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서른넷 여자가 소개팅에 나가면 머리 빠진 남자가 상대로 나온다고 말했던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요리 학교인 프랑스 르코르동블뢰(le cordon bleu)를 졸업하고, 프랑스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현장 수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서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로 경험과 경력을 쌓고 있다고 했다. 이쪽 업계에서는 이미 TV에 나오는 유명 셰프 못지않은 기대주였다. 키도 크고 얼굴도 그만하면 평균 이상. 대화가 잘 통하고 입담도 좋고,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매너도 좋았다. 결정적으로 머리숱까지 많은 두 살 연하였다. 나경은, 능력 있는 여자들은 연하와 결혼한다는, 통계치가 없어 사실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왠지 일리가 있는 듯한 풍문의 근거로 자신의 사례가 하나 더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만남이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둘은 연애가 아닌, 결혼할 사람을 찾아 소개팅 자리에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언제 결혼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을 끄는 게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섯 번째 데이트 때 태경이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상견례까지 일사천리로 마친 두 사람에게 주말마다 기다리는 결혼 준비 스케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곧 데이트였다.
태경은 한국에 들어와서부터 서울에 있는 서른네 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태경의 이름으로 대출해서 태경 몫으로 사 둔 집이었다. 대출금을 태경이 갚았지만 실상 한 달에 한 번씩 대출금만큼의 현금을 부모님께 전해받았다.
‘내가 이 남자를 만나려고 여태 짝을 못 찾았던 거구나!’
그동안 나경이 꿈꿔 온 완벽한 결혼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직업 좋고, 재력 있고, 키가 크고, 외모도 훈훈하고, 다정다감하며, 말이 통하는 남자! 눈이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는 비아냥을 온몸으로 받으며 신중하게 결혼 상대를 고른 보람이 있었다.
- 나경아, 김치 겉절이 만들어뒀는데 주말에 와서 좀 가져가렴.
- 나경아, 아버지가 너 몸보신 좀 시켜주라고 전복을 많이 사 왔어. 전복 버터구이 해줄게. 주말에 올래?
- 나경아, 가을 신상 보러 같이 백화점 갈래? 내가 너희 옷 한 벌씩 사줄게. 옷 사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태경이가 일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어머니에게 문자가 왔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처럼 주말에 꼬박꼬박 쉬는 것도 아닌데, 나경의 시어머니는 용케 아들의 휴일을 꿰고 있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일주일치 먹거리를 챙겨 주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셔서 나경은 몸 둘 바를 몰랐다. 태경은 또 어떤가. 결혼 후에도 결혼 전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나경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해야 할 집안일을 찾아서 나경의 손이 가지 않도록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해 두었다. 오래 타지에서 혼자 살며 집안일을 손수 해온 티가 났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경이 임신했다. 양가 어른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려질 것이다.
“나경아 너 몸조심해야지. 입덧 때문에 힘들 텐데, 내가 가서 입에 맞는 것 좀 해 줄게.”
“태경이 출근했지? 주말에 혼자 집에 있으면 밥 챙겨 먹기도 귀찮을 텐데 우리 집으로 와. 쉬다가 때 되면 밥 먹고. 태경이한테 퇴근길에 여기로 들러서 너 데리고 가라고 하면 되잖아?”
임신 기간 동안 시어머니가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셔서 오히려 친정 엄마가 서운해하실 정도였다.
“주말마다 시어머니가 집으로 오거나, 네가 시댁으로 가니, 엄마는 언제 가 보니?”
“하하. 엄마는 참. 애 낳고 휴직 기간에 엄마 손이 제일 많이 필요하니 그때 실컷 오세요. 아직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됐고, 시부모님이 예뻐해 주시는데 어떻게 마다하겠어요? 시댁에 가면 매끼 진수성찬이야. 엄마는 편안하게 있다가 손주 태어나면 그때 도와주세요.”
손주가 태어났다. 태경이 집에서는 세 번째 손주였다. 태경의 누나 아란이 먼저 아들 손주 둘을 부모님 품에 안겨 드렸다.
“딸 손주가 더 예쁘네. 게다가 태경이 딸이잖아. 이제야 고백하는데, 나는 태경이가 프랑스에서 안 들어오고 프랑스 여자랑 결혼해서 쭉 거기서 산다고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어.”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라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잘난 아들이 제 곁으로 돌아와 주말마다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까지 안겨 주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주말에 집에 와. 민아 봐줄 게. 너도 좀 쉬어야지.”
