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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Aug 30.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15화-임은진)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퇴근 후 마트에 온 두 사람은 오늘도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은진의 남편 벤자민은-은진은 사랑을 담아 ‘벤’이라고 부른다-은진보다 일곱 살 연하인 데다가 미국 배우 브래드피트의 동생이래도 믿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다. 185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와 눈에 띄게 잘생긴 그는 반올림하면 160센티미터인, 우리나라 미의 기준으로는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조금 초과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은진의 외모와 대조를 이루는 데다가 한국 남성들에게서 보기 힘든 과도한 스윗함과 신사도가 몸에 배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저 여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저런 멋진 남자와 만나는 걸까?’, ‘설마 부부?’, ‘남자가 한참 어려 보이는데 무슨 사이일까?’, ‘저렇게 잘생기고 멋진 서양 남자가 왜 이 시골 부여에?’ 등 온갖 궁금증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은진은 이미 수도 없이 겪은 일이라 이제 이런 상황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눈길을 주는 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려는 듯 ‘이 남자가 내 남자인데 뭐? 어때서?’라는 시선을 뿌리며 은진은 벤자민의 품에 폭 안겨 걷는다.


  내일은 미국에서 여동생 가족이 오기로 한 날이라 평소보다 좀 더 많은 식재료를 샀다. 쇼핑을 마친 은진 부부는 마트 근처 주꾸미 식당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시선이 은진 부부를 따라온다. 벤의 입에서 한국어가 나올까, 영어가 나올까 궁금했던 모양이다. 벤이 큰 소리로 ‘여기 주꾸미 2인분요. 아주 순하게.’라고 말하자 밥을 먹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한국말 잘해’라며 쑥덕이는 것을 그곳에 있는 누구라도 느꼈을 것이다. 벤은 이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 시골 동네 사람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능청맞음까지 장착했다. 마요네즈를 듬뿍 찍은 주꾸미를 깻잎에 싸서 은진의 입에 먼저 넣어준 다음 자기 것을 싸 먹는 벤은 타고난 사랑꾼이다.








  부여에서 태어난 은진은 부여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공주 사범대를 나와 충남으로 임용고시에 지원하고 시험을 치렀다. 공주와 부여를 왔다 갔다 하며 교사로 일한 지 25년이 되었다.

  은진은 5년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벤자민을 만났다. 벤자민은 은진이 근무하던 학교로 발령받은 영어 원어민 교사였다. 은진은 원어민 관련 업무 담당 교사였다. 마흔이 넘으면서 간간이 이어져오던 소개팅도, 선도 모두 다 끊겼다. 은진은 ‘이번 생엔 혼자 살아야 될 팔자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예전에 그 남자와 결혼했어야 했는데’라든지 ‘그때 내가 너무 콧대가 높았어’와 같은 후회를 한 지도 오래되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노후 준비나 잘해놓자고 마음먹었을 때 영화처럼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서울 한복판을 걸어가도 사람들이 뒤돌아 볼 것 같은 영화배우 같은 남자가 은진과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었다. 은진이 가장 먼저 맡은 업무는 벤자민이 거처할 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월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사 당일 오전에는 직접 집 청소도 했다.

  ‘교사가 이런 일까지 해야 돼?’

  집 청소를 끝낸 은진은 교육청에 벤자민을 픽업하러 갔다. 벤자민을 본 순간, 집을 구하고 청소를 한 수고가 눈 녹듯 사라졌다. 은진의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 뛰었다.  

  벤자민은 은진 수업의 코 티처(co-teacher)였기 때문에 은진과 시간표가 거의 일치했다. 시간표가 비슷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매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이미 중국에서 오래 원어민 교사로 일한 벤은 중국어를 곧잘 했고, 여세를 몰아 한국어도 섭렵할 모양인 듯했다.

  “임은진 선생님, 주말에 시간 괜찮으면 저한테 한국어 좀 가르쳐 주시겠어요? 밥도 사드리고 수강료도 드릴게요.”

  혀에 설탕을 바른듯한 이 스윗한 서양 남자의 부탁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은진은 부여가 옛날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관광지가 많다며, 괜찮다면 공주와 부여에 걸쳐진 백제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며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호기심 많은 벤자민은 너무 감사하다며 큰 키를 절반으로 접어 은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가만 세어보니 6개월이 넘는 시간이었다. 벤자민과 은진은 주말마다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친다는 핑계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벤자민이 은진에게 떠듬떠듬 한국어로 물었다.

  “은진 씨는 왜 결혼 안 했어요? 한국에서는 이런 거 물어도 되죠?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이런 거 쉽게 물어요.”

  은진은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갈 듯 웃었다. 은진은 콧대 높았던 지난날을 벤자민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안’과 ‘못’의 차이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벤자민은 대학교 1학년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 모두를 잃었다고 했다.

  “두 분이서 손 꼭 잡고 세계 여행을 즐기셨는데, 그렇게 된 이후로 마음이 허전해서 한 곳에 잘 머물지 못했어요. 학기 중에 번 돈으로 방학이면 훌쩍 떠나는 삶을 반복하다가, 졸업한 다음부터는 미국에 머문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여자 친구가 생겨도 제가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 그리고 백제의 수도였다는 부여.. 이곳이 참 좋아요. 왠지 여기서 계속 살게 될 것 같아요.”

  벤자민은 숲 속에서 이른 아침에 만난,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싱그러운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은 저를 ‘벤’이라고 불렀어요. 은진 씨, 저랑 둘이 있을 때 벤이라고 불러 주시겠어요?”

