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일 할래!"
나의 우주는 아무래도 10년마다 궤도를 달리하는 운명을 가진 듯하다.
10대에는 끝없이 방황하며 헤맸고
20대에 첫 번째 터닝포인트 - 아예 지구 반대편으로 나의 세계가 넓어져 버렸다
30대에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학교 밖, 사회에서 처음으로 얻은 나의 수식어.
뉴질랜드에서 아주 짧게 만난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해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 언니는 누구인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한국에 돌아왔고, 복학시기가 애매했다.
뭐라도 해볼까 뒹굴며 생각하는데 문득 그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구인 카페에 접속하자마자
동네 작은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 구하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사교육계에 뛰어들었다.
퐁당-
적성에 아주 잘 맞았다.
내가 아는 것을 나누어주며 소통하는 일은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기획하고 이끌어 간다는 점,
내가 내 일의 주인이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경력이 쌓이고 인정받을수록 계약서의 근무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 경력과 인정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사적인 시간들을 수업 준비에 많이 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말랑한 나는
프리랜서의 필수 요건인 '영업'이 버거웠다.
언젠가부터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인 '주도성'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나를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인 용무를 보러 한 기관에 들렀다.
데스크에 앉아 사무 보는 직원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 나도 정해진 일, 시키는 일이 하고 싶어.'
나는 지쳤다.
(그때 내가 본모습은 단면에 지나지 않고, 뒤에 수많은 고충이 있다는 것을 지금은 절실히 안다.)
사실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권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안 깊숙이 어두운 곳에서 틔운,
연두색으로 빛나는 싹을 발견해 버렸다.
그 빛을 발견한 이는,
변화를 감지한 사람은,
다시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딱 한 번만 해보자. 안된다 한들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거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기만 했던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말릴 줄 알았던 남편은 뜻밖의 응원을 건넸고,
나는 그 길로 곧바로 원장님께 뜻을 전했다.
딱 1년만 나를 받아줄 곳을 찾아 시험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늘어지면 안 된다.
처음엔 오랜만의 나를 위한 공부에 즐거웠다.
하지만 즐거움도 그 뒤엔 그늘이 지기 마련이다.
승자 효과: 승자는 다음에 또 승리할 확률이 높다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부른다고 했다.
입시도 진로도 실패뿐이었던 내게
물론 나는 첫 번째 직업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랬기에 후련하게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들과 나도 모르는 사이 쌓인 노하우들이
두 번째 직업에서도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