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 속에서 해야 하는 일
이번 최애로 보는 철학의 작품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다. 다가오는 4월부터는 귀멸의 칼날 3기가 방영된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대부분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정말 암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탄지로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인 혈귀에게 자신의 손아래 여동생인 네즈코를 제외한 어머니와 남동생 셋과 여동생 하나가 모두 끔찍하게 살해당하게 된다. 아버지는 이미 예전에 병으로 죽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탄지로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여동생인 네즈코 마저 식인괴물인 혈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탄지로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네즈코를 평범한 인간을 되돌리기 위해 혈귀를 물리치는 집단인 '귀살대'에 들어가게 된다.
위의 설명이 대략적인 귀멸의 칼날의 스토리이다. 귀멸의 칼날의 특징으로는 등장인물들 거의 대부분이 이런 슬픈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의 배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가족이 혈귀에게 다 죽었거나, 가장 아끼는 존재가 죽었거나 그렇다. 또한 혈귀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는 설정이 있어서 많은 등장인물들이 너무 허무하게 죽거나 큰 부상을 얻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등장인물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늘 수련을 하며,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자기 계발서보다도 더욱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대표적인 소년만화의 특징이기도 한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강한 빌런을 물리치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런 설정 말이다. 어쩌면 뻔할 수도 있는 그런 영웅이야기에 우리는 늘 가슴이 벅차오르게 된다. 왜 그럴까? 어쩌면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올바르고 정의로운 선택만을 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상은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가르치지만, (서양) 철학에서 그 뿌리를 찾아보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까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해당 사상을 체계적인 정리를 하고 따로 학파까지 만든 스토아학파의 스토아 철학이 그 시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제논의 역설로 유명한 제논이다. 제논의 22살 이전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아마 꽤 부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역상이 되었고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물건을 싣고 이동하던 배가 난파를 당한 것이다. 타고 가던 배가 난파당하고 제논은 아테네에 불시착한다. 하지만, 제논은 철학의 성지, 아테네에서 철학을 배우게 되었고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부유했던 제논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제논은 자신이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그 정신이 스토아 철학에 그래도 전해져, 스토아학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 철학은 후대로 전해지고 전해져서 나중에 철인왕으로 불리게 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까지 전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최고 전성기 시대인 로마 팍스나의 마지막 황제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명성과는 달리 아우렐리우스에게 주어진 상황은 정말 최악의 최악이었다. 즉위하자마자 역병이 돌아 로마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게 되고 지나치게 넓어진 로마제국의 전선을 나누어 담당하던 자신의 형제이자 공동황제까지 이 역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국경선 이곳저곳에서 이민족의 칩입이 계속되었고 대부분의 자녀마저 어린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홍수, 가뭄, 지진, 내부 반란까지 일어났다.
이러한 최악의 최악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다섯 현명한 황제인 '오현제'의 칭호를 얻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이민족이 칩입하면 최선을 다해 막았고 역병과 가뭄, 대홍수 등 여러 재난이 닥치면 최선을 다해 국정을 돌보고 백성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아우렐리우스가 직접 쓴 책인 '명상록'에서도 나와있다. 그는 다가올 미래는 내가 정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운명이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운명이 나에게 다가와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잘 대처했고 오현제로 칭송받게 되었으니 신뢰할 만한 이야기이다.
귀멸의 칼날 초반 주인공인 탄지로와 상당한 검술 실력자인 기유가 만나는 장면이 있다. 기유는 이미 혈귀가 되어버린 탄지로의 동생 네즈코를 죽이려 하지만 탄지로가 죽이지 말아 달라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부탁하는데 여기서 기유가 하는 말은 바로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쥐어주지 마라"며 화를 낸다. 이를 스토아 철학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여동생의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넘겨준 행위는 사실상 운명에 맞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피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운명에 몸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기유가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라고 화를 낸 것은 탄지로에게 주어진 운명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기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탄지로는 도끼를 들고 기유에게 덤비게 되고 어찌어찌 자신의 여동생을 구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운명에 맡기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이후 탄지로는 여러 역경을 겪게 되지만 매 순간 포기하거나 운명에 맡기는 행동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당장 처한 그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고 실행에 옮긴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도 옳은 일을,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을 선택한다. 이는 탄지로뿐만이 아니라 무한열차에서는 렌고쿠 쿄쥬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렌고쿠 쿄주로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강자는 약자를 지킨다"라는 정의로운 행동을 선택한다. 귀멸의 칼날뿐만 아니라 소년만화 형식을 지향하는 많은 만화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고, 여러 옛날이야기, 마블의 히어로 영화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진부한 형식에도 여전히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매 순간 도덕적이고 올바른 선택만 하는 사람을 호구다, 바보다, 답답하다고 욕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맞는 행동이고 우리가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해야 할 정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스토아학파의 여러 철학자들도 위와 같은 행동을 했다. 언제나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을 부패한 정치인이 좋아할 일이 없기에 많은 여러 스토아학파 출신의 정치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카토라는 인물이 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로마의 공화정을 파괴하고 권력을 독차지하려던 카이사르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불리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끝까지 카이사르와 대적을 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그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그 신념을 버릴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귀멸의 칼날 이야기는 솔직히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중요한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 많이 하지 못했는데, 한 번 귀멸의 칼날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의지'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려는 의지'를 실천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빗대어 다시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후에는 우리가 왜 이 애니메이션에 열광을 했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스토아 철학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s://brunch.co.kr/@idaigu/43
https://brunch.co.kr/@idaigu/44
위 글들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위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와 해석이며 실제 작가가 의도했던 해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숨겨진 철학이 궁금한 자신의 최애 작품을 댓글에 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