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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 부탁해!

7월-8월.

by 롤빵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아이는 생일파티를 기점으로 동네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단짝을 집에 초대하는 일도 잦았고, 아직은 친구 대하는 게 어색하지만 그래도 많은 발전이 생긴 것 같았다. 그건 부모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분리 불안을 극복했어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마음가짐의 변화'라고 답하고 싶다.


전에는 아이를 위해 당연히 했던 집안일과 교육 등, 놀아주는 일상 모두가 다 버거웠다.

나는 천성이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심 있는 것만 파고드는 성향이었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삶은,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싫어하는 많은 일들을 묵묵히 해내야 했다.

그 사실을 육아 9년 차인 이제야 받아들이다니..


삼시세끼 차려먹는 것도, 끝없이 노는 시간도, 오늘은 뭘 할까 약속을 잡고 주변 아이들과 다니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마음이 바뀌니 아이도 바뀌는 것 같았다.


물놀이를 계획하고, 매일 뭘 해 먹을까 같이 이야기하고, 오늘은 무슨 박물관에 가볼지 생각하고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정말 그게 다였던 것 같다.


나는 전에 살던 동네친구부터, 어린이집, 초등학교 친구 가릴 것 없이 물놀이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 친구도 있고, 언제나 반가운 친구도 있었다. 아이는 그때그때 반응이 달랐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물놀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는 가족휴가로 떠난 삼척 여행을 꼽았다.






우리가 간 곳은 삼척 장호해변이었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명처럼 해변 스노클링을 기대하며 갔던 작은 해변가 마을.


그러나 34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 그곳에 도착했을 땐 우린 이미 지쳐있었다.

8월 끝물, 한산한 해변가 작은 민박에서 우린 2박을 묵기로 했다.


장호 해수욕장


살이 데일 것 같은 두려운 날씨에도, 2층 민박집 사이로 보이는 청량한 바다는 우리를 설레게 했다.

워낙 물개라, 나와 딸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도 방학 마지막 물놀이니까 피날레를 장식해야지!'


그렇게 별 기대 없이 바다에 눕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

에어컨이 주지 못한 냉기가 온몸을 타고 돌았다. 후텁지근한 열기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얼음식혜에 떠 있는 밥알처럼 헤롱 댔다.


'와 - 이게 진짜 동해안이지!'


머릿속까지 비워낸 냉기가 더위를 완전히 몰아갔다.

운전에 지친 남편은 끝까지 바다에 들어오길 거부했지만, 그날 바다에 안 들어온 건 정말 실수였다.

3박 4일의 일정 중 가장 쨍한 날씨는 그날뿐이었으니까 ㅋ


그때부터 아이와 물놀이가 시작됐다.

맑고 투명한 물속 돌 근처엔 작고 귀여운 물고기들이 정말 다양했다.


'이래서 한국의 나폴리라고 했구나!'


해변의 돌들


적당한 크기의 바위가 해변에 몇 군데 있었는데 그 포인트마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도망 다녔다.

한번 쫓기 시작한 시선은 우리를 끝없이 항해시켰다.

그 뒤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스노클링 하며 첫날을 보냈다.


예쁘고 시원한 바다에 몸을 담갔다는 사실이 실로 행복했다.






둘째 날이 되자 서서히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늦여름 장마라도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흐려지기 전에 들어가자!'


오늘은 남편과 함께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곳 큰 바위사이엔 큰 물고기들이 오갔다.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날렵한 녀석들 덕분에 무서운 줄 모르고 수영했다.

주변엔 물고기를 잡는 아빠들이 여럿 보였다.

바위 사이사이에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물고기들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아빠들..

잡은 물고기를 흔들어 보이는 아빠들의 의기양양함에 남편도 합류했다.


'남편! 힘을 내~!'


마음속 응원처럼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옆집 아빠는 우리에게 물고기를 한 마리 동냥했다.

그렇게 자연산(?) 열대어 구경도 하며 아이와 바닷가에서 논지 1시간이 좀 지났을까.

갑자기 여기저기 천둥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날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깨끗했던 물속은 어느새 혼탁해졌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멀리 스노클링을 나갔던 사람들과, 보트도 사라졌다.


굵어진 빗방울이 따가웠다.

어쩐지 바다 물놀이가 더 운치 있게 느껴졌다.


자유로웠다.

해방된 기분이었다.

쾌감이 있었다.

방학 동안 애쓴 우리에게 주는 상 같았다.


우리는 끝까지 해변에 남아 물고기 탐방을 했고, 굵어진 빗방울을 맞으며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자유로운 물놀이를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명장면이었다.


그렇게 온몸이 젖어서 돌아온 우리는 수영복 속 산더미 같은 모래를 털어내며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셋째 날은 속초에 있는 리조트에서 유수풀 등 소소한 물놀이로 마무리했다.


3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물놀이를 했는데,

별 기대 없이, 별 준비 없이 훌쩍 떠난 장호해변에서의 물놀이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여름방학은 끝나가고 있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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