출산 후에도 나경의 시댁행은 계속되었다. 임신했을 때는 먹을 것 걱정을 덜어서 좋았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시부모님이든 친정 부모님이든 도와주는 손길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푸석푸석한 얼굴로 민아 젖을 먹이기에는 제 집이 편했고, 이왕이면 시부모님 보다는 친정 부모님이 와서 도와주는 게 좋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독박 육아를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도 바람이 통할 정도의 거리는 필요한 법. 시부모님과 너무 가깝게 지낸 것이 화근이었을까? 주말이면 시댁에 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민아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경은 주말이면 시댁이 아니라 태경과 민아와 셋이서 나들이를 나가고 싶었다.
“어머님, 저희 이번 주말에는 나들이 다녀올까 해요.”
“그래? 잘됐다. 우리도 나들이 가고 싶었는데, 너희끼리 민아 데리고 밖에서 밥 먹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잖아. 차 한 대로 같이 가자.”
“네? 아... 네...”
태경을 설득해 시부모님 없이, 태경과 민아와 나경이 셋이서 오붓한 주말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평일 중에 하루는 나경의 집으로 시어머니가 찾아왔다.
“너희가 주말에 안 와서. 반찬이랑 국 좀 챙겨 왔어.”
시어머니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곧장 냉장고 쪽을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는 한참 두리번거리며 냉장고 속을 살핀 다음 아무렇게나 들어가 있는 반찬 통의 배열을 정리하고 새 반찬통을 넣었다. 냉동실에 넣을 것도 없는데 냉동실을 칸칸 살펴보는 저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민아의 두 돌이 지났을 때 나경은 직장으로 복귀했다. S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장 어린이집이었다. 민아를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으로 출근하자 시어머니의 간섭이 더 심해졌다.
“둘 다 일하느라 바쁜데 집 꼴이 말이 아닐 거 아냐? 내가 가끔 가서 청소라도 좀 해줄게.”
“아니에요 어머니. 민아 아빠 출근이 늦어서 아침에 집 정리해놓고 나가고요. 퇴근하고 와서 민아 밥만 챙겨 먹이면 별로 할 것도 없어요. 어머님이 저희 반찬은 늘 챙겨 주시니 저는 그거 먹으면 되고, 민아 아빠는 늦게 퇴근해서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편이고요.”
“내가 집안일 안 해봤니,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게 집안일이야. 안 하면 금방 지저분해지고. 남자가 정리 좀 해봤자 얼마나 잘해놓겠어. 내가 일주일에 한두 번만 가서 해도 훨씬 나을 거야. 가서 보고 반찬 다 안 먹은 것도 내가 알아서 싹 처리할게. 설거지해서 빈 반찬통 가져올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
나경은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멘 듯 갑갑했다. 태경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반색하며 말했다.
“잘됐네. 자기 일도 좀 덜고. 반찬통 씻어서 갖다 드리는 수고도 덜고.”
“응? 잘 됐다고? 나는 불편해.”
“왜 불편해?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가 우리 집에 들르셨잖아. 우리도 주말에 자주 가고. 가끔 보는 사이도 아니고 뭘. 이제 한 가족인데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
나경은 태경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 잘못이었다. 시어머니는 결혼 초부터 경계 안으로 무던히 드나들었고, 경계선을 치지 않고 시어머니를 받아들인 건 자신이었다. 불편하고 싫다면 처음부터 선을 그었어야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필요할 땐 호의를 넙죽 받다가 ‘여기부턴 제가 불편하니 이제 그만해 주세요’라고 말하기엔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었다. 묘하게 한 끗 차이였다. 민아가 어려 항상 옆에 붙어 있어야 했던 시기에는 누가 밥이라도 챙겨주면 육아가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주말 시댁행에 자발성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시댁과 거리를 좀 두고 살아도 태경과 나경이 둘이서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어머니는 점점 더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태경이 더 이상 남의 밑에서 일하지 않겠다며 오너 셰프의 길을 선택했다. 압구정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위해 태경과 나경이 할 수 있는 대출을 다 끌어와도 돈이 부족했다. 결국 시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큰돈을 들여 오픈한 레스토랑은 다행히 장사가 잘 되었다. 레스토랑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였다. 주말 디너는 6개월치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받은 게 모두 족쇄였다. 친구들은 늦은 나이에 부족할 게 없는 신랑을 만나 잘 사는 나경을 부러워했다. 나경의 동생 영경도 마찬가지였다.
