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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빨래가 마르는 오후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by 라문숙


빨랫줄은 길고 높았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 양편에는 채송화와 키 작은 금계화가 피었는데 빨랫줄은 그 위로, 그러니까 대문 부근부터 시작해서 안마당이 시작되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겨울이면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은 얼어붙어 마치 벌 받는 아이들처럼 뻣뻣해졌다가 바람이 불면 두꺼운 골판지처럼 퍼덕였다. 볕이 짧은 오후에 엄마가 빨래를 걷어 난로가 있는 안방에 부려 놓으면 밖에서 얼고 마르기를 반복하던 빨래들은 부드럽게 수그러들면서 조금씩 축축해졌다. 우린 그 빨래들을 난로의 연통에 걸거나 방바닥에 나란히 늘어놓아 말렸다. 빨래가 마르면서 방안에서는 겨울바람에 섞인 비누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어른이 된 지금 어쩌다가 그 특유의 냄새를 맡게 되면 어린 시절 난롯가에서 말라가던 빨래들이 생각난다. 청결함에, 엄마의 수고에 냄새가 있다면 아마 그 시절 빨래 냄새가 아닐까 한다.


이불을 뜯어서 세탁하는 날은 평상시 빨래하는 날과 달랐다. 물에 젖은 홑청들은 엄청 무겁고 부피도 커서 내가 빨래통에 들어가 밟거나 엄마가 방망이로 아무리 두들겨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커다란 솥에 삶아서 여러 번 헹궈야 했다. 드디어 빨랫줄에 널린 홑청들은 어린 내게는 눈부시게 희고 끝도 없이 이어진 장막처럼 보였다. 두 장으로 겹쳐진 홑청 사이로 들어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 위로 젖은 면직물이 스쳐 지나가도록 걷는 것이 나의 놀이였다. 홑청들이 나를 감싸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속에서 빙그르르 돌거나 뛰어오르다가 빨랫줄을 받쳐 놓은 장대를 건드려 애써 마친 빨래를 망치고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세탁기로 빨래를 한다. 세탁할 때마다 다시 꿰매는 수고 없이 리본으로 묶거나 버튼이나 지퍼로 마감할 수 있도록 만든 이불을 덮고 잔다. 다듬이질도 안 하고 이불 홑청을 꿰매지도 않지만 조금은 살림의 맛을 안다. 삶은 달걀 껍데기가 한 번에 매끈하게 벗겨져 하얀 속살이 드러날 때, 반듯하게 접은 보송한 수건들을 욕실 선반 위에 올릴 때, 유리컵들을 그릇장에 나란히 세우고 그 맑음에 감탄할 때의 작은 감동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에서 빨래를 마친 엄마가 “아, 빨래를 널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하구나!”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 기분일 것이다.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에는 빨래하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나온다. 엄마는 보이는 것마다 모두 빨아버린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빨고 보니 빨래를 널 곳이 모자라서 숲의 나무들에까지 빨랫줄을 맨다. 숲 사이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궁금해진 천둥번개 도깨비가 무엇인가 보려고 가까이 다가왔다가 빨랫줄에 걸리자 엄마는 도깨비도 빨아버린다. 빨아서 납작해진 도깨비를 두드려 반듯하고 통통하게 만든 후, 지워진 얼굴은 아이들을 시켜 다시 그리게 한다. 건방지고 더럽고 단정치 못했던 도깨비는 예쁜 아이가 되어 하늘로 돌아간다. 다음 날 도깨비들이 수도 없이 몰려온다. 빨아 달라고, 씻겨 달라고, 예쁘게 해 달라고 아우성친다. 엄마는 놀라지도 않고, 겁을 내지도 않는다.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도깨비들에 마주 서서 소리친다.



“좋아, 나에게 맡겨!”


그림책 속의 그녀는 뒷모습까지도 당당하다. 나는 많지도 않은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끼니때마다 거를 수 없는 설거지와 매일 쌓이는 빨랫감,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내려앉는 먼지 앞에서 주눅 드는 사람이다. 어제 완벽하게 끝냈다고 생각했던 일이 오늘 아침 더 많아진 설거짓감, 한결 커진 빨래 더미가 되어 내 앞에 놓여도 한숨 대신 “좋아. 나에게 맡겨!”라고 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나도 모든 것을 빨고 싶다.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림책 속 엄마처럼 소매를 둘둘 말아 걷어붙이고 빨래 광주리 속에 구질구질한 일상을 쓸어 담아 깨끗하게 빨고 싶다. 보푸라기 하나, 거품 한 방울 남지 않게 헹군 후 빨랫줄에 널어 빛이 바랠 정도로 바싹 말리고 싶다.


그림책의 엄마가 나무 기둥에 묶은 빨랫줄에는 주전자, 바구니, 부채, 닭과 오리, 인형, 고무장갑과 빗자루와 시계, 구두. 인형과 모자와 아이들, 강아지와 고양이까지 매달려 있다. 내 주변의 사물들, 바라보고 사용하고 입고 신는 것들, 음식을 만들고 먹을 때 필요한 온갖 도구들,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빨랫줄에 걸려 있다. 이까짓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번에 몽땅 휩쓸어 빨아버리면 다 새것이 된다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빨래 한 번으로 도깨비가 예쁜 아이로 변한 것처럼 나도 남루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면서 나도 빨랫줄에 걸려 한가롭게 흔들리고 싶다고 상상한다. 마당에서 한바탕 손빨래를 하고 난 후 한낮의 꿈처럼 만나고 싶은 그림책이다. 가능하면 나도 그림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우성치고 있는 도깨비들 속에 섞여 손을 번쩍 들고 싶은 것이다. 나도 도깨비처럼 얼굴이 다 지워지도록 빨아져서는 납작하게 말랐다가 새로 그린 얼굴과 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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