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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치며.

12월_담임선생님과 상담.

by 롤빵



담임선생님과 처음이자 마지막 상담을 했다.


1년간 선생님을 정식으로 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등교할 때마다 눈인사를 하며 지냈던 날이 많아 익숙하고 편안했다.


보통 한 학기에 1번은 상담공지가 왔지만

학교생활에 대한 상담은 등교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나 생각할 일이었다.

계속 그렇게 미루다 보니 어느새 12월..

겨울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교생 1200명 이상되는 제법 큰 초등학교에서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다고 했을 때,

겁 많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도 잠시.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분리불안 증세를 가장 가까이 체감하시고 섬세한 관심을 표현하셨다.


나는 그간 잦은 결석과 지각, 조퇴를 시켰던 학부모로서 죄송한 마음반.

비밀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반의 마음으로 계속 상담을 미뤄왔었다.

그러나 한 학년이 끝날즈음, 내 생각대로 분리불안은 많이 해소된 상태인 건지.

학교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예상대로 학습태도나, 교우관계 등을 아주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다.


학습태도에 있어선 엄마와 헤어지면 눈빛이 딱 변하면서

엄청난 적극성을 보이는 아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딸은 연기도 발표도 아주 적극적으로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였었고,

지금껏 어떤 기관에서든 선생님들은 아이가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수업에 잘 참석한다고 말하셨었다.


그러나 집에서 내가 본 딸의 모습은 언제나 불안하고 시작하기 전부터 겁먹고, 부담을 많이 느끼는 상태였기에. 일종의 사회생활로 평가된 기관에서의 모습은, 여전히 '긴장 중'이라는 뉘앙스로 이해됐다.


교우관계에선 아이들 머릿속에 딸이 어떤 아이로 자리 잡았는지 의외의 지점을 캐치해 주셨다.

요약하자면 딸은 친구들 머릿속에


지각하는 애.

엄마와 교실까지 등교하는 애.

쉬는 시간마다 자리에 없는 애.

점심시간엔 가장 수다스러운 애.


로 기억되고 있었다.


여러 찔리는 구석도 있지만, 의문이 생기는 구석도 있었다.


첫 번째, 지각에 관해선 아이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이미 해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1년 가까이 지각이 잦았던 딸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땐 절대 지각은 시키지 않겠다 마음속 다짐을 했다.


두 번째, 교실 앞까지 같이 등교하는 것도 이제 상태가 많이 호전됐으니,

교문 앞으로 변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머릿속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지만,

세 번째, 쉬는 시간에 자리에 없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내게 전활 거는 버릇은 있지만,

1분도 안 돼서 끊었는데 왜 자리에 없었던 거지?


설마 했던 생각이 물꼬를 텄다.


유튜브...!




아이는 1학년 중반에 핸드폰이 생겼고, 학교에서 전화하는 버릇은 2학년에 생겼다.

유튜브는 예전부터 봐왔었지만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할 수 없다는 지침이 있기에

1학년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핸드폰은 안 가져가는 날도 부지기수.


그런데 분리불안 이후로 허용된 핸드폰 다운타임이 오전 10시쯤 해제되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하교한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딸은 모든 걸 실토했다.

역시나 예상적중.


아이는 나와 전화를 후다닥 끊고 화장실에서 유튜브를 봐왔고,

어쩔 땐 다음 수업시간에 늦은 적도 있었던 것.

그날부로 다운타임 해제는 하교 이후로 미뤄졌다.


선생님은 딸이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기만 해도

특별히 누군가와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알아서 무엇이든 묻거나 관심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교실에 그냥 앉아있으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아이.


"너 친한 친구 있잖아, 걔네랑 놀면 되지."

"학교에선 안 놀아."


아이는 같은 반이자 단지친구인 여자아이 1명, 남자아이 1명과 최근 친해졌지만

아직 끈끈한 관계는 아니었다.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수업시간에 많이 그렸어."


수업시간엔 실컷 그림 그리고, 쉬는 시간에 할 게 없어 심심하다니.. 공부는 하는 거냐?

그리고선 점심시간은 1등으로 달려가 선생님 앞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조잘조잘 잘도 떠드는 아이.

(보통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과 밥을 먹는 시간이 불편해서 그런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각하며 아이 수다에 장단 맞춰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점심시간엔 무수히 수다 떨다, 밥을 먹고 나면 도서관에서 혼자 책 보고 교실로 돌아가는 코스로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 보통 그렇게 수다가 많으면 쉬는 시간에 친구랑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독립성향은 타고났기에 점심시간에 혼자 노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진 않았지만..

수업시간 외에 모두 자리를 비우는 아이로 기억되는 것은.

호감이 생기다가도 없어질만한 상황이라는 것.


2학년까진 괜찮지만, 3학년이 되면 여자아이들은 특히 무리를 지어 남녀성비로 대치도 심해지고.

무리에 끼지 못하면 1년 내내 겉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상태를 유지해선 안될 거라는 조언이셨다.


아이를 내 생각대로 이해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다만, 2학년 저학년들도 이렇게 서로를 관찰하고 판단하는데..

정신 차리고 3학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아이 교우관계가 삐그덕 대기

십상인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상담 안 했으면 어쩔?


분리불안은 호전됐지만, 교우관계 예습이라는 숙제가 생긴 12월이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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