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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l 26. 2021

대기업 퇴사를 후회하나요?

그때 그 신입사원의 퇴사 이야기

어느 신입사원의 사직서

한때 삼성물산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온라인 상에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실제로 삼성 사내 인트라넷에도 올라왔었다고 하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이 글에는 신입사원의 패기와 이상과 더불어 그 이상과 괴리가 생기는 조직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존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은 오늘은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으니 사랑하는 조직을 과감히 떠나겠다는 굳은 의지로 마무리되는데, 글의 어조가 비장하기까지 하다. 희한한 것은 내가 이 사직서를 처음 읽었을 때와 몇 년후에 읽었을 때, 그리고 지금의 마음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직서 주인공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고 본다. (참고로'삼성물산 46기 신입사원 사직서'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상에 있으니 원문이 궁금한 분들은 찾아보시길)



그럼, 나는 어떤 신입사원이었을까?

한때는 나도 삼성 계열사의 신입사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앞서 말한 삼성물산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누구라도 알만한 국내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 부푼 꿈을 안은 사회초년생의 번지르르한 일터, 딸에 대한 부모님의 자부심, 국내 최고 대기업이란 명함과 약간의 우쭐함, 그리고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란 패기와 열정.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합쳐져서 그 시절 나를 만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교육을 받은 동기들과 큰 함성을 외치던 하계수련대회 때는 남부러울 것 없다는 자긍심마저 생겼던 것 같다.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가 궁금하세요?'를 참고하시길)


그런 마음가짐과 열정이 가득한 1년의 대기업 생활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룹 연수와 계열사 연수 그리고 각종 사내교육과 현업 배치가 꽉 짜인 스케줄 속에서 이뤄졌다. 동시에 조직이 원하는 직장인의 자질을 하나 둘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1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조직의 분위기와 시스템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바라보는 기업과 조직문화와 현실은 다른 점이 많았고 내가 가진 기대와 현실이 다를 때는 약한 좌절감마저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신입사원 마인드는 어쩌면 대학생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물론 내가 속했던 그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니 다른 기업에서 일을 했어도 비슷한 좌절감과 타협 혹은 순응의 과정을 거쳤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대기업이니 그나마 대우가 더 좋았을지도.


모든 퇴사자를 응원하며

동기들이 하나 둘 퇴사하기 시작하다

충격, 불안함, 응원 그리고 현실 타협.

동기들 퇴사 소식을 들을 때 느낀 감정이다. 동기의 퇴사 소식을 맨 처음 접하던 날은 '도대체 왜?' 란 의문과 함께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계속될수록 '그럴만하니 나가는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진심으로 퇴사 예정 동기를 응원해 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퇴사한 동기들을 '퇴사자'라 부르며 90년대 세기말 아이돌이었던 '태사자'의 노래를 불러주며 응원하기도 했다. 유치하지만 재미났다)


동기들의 퇴사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큰 카테고리로 본다면 더 나은 근무조건, 더 정확히 말하면 연봉이 더 높은 곳 혹은 더 가고 싶던 비즈니스 섹터로의 이직이었다. 물론 1년~2년 차 신입사원 경력이었으므로 대부분 다른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다시 입사를 했다. 퇴사자들의 퇴사 당시 모습은 무모해 보였으나 그들의 재취업은 거의 성공적이었고 그 후에도 꽤 오랜 기간 '동기'라는 이름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돌아보니, 애초에 엘리트들을 신입사원들을 뽑아놓은 곳에서 만난 동기들이었으니 나름의 계획과 실력으로 움직여서 그런 듯하다.



"그래도 넌 대기업 다니잖아."

인간이 모이는 공동체는 어딜 가나 갈등과 모순이 존재한다. 나 자신조차도 끊임없이 갈등하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회사라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고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놓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고민을 하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넌 대기업 다니잖아.


그렇다.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대기업이라는 큰 프레임에 갇혀 충분한 공감을 얻어내지 못할 터. 결국 또 동기들과 답을 내기 어려운 조직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나름 진지한 대화와 고민을 나누었다. 고만고만한 경험과 해결책을 갖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의 대화에 획기적인 솔루션이 나오긴 힘들었지만 이런 대화의 시간이 위로가 되었던 젊은 날이었다.



신입사원 2년 차, 그때 내 선택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하면, 나도 신입사원 때 대기업을 퇴사했다. 그리고 당시 내 퇴사는 동기들뿐 아니라 사내에서 꽤 화제가 되었었다. 내 퇴사 이후의 행보가 좀 특이했기 때문이다. 난 이직이 아닌, 해외유학을 택했다. 그것도 예정에 없던 호주 대학원 유학으로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 퇴사 이유와 유학 결심'을 참조하시길) 그래서인지 퇴사를 만류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팀 선배들이 나를 따로 불러 응원도 해주고 서래마을과 명동에서 밥도 사줬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호주에 가면 난방이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많아 실내가 춥다고 내복을 선물 받기도 했다. (이 00 선배님, 잘 계시나요?) 그러고 보니 나 꽤 괜찮은 신입사원이었나 보다.


참, 내가 퇴사한 이후 동기들의 퇴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입사원 시절 동기들의 퇴사는 내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법, 조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 탓이겠지. 어쩌면 남아있는 동기들의 눈에 나는 '이단아'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대놓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때로 돌아가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까?

이미 지난 일에 가정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신입사원들을 위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쩌면 신입사원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사지육신 멀쩡한 시기일지 모르겠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대답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아차, 바꾸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면, 나의 그 강렬했던 2년간의 대기업 신입사원의 경험을 더 자세히 기록해 놓을 것 같다. 바로 지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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