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펑펑 물고 싶은 때가 있다
30년 전 군대시절 유격장에서 진흙을 뒤집어쓰고 피티체조 온몸 비틀기를 하다가 호랑이 같은 조교가 5분간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님은혜를 부르라고 시켜서 여기저기서 다들 훌쩍일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버텨온 나였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깟 TV프로그램을 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실화탐사대를 보다가도 한문철의 블랙박스리뷰를 보다가도...
이 주책없는 눈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도 때도 없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은 10시만 넘으면 내가 불을 끈다. 내 뜨거운 눈시울과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행여나 들킬까 싶어서... 왜 이렇게 된 거지?
갱년기다 내 몸의 호르몬이 변화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감소하는데 이것은 남성다움과 성생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라고 한다.
'엄마의 갱년기는 사춘기딸도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아빠의 갱년기는 이렇다 할 게 없는 모양이다.
중년의 남자가 드라마를 보며 훌쩍인다는 게 그리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닌 것 같고,
누구나 한 번은 겪어내야 할 텐데 뭔가 뾰족한 묘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운동에 집중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한다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의 50대 초중반의 남성들에게 그런 건 사치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나의 동료 친구들이여, 맘껏 눈물을 흘리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눈물의 여왕'에서 남주인공 김수현은 친구 앞에서 눈물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감정을 아끼고 숨기는 것에 익숙하게 자라와서 우리는 손해 본 게 많다. 억울한 것도 많다.
시대는 변화하고 각 세대별 마인드도 변화한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우리는 스스로를 위안하지 않으면
세상이 너무 힘들어진다.
사회의 변화에는 순응해 갈 수 있지만, 내 몸의 변화에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도 난 눈물을 흘리리라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눈물의 중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