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된 말랑한 햇병아리
어느 책에서 읽은, 인상 깊은 한 구절이 있다.
숫자가 생기며 인간이 불행해졌다는 -
정확히는 시간을 세며 불행해졌다는 내용이었던가.
나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왜 다들 나이를 제일 먼저 물어볼까.
나이를 말하면 순간 스쳐가는 - 흠칫 놀라는 눈빛을 보는 것은 슬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거야!
3개월의 수습 기간이 있었다.
학원 내에 다른 강사들, 실장님, 부원장, 원장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고
그들과 같이 웃고 떠들며 일하긴 했지만
정작 교실 내에서, 실제로 일은 나 혼자 했기에
여러 타인과 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
다양한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근데, 뭐 이제 와서 걱정한들 어쩌겠어!'
급하게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배웠다.
운전은 역시 돈 주고 남에게 배워야 한다.
(지금도 남편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고, 나도 남편을 조수석에 앉히고 싶지 않다.)
여러모로 떨리는 첫 출근!
구성원은 소수였고, 모두 경력 많은 40대였다.
그분들은 '신입'을 너무 오랜만에 본다고 하셨다.
그분들에게 나는
도움 주어야 할 햇병아리로 보였던 것이다! 하하
30대가 되어 운이 트이기 시작한 걸까.
이곳으로 지정 받은 것은 아주 큰 행운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수습은 전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당연하다.)
그분들도 수습직원 받기를 거절했으나 나는 던져졌다.
다행스럽게도 33살 막내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옆에 끼고 일을 차근차근 자세히 잘 알려주셨고 직접 해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실수할 땐, 원래 틀리면서 배우는 거라 격려해주시며 차분히 해결 방법을 알려주셨다.
나도 30년 살며 쌓인 눈치와
사람 대하는 일을 하며 체득한 사회적 스킬을 최대한 발휘해
감사한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걱정이 아주 무색하게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억도 너무 많다.
사이가 좋은 원팀이어서 같이 놀러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매해 만나는 좋은 인연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나는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고,
큰 부서로 옮긴 지금도 잘 버텨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30대여, 우리에겐 연륜이 있다.
너무 겁먹지 말고 새로이 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