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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Aug 23.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13화-서아람)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선생님, 저희 아이가 ADHD라고 합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해서 이제 문제 행동이 조금 줄어들 것 같은데, 학교에서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꼭 연락 주세요.”

  세헌이 어머니의 전화였다. 어쩐지 세헌의 행동이 아람의 눈에 띈다 싶었다. 세헌은 10분도 가만히 앉아 있길 힘들어하고, 쉬는 시간에는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대답하거나 다른 사람의 활동을 간섭하고 방해했다. 아람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교과 선생님들 입에 세헌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학기초 탐색기를 지나 학생들의 성향과 생활 태도를 파악한 4월 초 학부모 상담 주간에 세헌이 부모님과 깊이 대화를 나눠볼 참이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과잉 행동 때문에 세헌이도 참 힘들었겠다.’

  아람은 포털 사이트에서 ADHD 증상을 검색했다. ADHD의 기본 증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교사들은 보통 일 년에 한 명 꼴로 ADHD 증상을 가진 학생과 만난다-증상이 유아기부터 드러나는지, 또 이런 증상이 어른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궁금했다. 아란은 '성인 ADHD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일을 할 때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거나 부주의한 실수를 자주 저지르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경청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지며 일상적인 일을 자주 잊어버린다.........’

  아람은 불현듯 성재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성재는 아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왔다 갔다 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야? 왜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지?’

  식사를 마친 성재는 아람에게 자기 차를 타고 카페에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점심 식사 시간에 만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성재는 아람에게 저녁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자고 할 리가 없었다.

  ‘너무 긴장돼서 그랬나 봐. 긴장해서 여자 눈도 똑바로 못 보는 순진한 남자라니. 연애 많이 안 해봤나 봐. 마음에 들어.’

  아람은 성재와 짧게 연애하고 결혼했다. 장거리 연애였기 때문에 결혼 전 만난 횟수를 손으로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일 년 동안 주말 부부였다.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것 말고는 연애할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결혼 이 년 차에 아람이 임신을 했다. 성재는 무리해서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직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성재는 무슨 일이든 끝을 맺는 법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면 개수대에 들어가 있는 그것만 씻었다. 개수대 바깥이나 식탁에 있는 것은 누가 처리하라는 것인지? 성재가 설거지를 끝낸-아람이 볼 땐 아직 설거지거리가 한참 남아 있지만-싱크대에는 수세미 거품이 그대로였고, 거름망에 음식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이 정도는 아람이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다. 성재는 자신이 좀 전까지 하던 일을 잊고 다른 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빨래를 개키다 말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집 안에서 한 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실내화를 신지 않고 몸무게를 발뒤꿈치에 싣고 쿵쾅거리며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정신 사나워. 그리고 실내화 좀 신고 걸어 다녀. 그렇게 걸으면 아랫집 시끄러워.”

  “어? 어어.”

  성재의 대답에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아람이 깨달을 때까지 몇 년이 걸렸다. 돌아서면 성재는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말을 바꾸기 일쑤였다. 아람은 분명히 기억하는 일을, 성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딱 잡아뗐다.

  “기억이 안 나면 안 난다고 해. 왜 바득바득 우기는 거야?”

  결혼 5년 만에 아람은 화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비슷한 패턴의 일이 반복되자 아람은 증거를 만들어두기 시작했다. 증거를 들이대면 성재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수긍했다.


  성재 주위는 늘 너저분했다. 식탁 겸 책상 위에 성재의 서류와 영수증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아람이 치우고 돌아서면 또 어질러져 있었다. 성재는 옷장이나 싱크대 등 서랍이나 문짝을 열면 닫을 줄 몰랐다.

  아람이 얘기할 때면 성재의 육체는 아람 앞에 있지만 영혼은 안드로메다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재는 아람이 두세 번 반복한 이야기도 잊기 일쑤였다.

  “내 말 듣고 있어?”

  성재는 아람의 말을 5분도 집중해서 듣지 못했다. 5분이 넘어가면 초점이 흐려지는 성재를 보며 아람은 정신 차리고 이야기 좀 들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운전할 때라고 다를 리 없었다. 빠져야 하는 길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가뜩이나 집중력이 낮으면서 운전할 때 오는 전화를 오는 족족 충실하게 받았다. 운전 중이니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해도 큰일 날 것 같지 않은 통화였다.

  “그렇게 자꾸 길 놓치지 말고 내비게이션 소리를 켜면 되잖아. 왜 소리를 끄는 거야?”

