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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Sep 13.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19화-황미희)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대연이를 아빠한테 보내야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죠. 여태 주말마다 만나며 친자식처럼 예뻐하다가 얘기가 이만큼 진행되고서야 중요한 부분을 일방적으로.. 더 얘기 나눌 것도 없네요. 이쯤에서 우리 사이도 정리해요.”

  “미희야,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잖아. 우리 사랑하는 거 아냐? 어떻게 무 자르듯 1년 반의 시간을 끊어낼 수 있어?”

  “사랑한다면서 저한테 대연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것도 몰랐어요? 자식 떼놓고 어떤 엄마가 훌훌 재혼할 수 있다고 해요? 저는요. 준상 씨가 좋기도 했지만 대연이한테 아빠가 있었으면 해서 재혼하려는 마음을 가진 거예요. 대연이 없이 재혼하는 건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요.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저는 생각할 시간 필요하지 않아요. 준상 씨가 생각을 바꾼다면 모를까.”

  준상은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참 고심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솔직히 너랑 사는 그림만 그렸어. 미안해. 네 생각이 확실하다면. 그만하자.”

  미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차 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미희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사랑은 무슨. 나에게는 대연이 뿐이야. 대연이 잘 키우는 거, 그것만 생각하자. 잘했어. 그딴 놈은 그쯤에서 정리하는 게 옳아.’







  스물아홉에 결혼한 미희는 육 년 전 첫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전 남편이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미희 쪽에서 제시한 양육비 지급에 선선히 동의해 이혼 절차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1,614,000원.

  이혼 후 처음 입금된 양육비였다. 미희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삼백만 원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지만 양육비가 더해지니 이만하면 풍족하진 않더라도 모자라지 않게 대연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혼 초반에는 이혼 전보다 육아에 더 진심을 다했다. 대연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자신도 전과 다른 일상 때문에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잠만 자고 일어나도 100% 충전되는 여섯 살 아들의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주말이면 아파트 놀이터를 시작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남편이 있을 때는 교대로 아이를 돌보거나 함께 교외로 나가 차가 없는 안전한 곳에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해 놓고 부부는 캠핑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내려니 미희는 아들을 가진 돌싱맘의 1순위 필요조건은 재력도 아닌 ‘체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마다 아들을 쫓아다니며 기진맥진한 미희는 캠핑에 입문했다. 뭘 하든 장비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캠핑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서 좋다고 입소문 난 것들로 구입했다. 영상으로 텐트 설치 방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야심 차게 대연과 떠난 첫 캠핑은 대실패로 끝이 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넘게 고생해 텐트를 설치했지만 장비를 챙기고 캠핑장을 세팅하는 데 힘을 다 쏟아 밥 해먹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저쪽에서 처음 만난 형들과 재밌게 놀다 온 대연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어 겨우 삼겹살을 구워 먹긴 했지만 힘이 들어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다음 날 캠핑 장비를 정리해 트렁크에 싣고 운전할 체력이 없어 사십여 년 전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운전해서 집까지 도착했을 때 미희는, 다시는 혼자 대연이를 데리고 캠핑장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미희는 싱글 맘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사이트에는 여러 카테고리가 있었다. 싱글 맘도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어려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싱글 맘이 된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나이가 어린 미혼모부터 남편과 사별한 사람,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사람, 딸을 키우는 싱글맘 등 세상에 혼자 아이 키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나 싶을 정도로 다양했다. 반쪽자리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자신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힘이 났다. 역시 행․불행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미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에 대연과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는 싱글맘과 가까워졌다. 서로의 SNS를 통해 일상과 생각을 엿보며 거리를 좁혀가던 중 ‘행복한 준우맘’이 먼저 제안을 해왔다.

  “같이 애들 데리고 캠핑 갈래요? 우리도 웬만한 장비는 다 있는데, 텐트 한 동만 치고 장비 합치면 아이들한테 근사한 캠핑 선물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도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어때요?”

  그렇게 인친* 준우맘과 현친*이 되었다. 미희와 준우 맘, 대연과 준우는 쿵짝이 잘 맞았다. 미희가 준상과 연애한 일 년 반 동안에도 이 주에 한 번은 만나 아이들의 액티브한 활동을 함께했다.


  “미친놈, 결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척 보면 몰라? 네가 애 떼놓고 혼자 새 출발하려고 재혼할 사람으로 보였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잘 헤어졌어. 네가 뭐가 아쉽고 두려워서 밑지는 장사를 또 해? 아빠 없이 지금껏 아들 잘 키워 왔잖아. 네가 원하는 조건 다 맞춰주고 너를 하늘처럼 사랑해줄 사람 아니면 치우라고 해.”

  준우 맘이 쾌통 한 말투로 미희의 속을 시원스레 긁어주었다. 준우 맘이 미희에게 한 말은 어쩌면 자신에게 한 말일지도 모른다.







  “미희 쌤, 주말 어떻게 보냈어요?”

  미희 옆자리 팀원이 물었다. 월요일이면 으레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캠핑 다녀왔어요. 쌤은요?”

