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극내향인입니다.

골목길에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by 이다이구

저는 극내향인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더러는 제가 늘 그러하듯 농담을 하는 줄 착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변인들은 제가 극히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남들 앞에서 춤도 잘 추고, 농담도 많이 하고, 필요하다면 처음 본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극내향인인 이유는 그런 관계에 아주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가능만 하다면 365일 내내 아무와 대화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지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는 편이 오히려 더 좋습니다.


저는 혼자서도 잘 놉니다. 혼자 산책로, 도서관, 카페, 체육관 등등을 뽈뽈 잘도 돌아다닙니다.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 내 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편하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지만 모든 관계를 갑자기 끊고 잠적하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모든 관계가 저에게는 피로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관계를 맺고 있을 때는 도망가고 싶고 홀로 있고 싶은데, 막상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완벽히 혼자가 되면 또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이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일 겁니다.


몇 달 전 SNS에서 "청소년이 정신병 들게 만드는 작가들"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보았습니다. 그 작가들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닌 유머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실존주의 문학의 작가들이었는데, 프란츠 카프카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으로는 <변신>, <소송>, <실종>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갑충으로 변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변신>이 가장 유명하죠. <변신>을 읽어본 사람은 카프카의 소설이 얼마나 암울하고, 희망도 없고, 갑갑한지 알 겁니다. 실존주의 문학이 대게 그러하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은 유독 더 암울한 분위기를 뿜어냅니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이 뛰어난 이유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암울한 분위기 속 작은 아름다움들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가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력은 다름 아닌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들로만 보면 왠지 암울하고 고독한 인생을 보냈을 것 같지만, 카프카는 자신에게 찾아온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동료의 어린 아들이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닥쳐도 우연한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늘 환대해 주었습니다.


오늘 카프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늘 제가 우연히 제 문장수집노트에 오래전에 적어두었던 한 문장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골목길에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문은 곧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나의 공간이니 아무나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의미이죠. 밖의 사람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안의 사람도 밖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문을 세우고 이 단절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창문은 연결입니다. 문 안의 사람이 밖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동시에 밖의 사람도 안쪽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출퇴근하는 사람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매연가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유쾌하던 불쾌하던 그 소리들은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세상의 소리입니다. 우리는 벽과 문 안에서도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내가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어 하는 자, 하루 시간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 직업 관계의 변화 또는 그와 같은 것들을 참작해서 그저 매달릴 수 있는 어떤 팔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자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도 창문은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의 상징입니다. 실제로 카프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죽을 때까지 (40세에 요절한 카프카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7년 일찍 사망했다.) 억압받아 왔습니다. 그가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아버지에게 큰 원망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쓴 일기나 편지를 읽어보면, 그는 매일매일 영감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글이 술술 나오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죠.


그의 편지와 일기 중에는 자신의 머리가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다는 둥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둥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습니다.


그런 그가 계속해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이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여인들과 뜨거운 연애를 할 정도로 매력적인 남성이었지만, 새로운 만남과 우연한 만남을 늘 소중히 했습니다.


연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에 대한 내 사랑은 나 자신보다 훨씬 크며, 그 사랑이 나의 내부에 산다기보다는 나에 의해서 살아간다네.


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의 친구들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복잡한 관계 속에 살아가다 보면 가끔 혼자가 좋고 편안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카프카에게 그러했듯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들고, 또한 열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강한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창은 무엇인가. 내가 계속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열정적으로 만드는가. 나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어쩌면 삶의 권태기에서 우리를 건져내 줄 중요한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극내향인의 문장수집노트에 반드시 적혀야할 문장입니다.


골목길에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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