 끼고 한참을 달려서 닿는 마을, 학교도 가게도 약국도 없던 곳이었다. 외할머니는 놀이도 마땅치 않고 군것질거리도 없는 지루하고 심심한 시골에서 당신의 외손녀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심심하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외가의 안마당은 항상 말끔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는데 얼마나 빤빤했는지 손바닥으로 쓸어도 흙먼지가 묻어나지 않을 것처럼 반질거렸으며 그늘이 진 바닥에 손을 대면 땅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처럼 시원했다. 혼자 흙바닥에 앉아서 그림자를 따라 그리거나 마당에 내려앉은 참새들을 쫓고, 심심할 만하면 드나드는 동네 어른들을 구경하느라 하루가 짧았다. 밥을 할 때마다 아궁이에 볏짚을 넣어 불을 지피는 것도, 김이 나는 가마솥 뚜껑을 열고 뜸이 들고 있는 밥 위에 감자나 호박 등을 올려 찌는 것도, 우물에서 물을 긷거나 펌프 손잡이에 몸을 실어 물을 끌어올리는 것도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겨울밤에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어둠에 짓눌린 것처럼 집들이 납작해지던 밤이었다. 저녁을 물리고 뜨거운 방 안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군밤 껍질을 벗기고 있으면 할머니의 말동무들이 모여들었다. 그분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해서 외숙모가 쉽게 풀어 다시 말해주곤 했다. 할머니들이 웃으면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무서운 이야기라도 나올까 봐 무릎을 끌어안아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밤이 깊어지면 눈을 치뜨고 이를 앙다물고 앉아서 졸음과 싸웠다. 그랬음에도 할머니들이 가시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앉아서 졸다가 그대로 누워 잠들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할머니 중 누구도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할머니처럼 집과 침대와 의자에 이름을 짓는 할머니는 없었다. 밤마다 외갓집으로 모인 할머니들은 갈 곳이 있었고, 보이지 않으면 궁금한 친구들이 있었다. 더는 기다릴 친구도 편지도 없는 그림책 속 할머니처럼 집과 자동차, 침대와 의자에 이름을 지어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내 어린 시절의 할머니들은 외롭지 않았다.
언덕 위의 집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는 아침마다 자동차를 몰고 우체국으로 가서 혹시 자기에게 온 편지가 있을까 살펴보지만, 세금고지서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편지를 보내주던 친구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던 할머니는 이름을 짓기 시작한다. 오래오래 살아온 집과 밤마다 누워 자는 침대, 낡은 자동차에 ‘프랭클린’, ‘로젠느’, ‘베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오래 살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될 것들에만 이름을 지어 주던 할머니 앞에 어느 날 살아 있는 작은 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난다.
할머니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챙겨 주면서도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강아지는 금방 자라서 언젠가 할머니를 두고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강아지가 오지 않자 할머니는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건 홀로 남겨진 후에 마주칠까 봐 두려워했던 감정, 바로 ‘외로움’이었다.
오지 않는 갈색 개를 기다리며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표정, 전화하는 할머니의 뒷모습, 비 내리는 거리를 달리며 개를 찾는 모습을 보면 이 할머니 마음에 어떤 병이 들었는지 금세 알게 된다. 할머니가 떠돌이 개들을 보호하는 사육장에 가서 우리 개를 찾으러 왔노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털썩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개!”, “우리 러키!”,“우리 할머니”, “우리 엄마”, “우리”, “우리”.
어린 시절 밤마다 외할머니 곁으로 모여들던 할머니들은 참 잘 웃었다. 목소리도 컸고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그들은 왜 밤마다 집을 나왔을까? 혹시 그들 모두 홀로였을까? 누군가가 그리웠을까? 겨울밤 친구네 집에 모여서 웃고 떠드는 건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에서의 할머니가 의자와 자동차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집에 모여 앉아서 웃고 울고 있을까?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밤을 보낼까? 누군가 내 곁에 있을까?
어두운 겨울밤, 털신을 신고 외갓집 후끈한 방으로 모여들던 할머니들은 서로 이름을 불러주고 불리며 밤마다 행복했을 것이다. 사는 건 계속 상처 받는 것이고,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름 부르기를 멈출 수 없다는 걸 할머니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