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해서 나를 만나게 한 시간들
30년이 넘는 세월을 도시에서 보냈다.
편의 및 문화시설이 가까이에 있고 교통이 편한 곳
이런 곳을 벗어난 생활은 애초에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에너지 넘치는 인생은 역시
안주하려는 게 답답한 듯,
나의 좁은 시야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선사했다.
서른 중반을 향해갈 무렵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정식 첫 발령지가 발표되었을 때,
읍-리였을 때,
당황한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로드뷰로 그곳을 찾아보았을 때,
매 순간 웃음이 났다.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웃기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도 동네 이름은 예뻤다.
편도 약 40km, 왕복 약 80km.
오가는 차 없는 깜깜한 밤엔 30분쯤이면 충분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좀비 같은 직장인들이 아우성치는 도로였고
금요일 퇴근 시간에는 네비 믿고 갔다가 외길에 갇혀 2시간 반 넘게 걸리기 일쑤였다.
눈이라도 갑자기 오는 날엔 언덕을 오르지 못해
미끄러지는 트럭 뒤 한없이 기다리던 겨울도 있었다.
막막했던
이름 예쁜 마을에서의 근무는
정말 많은 추억과 배움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엔 오히려 연기 신청을 했다.
성대하게 맞아주셨던 환영회도 모자라
송별회마저 과분했는데, 웃으며 시작한 인사가 결국 눈물로 끝났다.
힘든 일도 많았다.
첫 출근 10일째, 글자 그대로 '울음이 터졌다.'
나는 정말 자리에 앉아 그대로 울었다.
터진 울음을 내 의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해야만 했던 게 있다고 했다.
아무도 안 알려주고 놓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니, 나 홀로 정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았다.
이러려고 내가 그렇게 고생했나 -
머지않아 나는 깨닫게 된다.
이 일이 있은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났다. 정확히는 교통사고를 냈다.
안전 운전해야 한다는 남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우쭐대다가
사고는 정말 방심한 틈, 정말 눈꺼풀을 놓았다가 드는 순간 일어났다.
영화에서처럼 슬로 모션으로
나는 앞 차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인지했고,
그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조심할 걸, 미안해. 모두 정말 죄송합니다.'
에어백이 터질 때 연기가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부서진 차에 비해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앞 차 운전자분이 괜찮냐고,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보험사끼리 처리하면 된다고, 너무 떨지 마시라고 해주셨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수리 완료 된 차를 찾으러 갔던 날
다시 앉은 운전석, 시동을 걸기 위해 브레이크에 발을 올렸다.
다리가 덜덜덜 떨렸다.
심장이 차가워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도 덩달아 떨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방법은 없다.
차 없이는 다닐 수 없던 곳이라
한 순간의 잘못으로 소중한 모든 것을 잃고, 타인의 소중한 것도 잃게 할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몇 달간 상사의 수술로 내 업무와 병행하여 대행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몸소 깨우치게 된다.
이때의 고생은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베풀어 준 따뜻한 사랑과 정을 한껏 느꼈고,
끝없이 생산하는 밭에게서는
계절의 작물들과 여러 풀들의 이름들을 배웠고,
멈춰 있는 차 안에서 볼 것은 하늘과 들뿐이라
동틀 때와 노을 질 때 물들어가는 하늘색들
황금빛 너울대는 가을, 진한 초록이 넘치는 여름들을 만났다.
카페에서 직원이 내려주는 커피만큼은 아쉬웠지만,
가게 건너 가게가 카페인 지금
동료들과 나눠마시는 커피의 소중함을 안다.
섣불리 걱정하고 겁낼 필요는 없다.
작은 연못
한적한 벚꽃길
콘크리트가 마르기 전 찍힌 강아지 발자국
주차장에 떨어진 밤톨들
공기가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까마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