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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할 수 없다면

나는 세상을 관찰한다

by 잇슈

종종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은 나의 사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이유로 내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상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게 합리화되는 걸까.

단지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아픈 걸까.

그들은 왜 몰랐다는 자신의 사정만 설명하며, 선뜻 사과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시선이 절로 아래를 향하고. 무심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개미 한 마리가 보였다. 그 개미는 너무 작아서 자칫하면 인간의 발에 밟혀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떠올랐다. 서울숲 공원에 너무 많이 죽어있던 개미의 사체들. 아는 지인과 그 공원을 걷다가, 사방에 널려 있던 개미들의 죽음에 너무 놀라서 황급히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 우리 둘은 같은 마음이었다.


‘너무 끔찍하다.’


그 개미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다. 인간의 눈은 두 개이고, 우리가 모든 걸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개미를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생명을 위협하거나 해칠 정도의 행동을 하면, 잘못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까 이때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낮은 자세가 필요한 듯하다. 적극적인 공감이 어렵다면, 소극적인 이해의 표현만이라도.


‘그럴 수 있겠다.’

‘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세상에는 내가 온전히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과 감정도 있구나. 상대방이 내게 너무 억울하게 몰아가지 않는 이상. 그의 생각과 감정을 작게나마 인정해 주는. 그 정도 말은 건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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