“제부 하는 일은 좀 어때?”
“치킨 가게도 쉬운 게 아니더라. 이전 사장이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도 맛이 변했다고. 예상 매출의 절반밖에 안 돼서 내가 복직했어. 거의 최저시급 받고 재택근무 중이야. 형부는 어때? 압구정 돈 다 쓸어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무슨. 아니야. 에휴... 나도 속앓이 하는 거 많아.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언니가 뭐 시어머니랑 같이 살아? 나도 시어머니가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간섭해도 좋으니까 물질적으로 팍팍 지원해주면 숨통이 좀 트이겠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갈수록 숨이 막혀. 태경이 가게 오픈하는 데 도움 주고 나서는 민아 교육까지 간섭해. 일반 어린이집 그런 곳에 보내면 되겠냐고. 태경이 사회적 지위도 있고 한데, 내년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지 않냐. 이제 한글 공부도 좀 시켜야 하지 않냐. 한글이랑 영어 구분하기 전에 어서 영어공부를 시키라는데.. 민아 겨우 네 살이야. 난 아직 공부시킬 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차일피일 미루면 시어머니가 방문 선생님 한 명 데리고 올 것 같아. 자기가 결제까지 다 하고는. 그리고 나더러 이제 곧 마흔인데 어서 둘째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언니 생각은?”
“일단 나도 마흔 전에 둘째를 가져야겠다 싶어서 직장 일 그만둘까 해. 태경이한테 일 그만두는 대신 어머니는 집에 좀 그만 오시게 해달라고 말했어. 내가 앞으로 애 둘 보면서 혼자 육아하는 게 걱정되면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이모님을 구해 달라고. 내가 편한 대로 좀 도와달라고.”
“형부 반응은 어때?”
“직장 그만두는 건 흔쾌히 동의. 어머님 못 오시게 하고 청소 이모님 구하는 건 생각 좀 해보자네.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나 봐. 어머님 마음 상할까 봐 걱정도 되겠지.”
“언니 갑갑한 마음도 이해되고, 형부도 난감하긴 하겠다. 그런데 내가 사돈어른이라도 서운할 것 같아. 타이밍이 어째 좀 늦은 것 같아.”
“그래? 하.....”
요가원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나경의 머릿속엔 아까 영경과 했던 대화가 맴돌고 있었다. 여동생 생각도 그렇다고 하니 태경을 몰아붙여 어머님과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을 듯했다.
"요가는 얼마만큼 유연한지를 보는 운동이 아니에요. 핵심은 '균형'입니다. 호흡을 할 땐 숨을 들이마신 만큼 내쉬고요. 힘을 줬다면 다음번엔 그만큼 빼서 '수축과 이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돼요. 자세를 취했을 때 왼쪽과 오른쪽이 균형을 이루어야 잘하신 겁니다. 한쪽이 무너진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무리한 것임을 알아채셔야 해요. 그게 요가를 하는 목적입니다."
세상은 더하기만 있는 게 아니라 빼기가 있기 때문에 균형을 이룬다.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산다면 지구는 벌써 폭발했을 것이다. 전 지구적인 거창한 휴머니즘 따위를 운운하지 않아도 세계는 더하고 빼서 평균을 유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왜 자신의 인생은 지구와 우주의 섭리를 벗어나 더하고 또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영경의 입장에서 나경의 삶은 부러울 만큼 더하기가 많았음에도. 만약 내가 영경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떨까?하고 나경은 생각했다.
나경은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보았다. 어머님을 피할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어머님이 애정을 가질 무언가를 찾아드리는 것이다. 어머님 집 근처 문화센터 강좌를 검색해 보았다. 노래 교실은 기본이고, 연세 있는 분들이 배우기 좋은 댄스 교실에 관광버스를 타고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하루 십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남도 지역을 여행하고 간식, 식사까지 해결해 준다니.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께 한 달에 한 번 이런 여행쯤은 얼마든지 보내드릴 수 있다. 나경은 문화센터 강좌 목록과 수업 사진, 강좌 후기 등을 캡처해 시어머니가 보기 좋은 형태로 가공한 다음 프린트했다. 일주일에 삼일 쯤은 문화 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이틀은 강좌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주말에는 시아버지와 여행을 다녀와서 아들 내외를 만날 시간이 없는 바쁘고 즐거운 삶을 그려드릴 생각에 나경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런 게 윈윈인가? 나경은 사고를 전환한 스스로가 기특해 어쩔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