  “와! 쌤 캠핑해요? 캠핑하려면 남편이 부지런해야 한다던데, 저희 집은 남편도 저도 게을러서 군침만 흘리고 시도 못하고 있어요. 부러워라.”

  “아... 네.. 그래서 쌤은 뭐하셨어요?”

  “저희는 풀빌라에서 물놀이했어요. 애 둘 데리고 집안에서 주말 보내는 게 곤욕이에요. 주말이면 뭐할지 고민돼서 미희 쌤네 집은 뭘 하며 시간 보내나 여쭤봤어요.”

  미희는 지금 근무하는 학교로 옮긴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직장의 누구에게도 개인사를 말하지 않았다. 오래 근무한 학교에서 여기로 옮겨온 이유 때문이었다.


  A대학교 일반대학원 주임이었다. 직장 위치나 근무 환경 등에 대해 미희는 불만이 없었다. 이혼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결혼 전부터 모셨던 부원장이 원장이 되고, 행정부실장이 실장이 되는 시간 동안 미희도 부주임에서 주임으로 승진했다. 미희의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육아휴직과 복직을 모두 지켜본 팀원들은 미희의 이혼 소식에 안타까워했지만 싱글 맘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다하지 않았다. 행정실장의 남존여비 사상을 몰랐던 건 아니었는데, 이혼이라는 아픈 상처를 무례하게 짓밟을 만큼 몰상식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회식 자리에서 미희는 심심풀이 땅콩이 된 것 같았다.

  “여자는 지켜주는 서방이 있어야 돼. 황주임 요즘 얼굴 핼쑥한 거 봐. 그러니까 비혼인가 뭔가 그런 건 집어치우고 소정 씨, 혜은 씨 어서 시집 가. 나이 더 들면 머리숱 적은 남자밖에 없어.”

  저걸 개그라고 하는 것인지. 대놓고 셋이나 되는 여자를 모욕하려고 작정한 것인지. 게다가 행정 실장과 동성인 남자들은 회식 날이면 뇌를 집에다 두고 온 것인지 평소에 하지 않던 헛소리를 덧붙여 미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전투태세로 막아서지 않으면 싱글 맘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웠다. 참다못한 미희는 B대학 총장 직속 경영전략실 경력직 모집에 지원해 합격했다. 직장을 옮긴 후 미희는 아이가 있고 기혼이라는 것 외에 개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았다.







  “미희야 언니 철없는 소리 좀 해도 돼?”

  “뭐야? 언니는 늘 철없으니까 그런 밑밥 깔지 않아도 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당당하게 다시 연애하는 네가 부러워.”

  “형부 들으면 큰일 날 소리 한다 언니.”

  “연애하니까 어때? 살아있는 것 같지?”

  “뭐.... 사랑받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래 그랬지. 이십 대 땐 이런 기분이 일상이었는데 오래 잊고 지냈구나. 그랬지. 언니 연애하고 싶어? 수상해.”

  “너 잠깐 대나무 숲 좀 해줘.”

  “응?”

  “언니 사실은 연애 비슷한 거 해.”

  “언니 미쳤어?”

  “야, 옳다 그르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대나무 숲 해달라니까.”


  미희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레는 감정은 유효기간이 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연예인 션과 정혜영이라고 다를까. 결혼 후 사랑은 본질이 아니라 모양이 변하는 거라고, 미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심장이 쿵쾅대고 상대가 보고 싶어 눈에 아른거리는 것만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식과 하나로 묶인 공동의 연대감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마음도 사랑이다. 서로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 사랑이다.

  “언니 난, 대연이 아빠가 형부처럼 늘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아름드리나무 같은 사람이었다면 이혼하지도 않았어. 언니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오늘 들은 얘기 잊어버릴 테니까 빨리 정리해.”

  “옳다 그르다 말하지 말라니까. 치... 너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누구의 어떤 행동이든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럼 살인자의 이유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제 언니지만 동생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징징대는 게 싫었다. 언니는 혼자 아들을 키우는 동생 마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돌싱 마음은 돌싱만 안다.  






  오늘도 대연이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미희는 거실로 나왔다. 식탁 겸 책상인 거실 테이블에 스탠드를 켠다. 스탠드 빛이 비치는 동그란 곳이 세상의 전부인 듯 고요한 시간에 미희는 일기를 쓴다. 이혼 후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게 일기였다. 일기장에는 자책과 후회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사랑과 칭찬과 격려만 담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는 핵심 포인트였음을 지금의 미희는 알고 있다. 미희는 오늘 날짜를 쓰고 지금 현재의 마음을 담담하게 글로 써 내려갔다.



  - 내가 뭘 잘못해서 이혼한 게 아니다. 더 잘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숙고한 결과였다. 성찰의 시간을 통과한 내 인생은 그전과  질적으로 달랐다. 이혼 덕분에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일 년 반 동안 만난 사람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기대감이 무너졌지만 나는 오늘도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을 했다. 나는 앞으로 더욱 나를 사랑할 것이다. 더 치열하게, 나와 대연이를 위해 살 것이다.     







인친*  인터넷 친구

현친*  현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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