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나비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나비가 푸른 바람 속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by 이다이구

일주일 전 토요일 아침 8시,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말의 이른 아침에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행운이 찾아오길 마련이고 지난주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어떠한 맥락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우리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섯 명 중 한 명이 자신은 곤충을 끔찍이 무서워한다며 몸서리를 치며 이야기했습니다.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친구처럼 곤충을 극심히 두려워하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각자 곤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제 차례가 왔을 때 저는 나비 말고는 웬만한 건 괜찮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 곤충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비는 괜찮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를 지니고 있고, 늘 꽃과 함께 있고, 딱히 인간에게 이렇다 할 해를 끼치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의 추론을 제 감성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나비가 끔찍이 싫고, 또 무섭습니다. 그 이유는 어렸을 적 스펀지밥 “나비야 나비야” 에피소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비가 비키니 시티 (스펀지밥이 살던 마을 이름입니다)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니는 에피소드인데 이 때문에 저를 포함해 전 세계적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나비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벌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나비에는 온몸을 움츠리며 도망치는 이상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나비를 무서워하는 어른은 오늘 지난주와 똑같은 카페에서 혼자 헤르만 헤세의 “나비”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자주 놀러 와 앉아 있는 24시간 카페


몹시 상심하고 있을 때였다. 들을 지나다가 한 마리의 나비를 보았다.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나비가 푸른 바람 속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헤세의 수려한 문장으로 묘사된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나비고 자시고 저는 그 생명체를 보자마자 도망쳤을 겁니다. 멀찍이 떨어져 더 이상 그 나비의 색을 볼 수도 없을 때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뱉고 갈 길을 갔을 겁니다.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나비는 바람에 실려서 들로 날아갔다.

꿈을 꾸는 듯 걸음을 옮기자, 나에게 천국에서 새어 나온 한 가닥의 잔잔한 빛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나비가 누군가에게는 천국에서 새어 나온 한 가닥의 잔잔한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억울해졌습니다.


헤세도 어린 시절 나비를 마주했지만 그가 본 것은 저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의 나비는 어떤 모습일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나비이길래 그토록 아름답고 그 날갯짓 만으로 위로가 되는지 저는 정말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나비가 현실에 가까운 나비라고 자신합니다. 그들은 벌레이고, 얼굴은 여전히 징그럽게 생겼으며, 그들의 자랑거리인 날개도 소름 끼치는 패턴의 조합일 뿐입니다.


헤세와 저의 나비는 각각 다른 곳에서 날아왔습니다. 헤세의 나비는 동화와 환상 속 삽화에서 날아왔습니다. 반면, 제 나비는 빌어먹을 스펀지밥 “나비야 나비야” 에피소드의 실재 나비 얼굴을 과하게 확대한 장면에서 태어났습니다.

헤세의 나비는 곧 우리가 세상의 현실을 목격할 위기에 빠진 어린아이의 눈을 가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과하게 확대된 현실을 보여주면 그 아이는 나중에 커서 천국에서 새어 나온 한 가닥의 빛을 뿜어내는 나비를 보지 못합니다. 상심의 순간에 위로가 되어야 할 나비로부터 멀찍이 도망쳐 그 날개의 색도 못 보게 됩니다.


저는 가방에서 필사노트를 꺼내 헤세의 문장을 받아 적었습니다. 이제 제 필사노트 안에는 나비도 날아다닙니다. 그 나비는 스펀지밥에 나오는 파멸의 나비가 아닙니다. 헤세의 나비입니다. 이 나비는 저를 위로해 줄 겁니다. 상심의 때에 천국에서 새어 나온 한 가닥의 잔잔한 빛을 저에게 선사할 겁니다. 저는 나비의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날개를 바라볼 겁니다.


아직도 나비는 무섭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노트 안에서 만큼은 저는 헤세의 나비와 뛰어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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