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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Sep 15.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20화-김경진)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엄마! 샌드위치는 내가 랩핑 할게.”

  “여보 나는 테이블 닦고 바닥 청소하면 되겠지?”

  라은은 말없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커피만큼은 라은이 혼자 주문을 받고 실수 없이 잘 준비했으니 경진은 나머지 음료만 만들면 될 터였다. 몇 분만 더 있으면 이른 아침부터 라은이와 예은이가 반죽하고 만든 빵이 다 구워졌다며 딩동댕동 알림을 울릴 것이다.

  “안녕하세요.”

  방송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진과 성수는 이 주 전에 먼저 만났다. 그녀는 처음 본 날처럼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새벽부터 먼 길 달려오느라 고생 많으셨죠.”

  경진은 작가의 손을 잡고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경진이 작가님께 인사를 끝내자 카메라를 든 건장한 청년 두 사람과 PD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먹을 것 좀 준비했어요. 드시고 시작하세요.”

  “와... 작가님이 찍어온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아이자기하고 귀엽네요. 이게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에 팔렸다는 그 캐릭터죠?”

  PD가 물었다.

  “네 맞아요.”

  경진은 카운터 뒤편에 앉아 방송국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을 라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경진은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지금껏 달려온 것만 같았다.  







  경진은 라은이가 그저 순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친구들로부터 ‘자기 아이는 엄마만 찾는 껌딱지라서 힘들다’ 라거나 ‘징징대고 보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경진은 자신이 복이 많다고 생각했다. 젖을 먹고 나면 자고, 일어나면 혼자서 잘 노는 라은이가 기특했다.

  라은이가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돌이 지난 무렵이었다. 라은은 엄마와 제대로 눈을 맞춰본 적이 없고, 경진이 불러도 딴청을 피우며 자기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때까지 의미 있는 발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동네 소아과에 라은이를 데려가 상담해 보았지만  의사는 말이 느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다른 반응도 마찬가지 이유로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했다.

  라은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반년이, 태어난 지 24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어머니, 라은이가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거의 안 합니다. 말이 늦게 터지는 아이들이 있지만 상호작용을 안 하는 것은...”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지역 소아 정신과에서 소견서를 받아 전국에서 가장 저명하다는 의사 선생님께 줄을 섰다.

  “네? 내년 3월 마지막 주에 오라고요?”

  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진료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지역 병원과 자폐 증상을 가진 아이들의 호전을 돕는 치료 센터와 언어 치료 센터에 다녔다. 최종 진단 전까지 라은이의 발달 상태가 좋아지길 기도했지만 첫 진료부터 1년에 가까운 지속적인 관찰과 반복 검사 결과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발달 수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습니다. 또래와 비교하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도 있고요. ABA(응용 행동 분석) 치료받으면서 경과를 지켜봅시다.”

  라은이가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학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사이에 라은이의 동생 예은이가 태어났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라은이가 발달장애라는 걸 더 일찍 알았다면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 같아요. 라은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미 제 뱃속에 예은이가 있었어요. 예은이가 젖먹이일 때 라은이를 데리고 치료 센터에 갔고, 예은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라은이가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에 다녔어요. 예은이를 친정 엄마께 맡기고 서울에 가려고 해도 남편이 휴가를 내야 했어요. 저요? 복직은 꿈도 못 꿨어요. 제 인생은 끝났다 싶었죠. 라은이만 좋아진다면.. 저는 평생 집에서 애들 뒷바라지만 해도 바랄 게 없다고 여겼어요.”







  “‘라은이는 발달 장애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관계나 의사소통, 인지 발달이 또래보다 늦고 정상의 아이들과 좀 다릅니다.’ 학기 초마다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께 이 말을 반복했어요. 라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3월에 담임선생님 앞에서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하셨어요. 한 해 한 해 제 마음이 단단해졌어요. 라은이에게 발달 장애가 있다는 말을 담담하게 전하기까지 흘리고 삼킨 눈물은 말로 다 전할 수 없어요.”

  PD의 질문에 경진은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집에 아이가 아프면 가족이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고 해요. 힘들어서 흩어지거나, 덕분에 똘똘 뭉치거나. 저희 집은 후자였어요.”

  “처음부터 똘똘 뭉치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흩어질뻔한 위기를 잘 극복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힘들어서 다 집어치우고 싶었던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힘이 드니 예민하고, 예민하니 짜증이 나고, 짜증은 예은이나 남편에게로 전가되었다. 경진이 지하로 지하로 떨어질 때 남편의 담대하고 단단하고 넓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 네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진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더 가진 사람이 상대를 더 이해하고 받아들인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날카로울 때 애들 아빠가 맞받아쳤다면 저는 폭주했을 것 같아요. 아빠한테도 고맙지만 솔직히 예은이가 더 고마워요. 남다른 가정에서 자라며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일찍 철이 들었어요. 라은이에게 언니 같은 동생이에요.”







  “그래도 딸과 함께 대학에 입학하려는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경진은 라은이와 K대학 도예학과 17학번 동기다. 경진은 또래보다 느리고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기 어려운 딸이 어떻게 혼자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배려도 하고 도와줬어요. 대학은 고등학교 때와 환경이 다르잖아요. 같은 과라도 교양 강의 들을 땐 따로 흩어지고, 아르바이트하러 가거나 데이트하러 가고. 자유를 한껏 만끽할 나이에 라은이와 함께 다니며 매번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없을 거잖아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친구는 세상에 저밖에 없겠더라고요.”