  성재 친구 부부와 여행 간 날이었다. 성재의 친구는 학창 시절 성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산만해. 한 시간 쭉 앉아서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어.”

  “학교 다닐 때부터 집중을 잘 못했군요. 운전할 때도 얼마나 산만한지. 여기 올 때 불안 불안했어요. 길도 두 번 놓치고요. 길 자주 놓치면서 내비게이션 소리를 안 켜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람은 하소연하듯 말했다.

  “난 내비게이션 음성이 안 들려. 어차피 안 들리니까 소리 끄고 가는 거야.”

  ‘아.... 안 들리는구나. 정신이 분산되어 소리에 집중을 못 하는구나.’

  결혼 8년 만에 아람이 얻은 깨달음이었다.  





  아람의 건강검진일이 다가왔다. 검진 프로그램에 수면 위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면 내시경 후에는 운전을 할 수 없다. 또 아람은 몽롱한 상태가 오래가는 편이라 오전에 위내시경을 해도 저녁 식사 전까지는 맥을 못 차리고 낮잠을 자는 편이다. 아람은 건강 검진 2주 전부터 성재에게 건강 검진 일정을 인식시켰다.

  “이번 주 토요일 건강검진 따라가는 거 잊지 마.”

  학교에 있을 때 성재에게 전화가 왔다.

  “아람아, 이번 주 토요일에 할머니 산소에 가자.”

  “응? 뭐라고? 이번 주 토요일? 건강검진하는 날이잖아.”

  “그럼 검진하고 오후에!”

  “수면 내시경 하면 오후에도 정신 못 차려.”

  “그럼 도대체 언제 산소에 가보겠다는 거야? 결혼하고 할머니 산소 몇 번 갔어?”

  성재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람은 누가 들을까 봐 핸드폰 스피커를 손으로 막았다. 이렇게 맥락없이 툭 튀어 나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게다가 소리는 왜 지르는 것인지? 전화를 끊고 어안이 벙벙한 순간, 아람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교실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뜨린 세헌이 떠올랐다.




  


  아람은 성인 ADHD 증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자신이 관찰한 성재 모습을 떠올리며 자가진단지에 체크해보았다. 성재는 ADHD와 정상의 경계선인 듯했다. 집에 온 성재의 기분을 살폈다. 아람은 성재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틈을 타고 들어가 묻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 대답할 것을 부탁했다. 성재는 성인 ADHD 자가진단 테스트 열 개 항목 중 일곱 개 항목에 ‘예’로 답했다. 다섯 항목 이상 ‘예’ 면 ADHD일 가능성이 높다는 테스트지였다.

  ADHD 프레임으로 성재의 행동을 돌아보니 그동안 아람의 결혼생활에서 힘들었던 모든 일이 ADHD 증상과 관련 있었다. 아람은 조심스레 성재의 눈치를 보며 자가진단 테스트 결과를 말했다. 얘기를 들은 성재의 반응은 의외였다.

  “나 천재인가 봐.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데도 이렇게 멀쩡하게 대학교 나와서 회사다니며 잘 살고 있잖아. 하하하하.”

  아람은 성재의 높은 자존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 병원 가서 제대로 진단받아 보자.”

  “아니야. 나 ADHD 맞는 것 같아. 제대로 진단받으면 뭐해? 치료법이 있어?”

  아람은, 약물치료나 인지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된다는 글을 읽었다. ADHD라면 어디까지가 질병이고 어디부터 성재의 성격인 것인가? 만약 성재가 ADHD가 아니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재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변하기 위해 노력할까? 유레카를 외친 것도 잠시였다. 아람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토요일 아침, 웬일로 일찍 일어난 성재가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아람은 식탁으로 가서 성재가 내린 커피로 마른 입을 축였다. 바삭한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 샐러드까지 모두 아람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ADHD 자가진단 테스트한 게 효과가 있나 봐. 안 하던 행동을 다 하고.’

  아람은 긍정적으로 변할 결혼 생활이 기대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아침 차려주니 그렇게 좋아? 오늘 어디 놀러 가 볼까?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얘기해봐. 내가 코스 짜 볼게.”

  “응? 오늘 엄마 생신이잖아. 점심때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장모님 드릴 용돈은 자기가 챙긴다더니, 또 잊었어?”

  “내가? 오늘 장모님 생신이야?”

  아람은 토스트를 내려놓고 성재 눈을 바라보았다. 3초 만에 시선을 거두고 거실을 왔다 갔다 걷는 성재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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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토요일에는 같이 병원 가보자. 약을 먹든 어떻게 해야지, 안 되겠어. 분명히 ADHD일 거야. 아닐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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