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못 산 20대: 인생 아주 쉽게 살던 어린 어른

"아쉬워는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

by 유영

"헉"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현듯 주변의 싸함이 느껴졌다.

번쩍 눈을 떴다. 낮이다.

낯선 천장, 숨 막히는 정적.

휴, 학교 앞 친구 자취방이다.

이불을 다시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어차피 늦었다. 어차피 안 할 거다.

나를 위한 변명조차 피곤하던 그 시절이었다.


나는 '어린 어른'이었다.

스무 살, 그토록 되고 싶던 어른이 되었는데,

실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었다.


"깔끔하게 F 받고 다시 듣자. C나 D 받는 것보다 낫잖아!"

자체 휴강이 일상이었고,

인생도 그렇게 간단하게 리셋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입시 전문가가 나를 봤다면,

분명 "실패의 대표사례"라 했 거다.

문이과를 오가며 수시도 정시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논술 시험날, 수능 당일 모두 악재의 악재가 겹쳤고 -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만든 악재의 연속이었다.

원했던 것은 모두 놓쳤다.

내게 남은 건 망한 기분뿐.

그 당시엔 떠내려가다 만난 섬 같은 학교에 마음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 다 망했다. 몰라, 일단 놀자!"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까마득한 것도 모른 채

정말 온 힘을 다해 놀았다.


낮에는 햇빛을 피해 어두운 PC방에 틀어박혔고,

밤이면 번쩍이는 불빛을 따라 술집으로 향했다.

자괴감조차 사치 같았다.

한심하다는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소비했다.


시험 날,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친구가 제안했다.

"가위바위보 하자. 네가 이기면 나가고, 내가 이기면 보는 거 어때?"

즐겁게 수락했고, 아뿔싸 이겨 버리고 말았다.

뒤로 넘어오는 하얀 시험지가 까만 내게 닿아 물들 새라

황급히 뒷문을 빠져나왔던 날도 있었다.


사회인으로 처음 가진 직업은 주 5일, 9시 출근 - 6시 퇴근이 아니었다.

늦은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밤늦게까지 놀고, 대낮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차피 평생 일할 거잖아. 젊을 땐 써야지!"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젊음, 마음껏 누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마음으로, 들어오는 돈은 남을 틈 없이 빠져나갔다.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했던 나날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반면교사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는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


'아쉬운' 것은 보완하면 되지만,

'후회'는 그저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매이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한없는 우울의 늪에 빠질 뿐이다.


실패에서 얻을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음번엔 어떻게 할지'에 대한 힌트다.


그래서 그 철없던 시간 속에서도 의미를 더듬어본다.


그때 그렇게 놀아서, 지금은 한이 없다.

인생에서 엉망일 시기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일찍이 할당량을 거의 다 채웠을 듯싶다.


젠 게임이 재미가 없다.

예전처럼 물건에 대한 소유욕도 없다.

술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무식하게 알코올 그 자체를 들이부은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마리아주를 즐기며 맛과 향, 그리고 곁들이는 깊은 대화를 음미한다.

노동의 고됨을 알게 된 뒤로,

돈도 시간을 들여 번 만큼 소중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귀해졌다.

얕은 관계와 무의미한 시간들, 떠밀려 다니는 나날들이 싫어졌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시간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었다.


아쉬운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조금은 나아진, 지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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