  만학도 전형으로 라은이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한 경진의 기쁨도 잠시였다. 라은이는 어릴 때부터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손으로 클레이를 조몰락거리며 아기자기한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선수였지만 경진은 그저 라은을 따라온 것일 뿐 도예가가 될만한 재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제가 이 나이에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어요. 노안이 와서 잘 안 보이는데 도자기에 세밀한 핸드페인팅 작업을 밤새 한 적도 있었어요. 그날은 라은이가 미웠어요.”


  경진은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웃었다. 기초 실력을 쌓고 고비를 넘기자 도예 작업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라은을 따라 시작한 도예 작업을 통해 자아실현의 기쁨을 느낀 경진은 라은과 함께 콜라보 작품을 각종 대회에 출품해 상을 받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딸과 함께 한다는 타이틀을 내 건 첫 전시회도 가졌다. 전시회 성과에 힘입어 지역의 청년 작가 지원 사업에 라은이가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졸업 후 지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해오던 중 ‘드림 캐릭터 세트’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눈에 띄었고, 라은이 창조한 캐릭터로 곧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었다. 캐릭터 판매 수입으로 라은이 스무 살 때부터 꿈꿔 온 ‘어린이 전용 캐릭터 카페’를 오픈할 수 있었다.







  “저희 카페는 예스 키즈 존, 아니, 웰컴 키즈 존이에요. 커피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님 메뉴고요. 어린이 전용 메뉴가 많아요. 저기 한쪽 벽면에 그동안 라은이가 만든 도자 캐릭터를 디스플레이해 두었는데요. 라은이는 앞으로 저쪽 벽면 가득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작품으로 채우고 싶다고 해요. 곳곳에 만질 수 있는 커다란 도자 캐릭터 작품도 세워두고요. 아, 카페에서 사용하는 머그 잔과 접시는 전부 제가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커피잔 세트가 종종 팔려서 쏠쏠한 수입원이 되고 있어요. 라은이 캐릭터가 더 잘 팔리지만요. 저쪽에 들어가면 작업실이 있어요. PD 님 물레 한 번 돌려 보실래요?”


  호기롭게 물레 작업을 시작한 PD는 경진의 도움을 받아도 둥그런 모양을 잡기가 힘들자 머그잔을 만들어 보겠다며 나섰고, 그마저 어려워 이미 만들어진 머그잔 틀에 PD의 아이가 좋아하는 피카추 그림을 그리고 바닥에 아이 이름을 새기는 것에 만족했다. 카메라 맨과 작가도 머그잔에 원하는 그림과 글씨를 새겨 넣었다.

  “머그잔 구워서 완성하면 방송국으로 보내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김경진 작가님, 강라은 작가님 인터뷰 가능할까요?”

  경진은 라은에게 가서 PD의 제안을 전달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돌아왔다.

  “인터뷰하고 싶은 질문 제게 알려주시면 제가 영상을 찍어 보내드리면 어떨까요? 가족들과 있을 땐 말을 잘하는데 낯선 분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네. 그렇겠어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요. 영상 부탁드릴게요. 그럼 예은 양 인터뷰 가능할까요?”

  라은이 옆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예은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다른 가정에서 자라며 기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은 양의 이야기가 장애 형제․자매에게 힘이 될 것 같은데.. 들려주시겠어요?”

  경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예은이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궁금했지만 예은이에게 한 번도 묻지 못한 마음을 PD가 묻고 있었다. 예은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 어떤 얘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부모님께 ‘네가 언니를 이해해 줘야지’라든가, ‘네가 배려해야지’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언니가 잘못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억울하고, 언니 행동이 용서가 안 될 때도 있었어요. 내가 언니보다 어린 데 엄마가 저를 돌보지 않는 것 같아 슬플 때도 있었어요. 친구가 집에 놀러 올 때 언니와 친구가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전전긍긍했는데, 마주치면 부끄러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들고.. 왜 우리 집은 이럴까 우울한 적도 있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나만 정상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솔직히 힘들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엄마가 이런 제 마음을 잘 알아줬어요. 중학교 때 엄마랑 같이 장애가족 양육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힐링 캠프 같은 거였어요. 캠프 덕분에 저는 엄마 마음을 좀 더 이해했고, 엄마는 저를 이해한 것 같아요. 지금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저희 가족은 어떤 가족보다 단단해요. 우리 가족이 행복하도록 엄마, 아빠가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아요.”


  예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곧 훌쩍 소리가 나더니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던 경진도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느라 손이 바빠졌다. 아빠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는 듯했다. 라은이는 동생의 고백에 미안하고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PD는 아빠에게 인터뷰 순서를 돌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김경진 작가님과 예은이가 다 했습니다. 저는 인터뷰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성수 덕분에 경진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으로 김경진 작가님께 여쭤볼게요. 작가님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제 소원은...”

  경진이 예은과 성수를 바라본 다음 라은과 눈을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경진은 입을 다시 열었다.

  “제 소원은.. 라은이 보다 제가 하루 더 사는 거예요.”

  “아.......!”

  카페 안에 짧고 조용한 탄식이 흘렀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경진은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라은과 함께 대학 동기가 되었던 것처럼 라은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할 것이다. 그곳이 지옥이더라도 라은이를 돌볼 수 있다면 갈 수 있으리라.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발달장애: 발달장애를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자폐증, 고기능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비언어성 학습장애 등이 포함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상호교류가 거의 안 되거나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출처: 닥톡-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 손성훈)



*20화 김경진 편은 2021년 1월 31일 자 경남일보에 소개된 ‘딸과 대학 동기가 된 엄마의 버킷리스트’라는 신문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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