  은진의 마음에 그린라이트가 켜졌다. 진작부터 둘 사이에 켜진 불을 이제야 확신한 것이겠지만. 이후 은진은 그를 ‘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구에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은진의 부모님은 홀로 남을 첫째 딸 걱정에 애간장이 탔는데, 결혼할 사람이라며 미국 영화배우 뺨치는 사람을 데리고 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요즘 텔레비전 보니까 서양 사람들이랑 결혼하는 여자들 많아. 벤자민? 우리 은진이 끝까지 잘 지켜줄 거지?”

  “그럼요. 저 장인 장모 보러 자주 올게요. 맛있는 밥 많이 해주세요.”

  ‘님’ 자를 다 빼먹은 사위의 어설픈 한국어에도 은진의 부모님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은진은 대전에 사두었던 아파트를 팔고 공주에 가까운 부여 지역의 단독주택을 샀다. 벤자민은 오래 해외를 돌며 집 고치는 기술을 익힌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는 분야에 있어 모르는 게 없었다. 벤자민이 이런저런 참견을 하면 처음에는 그의 외모와 어설픈 한국어를 신기하게 보던 인부들이 점점 만만치 않은 고수의 기운을 느끼며 오차 없이 작업을 완수했다.


  두 사람은 신혼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에서 벤자민의 이모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 세 사람이 왔다. 벤자민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우정을 쌓은 친구 부부와, 중국에서 사귄 친구까지 벤자민 손님은 열 명이었다. 은진의 축하객은 좀 더 많았다. 은진의 직계 가족과 가족의 배우자, 자녀까지 열한 명이었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양해를 구해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홀로 축하하러 와줄 것을 부탁했다. 장소가 비좁았기 때문이다. 대문 밖에서 보더라도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직장 동료들 덕분에 마당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이웃 주민들까지 담장 위로 목을 쭉 뻗어 낯선 풍경을 구경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직장 동료들은 은진이 예약해 둔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은진의 집에서는 2박 3일에 걸친 긴 파티가 이어졌다. 대부분 긴 휴가를 내고 은진과 벤자민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은진은 자신이 마치 영화 ‘맘마미아’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리스의 푸른 바다만 보이지 않을 뿐, 파티는 ‘어디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람쌤,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은진은 그날따라 옆자리 기획 쌤에게 신경이 쓰였다.

  “부장님, 커피 한 잔 하면서 산책하실래요?”

  아직 점심시간이 40분 남아 있었다. 은진은 아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람은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성인 ADHD가 의심되며 소통이 잘 안 되는 남편 때문에 외롭다는 것이었다.

  “부장님 남편이 미국 사람이잖아요. 의사소통 잘 돼요? 저처럼 소통이 잘 안 돼서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으세요?”

  은진은 잠시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저는 남편과 의사소통하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 말에는 미묘한 감정 차이를 나타내는 단어가 많잖아요. 슬픔을 느낀다든가, 후회한다든가, 유감이라든가, 안 됐다와 같은 표현이 ‘feel bad’로 퉁쳐지는 모국어를 가진 사람이다 보니 제 감정을 온전히 전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제가 친구의 부부 문제에 감정 이입해 친구를 안타까워하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인데 왜 은진 씨가 마음 아파하냐’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우리’ 중심 사회에서 자란 제가 ‘나’ 중심 사회에서 자란 사람과 살며 서로의 사고를 공감하지 못할 때 벽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도 생각보다 덜 속상한 건, 결혼하기 전부터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와 ‘저 사람은 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면 시작부터 그만큼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아람은 커피를 홀짝이며 은진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는 듯했다.








  미국에 사는 막내 동생 예진네 가족이 왔다. 벤과 은진은 김치찜과 부추전을 만들어 동동주와 함께 내놓았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 한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조카들을 위해 벤의 주특기인 봉골레 파스타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부, 언니랑 살면서 힘든 건 없어요?”

  예진이 벤에게 물었다.

  “누구와 살든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는거 아니에요? 힘들 때, 당연히 있죠. 은진 씨 집 청소 안 하는 거 알죠?”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자매들의 사소한 버릇은 예진도 은진도 앞 다퉈 읊을 수 있었다. 예진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여전히 그런가 봐요. 고생이 많겠어요.”

  벤은 은진을 보며 둘만 있을 때 자주 보내는, 솜사탕 같은 미소를 보냈다.

  “괜찮아요. 청소는 제가 하면 돼요. 제가 잘 못하는 부분을 은진 씨가 채워주고 있을 테니. 그래서 결혼하나 봐요.”

  “그래서?”

  예진과 경민이 동시에 물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하나가 되기 위해.”

  이쯤에서는 예진과 경민뿐만 아니라 조카 해나와 우빈이도 온몸이 오글거려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혼해서 사니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어 든든하고 따뜻하다는 은진의 말에 예진은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못 들어봤냐고 물었다. 은진이 부부학 개론 강사처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자 벤이 한 마디를 덧붙이며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은진 씨 편이에요.”

  “아휴. 닭살 돋아. 이 부부 얘기 너무 간지러워서 못 듣고 있겠어.”






  은진은 ‘이제 짝을 만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다’라고 생각하거나, ‘혼자 사는 삶이 더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세상 어딘가에 당신 반쪽이 분명 있다고.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살 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먼저 상대방을 수용하면 상대방도 당신을 따지고 경계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기쁨이 삶의 부피를 늘려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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