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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Feb 04. 2024

인간실격으로 보는 자유론

시대정신과 개인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중 하나로 무려 70여 년이 지난 작품 외에도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실격 표지

소설 인간실격은 주인공 '요조'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기의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소설 속 요조에게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그리고 공포의 존재이었다. 인간의 계산적이고 위선적인 선행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타인의 감정과 행동의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남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 정도 사회에 자신을 맞춰 살아가다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에, 약물 중독까지 걸리게 되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어 '인간실격' 선고를 받게 된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인간의 자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자격이 무엇이길래 요조는 '인간실격' 선고를 받게 된 것일까? 그리고 과연 누가 요조에게 '인간실격' 선고를 내릴 수 있을까? 필자는 그 답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에서 얻을 수 있었다.


자유론의 기본적인 주장은 바로 개인의 표현할 자유, 그리고 생각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의 보장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제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 (Tyranny of the majority)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해악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요약하자면, 다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라는 공동체는 일종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대정신이란, 특정 시대, 장소, 문화, 문명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도덕관, 행동규범, 가치, 세계관 등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한 시대의 정신일뿐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옳던 것이 옳지 않은 것으로, 옳지 않던 것이 옳은 것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자유론은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예수는 당시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정신에 어긋나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시대가 찾아온 것으로 예시를 들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의 표현할 자유, 생각할 자유, 더하여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한 개인이 현재의 시대정신에는 어긋나더라도, 그것이 그 개인이 '틀렸다'고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현실 속의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을 '시대정신'에 가둔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에서 벗어나는 개인을 무참히 짓밟는다. 현대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을 SNS와 같은 온라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본보기로 나머지 사회구성원들을 시대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강력하게 통제한다.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그리고 통설과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가 법류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며 그 통설을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생략)...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키려고 한다.
- 자유론 -


다시 인간실격으로 돌아와서, 요조는 이를테면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개인이다. 인간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요조가 해당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정신과 어긋나는 개인에게는 몇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는 것. 둘째, 시대정신에 어긋나게 살다가 사회의 응징(윽박지르는 것, 특정 행동 지침을 강요하는 것을 포함)을 받는 것. 셋째,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는 것. 

요조는 익살꾼 연기를 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것으로 사회에 섞여 살아간다

요조는 먼저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른바 '익살꾼'으로 자신을 변장시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끝까지 유지할 순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연기를 알아차리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요조는 더 이상 익살꾼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기 시작한다. 또 요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본적인 욕망이 결여되어 있다. 이를테면 요조에게는 식욕이 없어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늘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도 식사 때가 되면 억지로 밥을 먹어야 했다. 또한 자신이 속한 그룹의 구성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눈치를 보며 살살 움직이는 장면들을 소설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 순간 요조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이 속한 그룹이, 혹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지 찾아보며 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재미가 생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어 살던 요조는 어느 순간부터 방탕한 삶의 길을 걷게 된다. 이유는 간단했다. 술과 여자가 요조의 사회에 맞춰져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오는 긴장감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방탕한 삶을 살던 중 그의 친우인 호리키는 요조에게 '그렇게 살다 간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경고를 준다. 요조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세상이 아니라 네가 용사 하지 않는 거겠지'라고 맞받아 친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정신에 벗어난 개인에게 사회가 날리는 엄중한 경고를 목격할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시대정신을 운용하는 사회도 결국은 각 개인들의 집합임을 요조가 조용히 알려준다.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 사회가 용납하지 않아'라는 말은 어쩌면 아주 비겁한 말일 수 있다. 정말 이 세상이, 하늘이,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기 자신이 용납을 못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떠한 개인이 갑자기 '평화롭게 살고 있는 A 나라에 폭격기를 보내서 A 나라 전체를 폭격해 버리자!'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안된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유는?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일 것이다. 정말인가? 결국 '안된다'라고 판단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시대정신에 기초한 자신의 도덕관, 가치관, 세계관 등에 의거하여 나온 결론일 것이다. '시대정신'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 이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할지는 각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라는 비겁한 말에 숨어버리면 안 된다. '그런 짓은 내가 용서하지 못해'라고 말해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시대정신'이라는 이름 아래에 저질러진 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치당의 명령을 받고, 혹은 직접적인 명령을 받지 않아도 나치의 가치를 받아드려 저지른 전쟁범죄를 '그때에는 다들 그랬어.', '그런 시대였어'라며 정당화될 순 없다는 것이다. 더 가까운 예시를 들어보자. 이름하여 쌍팔년도 군대에서는 현재의 군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가혹행위, 성폭력 등의 온갖 부조리가 존재했다.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때는 그랬어.', '옛날 군대에서는 다들 그랬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시대정신이라는 그늘 아래에 정당화될 수 없다. 요조의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는 시대정신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비겁자들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요조는 인간실격 선고를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마지막으로 요조는 결국 정신병동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원하게 된다. 사회로부터 격리. 혹은 추방. 인간실격을 선고받은 것이다. 요조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평가는 '순수하고 착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러했다. 물론 요조의 행동이 미숙하고 현실도피적인 면모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만 요조는 당시 시대정신과는 어긋난 인물이었고, 사회에 섞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하게 된 것이다. 요조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듯, 세상 또한 요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요조와 같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을 지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과 다르더라도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의견을 듣고 생각을 들어주어야 한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의 생각, 의견, 가치관, 세계관, 행동규범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해서 이를 강제적으로 바꾸어선 안된다(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반대로 개인에게도 자신에게 그러한 권리와 자유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소설 속 요조는 자신의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그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억지로 사회에 맞추려 했다. 그 결과는 결국 파멸적이었다.


사실 '인간실격'을 '자유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정해진 시대정신을 강요하는 사회와 개인의 관점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색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위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와 해석이며 실제 작가가 의도했던 해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숨겨진 철학이 궁금한 자신의 최애 작품을 댓글에 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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