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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Sep 28. 2021

세 번째 퇴사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결혼 출산 퇴사 유감

평생직장 vs. 평생교육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다. 전공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거나 다시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내 경우만 해도, sns를 시작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아서 종종 학창 시절보다 더 몰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평생교육과 배움의 시대에서 살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덜 열심히, 즐기면서 수험생활을 할 것을 그랬나 보다.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속을 하며 젊은 시절 제대로 된 휴가 한번 길게 가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생각하면, 대단하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엔 주 6일 근무인 시절도 있었으니 본인과 가족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아버지 세대의 딸인 나는 성실하게 공부하고 학교를 졸업해서 무난하게 회사에 들어갔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는 지금보다 더 대기업, 공무원을 선호했던 시기다. 말 잘 듣는 성실한 학생은 또 말 잘 듣는 성실한 직장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근데 난 조금 삐딱했나 보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프리랜서'였다. 비교적 자유로운 마인드에 구속받기 싫어하는 성향을 동기들이 파악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직의 룰을 어기거나 반하지는 않지만 항상 마음 한 편에 자유를 꿈꾸는, 더 가슴 뛰는 일을 상상하는 그런 직장인이었다.



10년간 세 번 퇴사하다

그래서일까? 직장생활을 하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번이나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주변에서 말하는 소위 괜찮은 회사들에서 말이다.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이직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회사에서 선할 리 없지만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그러나 나의 세 번째 퇴사는 좀 달랐다.


첫 번째 퇴사 사유: 해외 유학 (관련 글은 '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 퇴사 이유와 유학 결심'을 참조하시길)

두 번째 퇴사 사유: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더 나은 포지션으로 이직

세 번째 퇴사 사유: 결혼과 출산


나의 퇴사의 이유를 짧게 요약해봤다. 적어놓고 보니 내 인생의 흐름이 보인다. 그리고 생애주기에 따른 여자로서의 안타까움도 엿보인다. 당시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남들 못지않게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하며 꿈을 찾아 노력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나. 첫 번째와 두 번째 퇴사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내 역량을 더 키우고 싶어서, 견문을 쌓아 더 성장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일에 대한 성취감과 회사에서의 인정받는 것은 꽤나 뿌듯한 경험이었다. 어려운 일도 고군분투하며 노력했고 결과가 좋을 때의 짜릿함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보상이었다.


다만, 곧 닥쳐올 결혼과 출산이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무지했다.




세 번째 퇴사의 속사정

앞서 두 번의 퇴사 시, 사직서를 쓴 나는 자신 있고 당당했다. 명분이 확실하고 신념은 확고했다. 자기 발전을 위해 제 발로 회사를 나간다는데 뜯어말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난 알파걸이야. 뭐든 마음먹은 대로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컸으니까. (물론 지금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런 내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분명히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고 축복받아 마땅한 결혼과 출산이 커리어에 이렇게 변수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해다. 더 꼬집어 말하면 대한민국 한 여성의 커리어에 말이다. 지금 돌아보니 결혼 후에도 똑같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기대한 그때의 내가 참 용감해 보이지만.


신혼 시절,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일터에서 결혼 전처럼 성실히 일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임신을 했지만 유산이라는 아픔이 찾아왔다. 결혼하면 으레 임신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 단순히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아픔을 두 번 겪고,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으로 입원까지 하니 인생의 목적을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는. '뭘 위해서 내가 열심히 일했던 것인가!'


그때만 해도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나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성취도 있었지만 좀 적당히 해도 되련만. 그렇게 그만둘 줄 알았으면 말이다. 때마침 직장에서의 피곤한 인간관계와 파워게임에 질린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몸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일을 쉬어야만 했다. 사직서를 들고 부서장실을 찾아갔다. 이미 팀장님과는 이야기를 끝낸 상태였다. 누구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앞선 두 번의 퇴사와는 좀 다른 이유로. '역시 결혼한 여자는 안돼'라는 얼굴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형식적인 면담이 끝난 후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회사를 나왔다. 몸이 아픈 것 보다도, 내가 한순간 jobless가 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싫었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세 번째 퇴사 후 나는...

퇴사 후 가장 힘든 점은 무력감을 동반한 자존감 하락이었다. 평일 낮에 카페나 백화점에라도 가면 그 시간에 외출을 했다는 것 자체에 적응이 되지 않기도 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노는 사람으로 보일까 눈치도 보였다. 이제 경제활동인구에 들지 못하니 생산성 없는 잉여인간이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떠오르던 한심하기 그지없는 발상. 제도권 교육 안에서 성실히 살아온 결과가 경단녀라니(물론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통용되는 단어이니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겠다) 답답했다. 괜스레 조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영어강의를 시작했다. 점차 몸 컨디션이 나아지며 다시 풀타임 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복직은 요원해졌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퇴사를 고려하는 사람들

요즘은 업의 개념이 굉장히 확장적이다. 예전의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승진 혹은 이직을 하며 커리어를 쌓거나 사업을 하는 방법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디지털 노마드는 물론, 1인 기업가, 자발적 백수 등이 나오는 등, 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운 시대다.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성숙으로 오히려 기회는 많아졌다. 물론 전통적인 회사와 직업의 개념이 아직은 강하긴 하지만 말이다.


나처럼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때문에 퇴사의 기로에 서있는 여성들이 많다. 특히 육아는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섣불리 깊게 다루진 않겠지만 워킹맘들에겐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워킹맘의 심정은 육아와 일 사이에 늘 외줄 타기를 하며 중심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란다. 십분 이해 간다.



다시 예전처럼 취업을 할 건가요?

나의 대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이지만,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항상 배우며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기회가 온다면 예전처럼 다시 회사원이 되어 사무실에서 일을 하겠지만, 업의 개념을 한정 짓지 않기로 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결코 직장이나 회사만이 답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준비된 사람에게 어떤 기회가 또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지금의 세상이 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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