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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의 인연을 찾아서

나는 세상을 관찰한다

by 잇슈


나는 가족 중에서도 유독 외할머니를 사랑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과 행복의 시절이 그녀가 존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애착을 느꼈던 듯하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녀에게 있어 나는 가장 아끼는 손주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외할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몸이 약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 중에서도 특히 나의 어머니에게 건강한 음식과 약재를 챙겨주었던 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 후, 외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이거 가져가서 너랑 네 남편 먹어라. 몸에 좋은 거야.’

‘네 첫째 먹게 가져가라.’


그로 인해 다른 친척들은 외할머니가 우리 가족만 챙긴다고 서운해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둘째였고, 집안의 막내였다.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챙겨주는 모든 것들은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언제나. 그래서 나는 그때 대답했다.


‘외할머니는 나 먹으라고 가져가라고 한 적도 한 번도 없어.’


그 말을 듣고 놀란 나의 어머니는 그 얘기를 외할머니에게 전했다. 이에 외할머니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왜 둘째는 생각이 안 났지?’


아무 사견도 사심도 없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서운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때 깨달았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무서운 것인지.


가끔 가정폭력 피해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 슬프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세상은 부모가 전부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한테 맞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대니까. 이혼 직전의 부부를 상담할 때도 비슷했다. 한쪽의 헌신적인 사랑이 다른 쪽을 탐욕스럽게 만들기도 하니까.


가족이건 연인이건. 세상에 널려 있는 사랑의 시소들이 끊임없이 불균형한 것이다.

눈먼 사랑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되는 건. 결국 서로가 마주 볼 때.

서로가 서로의 세상에 전부가 될 때 가능하겠지. 그래서 인간이 끊임없이 외로운가 보다.

붉은 실의 인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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