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게 된 순간부터 로맨스보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로 아무리 죽고 못살아도 퇴근하고 집에서 마냥 얼굴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눈앞에 들이닥친 말 그대로 '먹고사는' 문제.
<오늘 뭐 먹지?>라는 시대 불문한 난제 앞에서, 눈에서 꿀 떨어지던 신혼부부도 예외는 없었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우리 부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더 걱정이 많았다. 나의 비루한(?) 요리 솜씨에도 맘씨 좋은 남편은 늘 맛있다며 수고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몇 시간 동안의 음식 준비에도 힘이 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그런 칭찬은 고도의 전략이었던 것 같긴 하다)
신혼의 로망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두 사람이 집에서 함께 만들어 먹으며 나누는 집밥이야 말로 그 정점이지 않을까. 함께 오손도손 집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신혼부부. 도대체 왜 나는 그 이미지에만 꽂혀 있었을까! 정작 요리를 하며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순간들은 깊게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내가 요리를 해야 한다고? 그것도 매일?
내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친정 엄마는 시집갈 딸이 걱정되셨다고 한다. 후에 밝히시기를, 라면과 계란 프라이 정도 하는 요리실력으로 어떻게 시집을 가나 잠이 안 오시더란다.
그러게나 말이다. 자취 한번 해보지 않고 편하게 엄마가 해준 밥을 먹었던 나였다. 해외 유학시절에도 밖에서 사 먹거나 집에서는 아주 간단히 샌드위치, 토스트를 해 먹는 정도였다. 도대체 왜 그리 요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내가 봐도 미스터리긴 하다. 그래서인지 신혼시절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온갖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가 워낙 인생의 많은 부분에 갑자기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내가 밥을 차리고 요리를 한다는 것도 그런 큰 변화 중 하나로 무리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게다가 신혼시절에는 나도 직장인이었던지라 집에서 밥을 제대로 요리해 먹는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여차 저차 한 이유로 전업주부가 되고부터 매일매일이 끼니와의 전쟁이었다. 기특하게도 그때는, 이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초부 주부, 쿠킹 클래스에 가다
무엇이든 제대로 배우려면 기관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 줄로만 알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뭐든 배우려면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성격 덕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쿠킹클래스에 3개월 간 다녔다. 나 같이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초부 주부부터, 예비 신부, 베테랑 주부, 취미로 요리를 배우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쿠킹클래스 경험자들은 알겠지만, 만들고자 하는 요리에 맞게 분량의 재료가 딱딱 준비되어 나와서 간단한 손질 정도만 해서 끓이면 근사한 요리가 어느새 만들어진다. 분명 수업시간에는 굉장한 요리를 만들어내서 내 요리 실력이 쑥쑥 올라간 줄 알았건만 집에서 다시 하려니 난감하기만 했다. 쿠킹 클래스에서 받아온 레시피대로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라. 오꼬노미 야끼, 찜닭, 리조토 등 다양한 요리를 배웠지만 혹은 수업시간에 관찰했지만 정작 내 요리실력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대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데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이런 쿠킹클래스 다니는 것도 녹록지가 않아서 관두긴 했지만 집밥에 진심이었던 초보주부의 귀여운 추억이라고 해두자.
주부 9년 차, 요리가 편해졌나요?
요리에 관해서는 아직 프로 주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재료만 있으면 순식간에 밑반찬 몇 가지를 뚝딱 만들어내는 어머니들의 마법은 아직 시도도 못해봤다. 남편과 두 아이의 식사를 잘 챙겨주고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는 소박한 목표를 가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동네 괜찮은 반찬가게의 도움과 배달음식도 나에겐 큰 힘이 된다. (너무 솔직했나) 먹방과 쿡방, 인터넷의 각종 쉬운 레시피 덕분에 요리하는 즐거움도 없지는 않다. 앞으로 주부로서의 연차가 더 쌓이면 요리도 분명 더 편해질 날이 오겠지라는 기대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