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음과 사랑하기

사랑받음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사랑함은 영혼에 남는다.

by 이다이구

매주 일요일에 어린아이들을 2시간 정도 돌보아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곳은 유치부입니다. 올해 여름에 유아부를 졸업한 아이들이 유치부로 올라왔습니다. 올라왔을 때만 해도 말도 잘 못했는데, 이제는 띄엄띄엄이지만 말도 열심히 하고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열심히 놉니다.


어느 날 유아부를 담당하는 친구와 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막 유아부에서 유치부로 올라온 아이 하나가 저희 앞을 뛰어갔습니다.


"OO아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하자 그 아이는 가만히 멈춰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직 부모님 외에는 경계하는 나이인지라, 이렇게 아는 척만 해주어도 고맙고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OO아 안녕~ 선생님 기억나?"


제 옆에 앉아 있던 유아부 동료도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는 마저 갈 길을 갔습니다. 완전히 낯선 사람을 대하듯 대했습니다. 사실 함께 지낸 시간으로 치자면 저보다는 유아부 동료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직은 압도적으로 더 많은데도 말입니다.


유아부는 특이 케이스이긴 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유아부에 있던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치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유치부에서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을 초등부로 올려보낼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아이들을 만나면, 이 아이들은 저를 기억해 주긴 합니다만 어딘가 어색해하는 게 눈에 보이죠. 유치부에 있을 땐 저를 특히 좋아해 주던 아이들도 초등부에 올라가면 데면데면 굽니다.


"초등부 재미있어? 유치부보다 재미있어?"


라고 물으면 다들 "응"이라 대답합니다. 초등부에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니 다행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단호한 대답에 내심 서운해지기도 합니다.


다시 졸지에 아이에게 낯선 사람 취급을 받아버린 유아부 동료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그 친구는 곧 이렇게 말하더군요.


"유아부는 이런 게 힘들다니까. 난 정말 사랑으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나를 기억 못할 수가 있지?"


하고 반쯤 장난으로, 반쯤 진심으로 서운해하며 유아부의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한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택하라. 사랑받음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사랑함은 영혼에 남는다.


이 문장이 어디서 나온 문장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문장 수집 노트를 펼쳐 위 문장을 찾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문장 같았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하는 곳은 인스타그램의 어느 한 포스트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아까 전 유아/유치부 아이들의 사건을 보면 이 문장은 진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한 선생님들은 졸업 후에도 아이들을 기억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낯선 사람 보듯 바라보니 말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애착이론같은 여러 심리학적 이론은 사랑받음은 우리에게 큰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의 심리, 행동패턴, 정서에 커다란 흔적을 남깁니다. 심한 경우에는 트라우마까지 발생시키기도 하죠.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여러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습니다. 흔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건강한 관계를 지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등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게 맞는 정보인지는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사랑받음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에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받는 사람은 전혀 구별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사랑을 무척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제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제 주변에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란 사람 중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자라온 친구,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친구들도 있지만, 누구보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건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쉽게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사람"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별하기 훨씬 쉽다는 사실을 경험에서 배웁니다. 사랑받음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흔적을 남깁니다. 하지만 사랑하기는 우리 영혼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음은 외부의 사건이 내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만, 사랑하기는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개인의 결단입니다. 외부의 사건이 내면에서 어떻게 해석될지는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외부세계에 표출된 내면의 결단은 그의 영혼에 명확한 흔적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사랑받음은 외부의 사건이 나를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사랑하기는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단입니다.


영화 『Kingdom of Heaven』 속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2세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깁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게임을 하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어떤 게임을 누구와 하든, 영혼만큼은 자네 것이야."


내 몸은 내 것인가요?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 몸은 내 결정권의 부재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머리색부터 발가락의 모양까지 나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대 연구는 나의 정신조차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나의 영혼만이 나의 것입니다. 나의 정신은 외부세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나의 결정권 없이 나의 뇌가 멋대로 결정을 내리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내 영혼은 내가 어떤 결단을 어떠한 방식으로 외부 세상에 표출할 것인가에 따라 빚어집니다.


사랑받음을 선택하지 않고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닙니다. 내면의 투쟁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외부의 사건이 결정짓게 놔둘 것인지, 아니면 내 손으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빚을 것인지의 싸움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받은 사랑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오롯이 본인들의 몫입니다. 그건 우리가 간섭할 수도, 간섭해서도 안 될 일이죠. 설령 그것이 희석되어 사라져도, 우리가 알아챌 수 없는 어느 한 부분에 숨겨지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유아부 동료의 영혼에는 깊게 남겨져 있을 겁니다. 그 모습이 아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영혼이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빚어졌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보입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택하라. 사랑받음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사랑함은 영혼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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