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는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
"헉"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현듯 주변의 싸함이 느껴졌다.
번쩍 눈을 떴다. 낮이다.
낯선 천장, 숨 막히는 정적.
휴, 학교 앞 친구 자취방이다.
이불을 다시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어차피 늦었다. 어차피 안 할 거다.
나를 위한 변명조차 피곤하던 그 시절이었다.
나는 '어린 어른'이었다.
스무 살, 그토록 되고 싶던 어른이 되었는데,
실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었다.
"깔끔하게 F 받고 다시 듣자. C나 D 받는 것보다 낫잖아!"
자체 휴강이 일상이었고,
인생도 그렇게 간단하게 리셋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입시 전문가가 나를 봤다면,
분명 "실패의 대표사례"라 했을 거다.
문이과를 오가며 수시도 정시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논술 시험날, 수능 당일 모두 악재의 악재가 겹쳤고 -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만든 악재의 연속이었다.
원했던 것은 모두 놓쳤다.
내게 남은 건 망한 기분뿐.
그 당시엔 떠내려가다 만난 섬 같은 학교에 마음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까마득한 것도 모른 채
정말 온 힘을 다해 놀았다.
낮에는 햇빛을 피해 어두운 PC방에 틀어박혔고,
밤이면 번쩍이는 불빛을 따라 술집으로 향했다.
자괴감조차 사치 같았다.
한심하다는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소비했다.
시험 날,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친구가 제안했다.
"가위바위보 하자. 네가 이기면 나가고, 내가 이기면 보는 거 어때?"
즐겁게 수락했고, 아뿔싸 이겨 버리고 말았다.
뒤로 넘어오는 하얀 시험지가 까만 내게 닿아 물들 새라
황급히 뒷문을 빠져나왔던 날도 있었다.
사회인으로 처음 가진 직업은 주 5일, 9시 출근 - 6시 퇴근이 아니었다.
늦은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밤늦게까지 놀고, 대낮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차피 평생 일할 거잖아. 젊을 땐 써야지!"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젊음, 마음껏 누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마음으로, 들어오는 돈은 남을 틈 없이 빠져나갔다.
지금의 나는 반면교사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보완하면 되지만,
'후회'는 그저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매이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한없는 우울의 늪에 빠질 뿐이다.
실패에서 얻을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음번엔 어떻게 할지'에 대한 힌트다.
그래서 그 철없던 시간 속에서도 의미를 더듬어본다.
그때 그렇게 놀아서, 지금은 한이 없다.
인생에서 엉망일 시기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일찍이 할당량을 거의 다 채웠을 듯싶다.
이젠 게임이 재미가 없다.
예전처럼 물건에 대한 소유욕도 없다.
술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무식하게 알코올 그 자체를 들이부은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마리아주를 즐기며 맛과 향, 그리고 곁들이는 깊은 대화를 음미한다.
노동의 고됨을 알게 된 뒤로,
돈도 시간을 들여 번 만큼 소중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귀해졌다.
얕은 관계와 무의미한 시간들, 떠밀려 다니는 나날들이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