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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22. 2024

아버지가 아프다

<10주차 임상 기록>

  어릴 적 소아과 병원에 가면 간호사 선생님은 먼저 볼기를 찰싹 때리고 주사를 놓았다. 통증을 다른 통증으로 덮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 육신의 고통만 그러한가. 세간에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고 노래한 유행가도 있다. 더 큰 무엇 앞에 작은 것은 자연스럽게 묻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프다. 장기 한 곳이 기어이 손쓸 수 없게 고장 났다. 지난 몇 년은 약으로 버텨왔다. 이제 최종 장,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대학병원의 담당 의사가 다음 진료 날짜에는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단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내외는 서로를 향한 오랜 원망이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쯤까지 수입이 좋았다. 큰 건설회사에서 홍보실장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았다. 그것 말고도 등단 작가로서 이곳저곳에 글이 실렸다. 그러다 외환 금융위기가 터졌다. 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어머니에게 돌렸다. 당신이 열심히 번 것을 아내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어머니는 억울했다. 갈수록 괴팍해지는 남편에게 그 원망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병세에 대해 들었다. 보호자 대동에 관한 얘기도 그때 들어 알았다. 언젠가 닥쳐올 일이어서 아주 몰랐던 건 아니다. 솔직하게는, 그 짐이 버거워서 외면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역정을 냈다. 왜 우리 집 어려운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장남인 내 몫이냐며 성토했다. 아버지 몸 아픈 것보다 돈 걱정이 먼저 되는 현실이 참담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것을 아내와 공유했다. 아내는 일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가 곧 되돌아왔다. 혼잣말인지 무언가 계획 같은 것을 중얼거렸다. 나는 능력 어중간한 사내를 만나 없는 집으로 시집오게 한 것을, 그것에 더해 시부모 노후 걱정까지 한게 한 것에 새삼스럽게 사과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지, 아내가 농반진반으로 받는다. 장남인 남편도 고생이 많수, 뒤에 붙인다.


  회사에 휴가원을 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 뒷좌석에 태워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아버지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일주일에서 열흘 입원이 필요하단다. 그다음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정해 일주일에 두어 번씩 다녀야 한다. 진료실을 나와 입원 수속을 밟았다. 입실까지 시간이 많이 비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입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다시 챙겨 오기로 했다.


  본가 거실에 밥상을 펼쳐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셋이 밥을 먹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식사에 문제가 없었다. 어머니가 엊저녁 끓인 김치찌개, 방금 부쳐낸 달걀말이, 밑반찬으로 진미채, 콩나물무침, 고추부각을 곁들였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어려서부터 먹던 엄마 반찬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후식 커피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까짓것 이따 병원 들어갈 건데, 하며 어머니는 커피포트 전원을 올렸다.


  아버지가 커피 잔을 불며 얘기했다. “나는 실은 오늘 Hoon이도 당신도 병원에 같이 안 갈 줄 알았어. 그러면 의사에게 나 이거 고쳐서 살면 얼마나 더 사는 것이냐, 괜히 아까운 돈 써가며 병원 좋은 일만 하다 세상 떠나긴 싫다, 남은 여생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누리다가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 말할 셈이었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전개인데 당신한테도 아들한테도 너무 감사해.”


  다시 병원으로 가 입원 절차를 마무리했다. 아버지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차, 환자가 편하게 신을 슬리퍼를 깜빡했다. 또 병원 규정 상 보호자 침구류는 제공되지 않는단다.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집에 다녀와야 한다.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어머니와 병실을 나섰다. 차에 올라 어머니한테 며칠 전 전화 통화에 대해 사과했다. 어머니는 동문서답하듯 말했다. “엄마 이제 아버지 잘해줄 거야. 엊그제 너한테 아버지 병원 같이 가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그날 밤에 아버지랑 손잡고 얘기했어. 우리 지난 세월 서로 마음에 쌓은 것 다 풀고 화해하자고. 엄마는 젊어서 아버지가 엄마를 그렇게 아껴줬는데, 생각나서 울었어. 너희 아버지 참 불쌍해. 그날부터 엄마, 아버지랑 잠도 같이 자기로 했어. 아버지가 몸 안 좋아지니까 건넌방에서 혼자 자기가 무섭대. 아버지 병원 가면 말도 잘 듣기로 했어.”


  본가에서 한 번 더 짐을 꼼꼼히 챙겨 병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 뱅킹을 써서 수중에 얼마 없는 비상금을 어머니 통장으로 송금했다. “엄마, 일단 병실에서 더 필요한 것 있으면 이걸로 사. 이따 밑에 식당에서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 사드시고. 저녁때 전화 드릴게.” 병원 본관 앞에서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한 아내와 동분서주했던 하루 일과를 나누었다.


  연초 직장에서 내게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깟 일에 마음 휘둘릴 여유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주어지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하고, 어떻게든 벌이해야 한다. 세상에 가족 아픈 것보다 더 중대하고 심각한 일은 없다. 나머지는 다 그것 밑으로 고개를 낮춘다. 장남으로 태어난 나의 원죄, 그것 역시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죄 없는 아내를 위해 그녀를 최우선으로 살피겠다. 내 남은 삶 동안에 차근차근 갚아나갈 셈이다.


  아버지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말처럼 불쌍한 사람이다. 재능과 실력에 비해 세상으로부터 합당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처와 자식이 우선이라 제대로 몸 돌보지 않았다. 돈 들어갈까 무서워 어디 아프면 들입다 진통제만 털어 넣었으니 그 몸이 어떻게 배겨 날까. 마침내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가 언젠가 엄습할 마지막 순간에 더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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