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9월, 2학기 시작.
방학이 지나고 현저히 좋아진 아이는 문제없이 등교했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면 담임선생님께서는 무조건 체육 관련 뛰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 긴장을 풀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걸려오던 전화는 여전했지만, 항상 헉헉대며 전활 걸거나 전화를 건너뛰기도 했다.
2교시까지 연달아 다목적실에서 뛰는 수업일 때면 전화도 후다닥 빨리 끊었다.
아이 상태가 호전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침에 단짝이라도 만나면 내가 같이 등교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에서도 단지에서도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단짝이 9월 말에 전학 간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단짝의 전학은 당장 딸아이 등교에 큰 자극이 될 것 같았다.
생일파티부터 어떻게 친해진 사인데..ㅜㅜ
첫째가 4학년쯤 되면 초등학교만 있는 우리 동네에서 중, 고등학교가 있는 다른 학군지로 이사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4학년 오빠가 있던 단짝 집도 마찬가지였던 것.
분리불안의 원인이 단짝의 부재는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한 상태에선 여러 친구를 사귀는 게 자연스러운 일. 차분하게 마음을 비우니 단짝을 대신할 다른 친구가 떠올랐다.
아주 가~끔 하교할 때 문구점에서 인사를 했던, 게임 좋아하는 여자친구였다.
다른 단지에 살지만 같은 반이었고, 게임취미가 같았고, 살갑진 않아도 문구점 때문인지 은근 딸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맞벌이 부모님이 계셔서 할머니가 하교시키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오고 그날따라 할머니가 오시지 않아 대신 우산을 사서 보냈던 적이 있었다. 상대 어머니가 고마워했는데.. 우연히 만나 커피 한잔을 마셨던 그런 기억이 있었다. 아이 마음속 1순위 친구는 아니어도, 상대부모님과 대화가 편안했으므로 맞벌이라도 내가 잘 배려하면 아이와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단짝이 곧 전학 갈 거란 소식을 조심스레 전했다.
내 예상과 달리 아이는 새삼 쿨~하게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너무 한 명과 깊이 사귀면 헤어질 때 힘들 수 있어서 더 많은 단지 아이들과 놀 수 있도록 간식도 싸들고 놀이터에 나가 아이가 편안히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울면서 문구점에 달려왔다. 단짝과 싸우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단짝이 방청소 하기 싫어 엄마와 다투다가 우리 집과 비교하는 발언을 했고, 상대 엄마가 나를 ‘나쁜 엄마네’라고 말했다는 것. 딸은 단짝이 스스로 잘못한 일로 왜 우리 엄마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화를 내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상대엄마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서로 잘 지내는 이런 시점에... 같은 엄마라면 충분히 이해할 일로 서운한 소릴 듣게 되니 마음문이 닫혔다.
하지만 그래도… 단짝 덕에 딸이 등교를 잘하게 된 고마움이 크지 않나.
고작 초2짜리 어휘력에 둘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어떻게 조율할지 고민했지만, 딸 입장에서 단짝이 괘씸하게 느껴지는 상황이라 정리는 필요했다. 나는 놀이터에 있던 단짝에게 방청소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잘하는 게 좋고, 지금 말한 것은 조금 실수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초2가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분위기로 파악하는 아이들은 눈치가 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소리를 가장 싫어하는 나였기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유튜브 계정 문제로 싸우게 되었다.
딸이 유튜브를 잘 운영해 가며 나름의 노하우로 영상편집등을 단짝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먼저 시작한 딸의 계정 이름을 단짝이 너무나도 비슷하게 따라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나는 아이들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길 기다렸지만, 적반하장으로 나온 단짝 태도에 딸의 언성도 높아지며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까지 진행되자 하는 수 없이 단짝 부모님께 전활했다.
단짝 부모님은 평상시 자기 딸이 유튜브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계정이 뭔지도, 그 안에서 무슨 영상을 만드는 지도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상태셨다. 아마 유튜브 운영을 많이하고, 아이돌 굿즈를 파는 문구점집 딸과 어울리는걸 은근히 싫어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과를 받고 단짝계정은 삭제됐다.
계정삭제는 아이 입장에선 꽤 충격일 텐데, 이런 일이 생긴 김에 없애버리신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일 이후로 은근히 단짝은 딸과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단짝이 다른 친구와 논다는 말만 들려왔다. 먼저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었던 딸은 또다시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가 겪어낼 정도의 갈등 같았다.
딸이 스스로 다른 친구를 찾는 적극성을 발휘하길 바랐다. 그렇게 단짝과 마음의 거리가 생길 때쯤.
단짝은 전학을 갔고 내 우려와 달리 아이는 이미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한 상태로 보였다.
게임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와 점심시간 누가 빨리 뛰나 경쟁을 하기도 하고 게임에서 만나 놀긴 했지만, 그 관계가 오프라인 만남까진 이어지진 않았고 그렇다고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친구에 목메진 않아 다행이었다.
아이들 친구관계 개입은 조심스럽다.
3-4학년만 돼도 자기 취향의 친구를 알아서 사귀기 때문에 너무 크게 관심 쏟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약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됐음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등교거부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하듯.
나는 아이가 아침 등교 때 교실 앞까지 같이 가자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편안히 응했다.
주변 아이들이 쳐다보고, 교직원들도, 봉사자들도 우리 모녀를 모두 알게 되는 상황이지만 괜찮았다.
그래도 등교는 멀쩡하게 잘하는 거니까.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엄마도 성장한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