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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pr 05. 2024

사소한 거에 빈정상하는 법이거든

<12주차 임상 기록>

  엊그제 팀에서 점심을 먹는데 말이야. 나 제대로 기분 잡쳤잖아. 사람이 의외로 별 거 아닌 일에 빈정이 확 상하거든. 함 들어봐.


  팀원끼리 점심을 먹으러 갔어. 나 포함 원래 네 명이었는데 이번 주부터 한 사람이 늘었거든. 나 있는 팀에 오게 된 나이 많은 선배가 있어. 나랑 그럭저럭 사이는 괜찮은 편이야. 그건 그렇고.


  알다시피 나 금년부터 팀장 내려놓고 본부 옮겨서 지금 팀으로 왔잖아. 새로 생긴 팀이라고도 얘기했지? 위에 나이 많은 팀장 있고, 경력 순으로만 보면 나, 지금 팀 생기기 전부터 이쪽 업무 오래 해왔던 나보다 몇 살 아래 차장, 그 밑에 과장 하나까지 올 남자. 나 빼고 셋은 계속 지금 본부 소속이었고. 그러다 나랑 같은 피디 직군 선배 하나가 갑자기 왔거든. 그래서 환영회 겸 점심 자리 급조된 거였어.


  지난 석 달, 왐마 그러고 보니까 벌써 시간이 그만큼 지났네. 나 많이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해왔거든. 팀장 하면서 그 자리에 도취된 적도 없었지만 일말의 자존심까지 다 놓고 겸손하게. 그야말로 초심자의 마음으로 했었어. 새 본부 왔다고 조카뻘 되는 타 부서 직원들한테도 고개 숙이며 인사하고 말이야, 잘 부탁드린다고. 나도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을 정도였어.


  연 초 인사발령 직후에 겪었던 불안은 새삼 얘기하지 않을게. 근데 나 빼고 팀장, 팀원 셋은 멀든 가깝든 같은 본부 소속이었고 나만 피디 직군으로 다른 본부에서 왔잖아.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질감이 있더라고. 그 셋은 저들끼리 최소한의 동질감이 있었겠지. 게다가 지금 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일 오래 해온 그 차장, 걔가 나를 경계하더라고.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일만 빈틈없이 잘 하자, 그래왔지 뭐. 그래도 업무적으로든 아니면 이따금 있었던 회식이나 식사 자리든 묘한 소외감이 들더라. 그것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왔어.


  그래서 엊그제 팀원 다섯이 점심 먹겠다고 식당에 들어간 거야. 뭔 점심부터 숯불에 고기인가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어. 다섯 명 자리를 안내받는데 자리가 이렇더라고.

  다섯 명이라고 하니까 4인 테이블에 급하게 두 사람 앉을 만한 걸 붙이더라고. 불판은 없어. 딱 봐도 불편한 자리가 보이는 거야. 그래, 사소한 희생 한 번 하자, 마음먹고 통로 쪽 2인 테이블 한쪽에 내가 먼저 앉았지. 내 자리 뒤는 수시로 자동문 열리는 식당 입구였어. 어수선하고 바람 슝슝. 그것까지 내 몫으로 하자, 했지.


  그리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앉는데 아래 그림처럼 앉더라고.

  나 앉은 다음에 팀장이 저 자리에 앉더라. 뭐 좌장이니까 저 자리가 상석이고 저게 맞지. 그리고 이 식사의 취지이자 주인공인 피디 선배가 팀장 맞은편에 앉았고. 그것도 상식에 부합하지. 그리고 얼른 막내 과장이 저 자리에 앉더라고. 다른 의도가 아니라 아마 자기가 고기 열심히 구우려고 그랬을 거야. 그 친구 평소 품성을 봐서 알아.


  그리고 문제의 그 차장이 마지막에 어디 앉을까 눈으로 고르더니 저 자리에 앉더라고. 일단 욕부터 시원하게 한 번 박고 갈게. ㅅㅂ! ㄱㅅㄲ가!! 아니, 보통 저렇게 쪼개진 테이블에 다섯 명이 앉으면 자칫 소외될 한 사람 배려해서 한 테이블에 셋, 다른 테이블에 둘 이렇게 앉지 않아? 차장 ㅅㄲ가 마지막에 저 자리에 딱 앉고 배치가 저렇게 완성되더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 중에 누구도 이렇게 앉으면 Hoon 팀원이 좀 그러니까 한 사람 옮겨 앉읍시다, 하는 인간이 없더라고. 그림 보면 알겠지만 저 상태에서 움직일 사람? 차장 ㅅㄲ밖에 없어. 과장이 움직이면 차장 ㅅㄲ 지가 고기 구울 거 아니잖아. 그런 거 기꺼이 할 재목도 아냐. 아무리 나랑 어색하고 불편해도 인간적인 도의가 있지, 저건 아니잖아.


  그래 이깟 점심밥 대수냐. 후루룩 한 끼 때우고 일어나면 그뿐이지, 싶었어. 술도 두어 병 시키더라고. 내가 반주 참 좋아하는 거 알지? 어릴 때 식당 옆 테이블에 아저씨들이 대낮에 반주 곁들이는 거 보면, 저렇게까지 술이 맛나실까 싶었는데 이제 내가 그러고 있더라. ㅎㅎ.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먹는 반주는 절대로 반갑지 않지만 어쩌겠어 회사원이. 대세에 따라야지.


  팀장이 호기롭게 맥주 한 병을 까더니 앞에 선배에게 한 잔 받으시죠, 하면서 따르더라고. 둘이 가볍게 덕담 나누는 것 들어보니까 대학 동문 지간이더라. 속으로, 서로 의지되고 좋으시겠수, 했지. 그러고 팀장이 다음 술잔을 찾아서 맥주병 입구를 겨누는데 바로 옆에 내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90도 홱 돌려서 차장 ㅅㄲ한테 따라주더라고. 엥? 내가 아니고? 경력 연차로 보나, 나이로 보나, 자리 배치에 의한 손목 스냅만 돌리면 되는 방향 제어의 편의성을 보나, 내가 받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았거든. 그걸 굳이 몸을 돌려서 차장 ㅅㄲ 술잔부터 채워주더라고.


  여기서 ‘삔또’가 확 나갔어. 그래, 새 부서 맡은 팀장이 저 차장 ㅅㄲ한테 업무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는 거 알아. 또 회사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니까, 차기 팀장이 차장 ㅅㄲ가 될 수도 있고, 그것까지 대비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아, 팀장이 나이가 많거든. 다른 데 어디 가느니 이 팀에 그냥 남는 게 낫겠다 싶을 수도 있잖아.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지. 역전된 술잔 순서 적용하는 건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잖아. 그때 가서 그러는 거야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 나도 백번 이해하지. 어쩌면 팀장 된 차장 ㅅㄲ한테 나부터 두 손으로 술 따라주고 있을 수도 있어. 회사 생활이 그런 거지 뭐.


  팀장이 그다음에 다시 몸을 돌려서 나한테 술 받으라 권하더라고. 기왕 순서 개판된 김에, 아, 내 입장에선. 팀장 순서도에는 아니었나 보지, 그런 김에 막내 과장부터 따라주라고 손짓으로 양보의 의사를 표시했어. 저쪽부터 주라고. 그랬더니 그러지 말고 먼저 받으래. 뭐야, 그 순서도 왜 그 모양이야. 알았다, 하고 받았어. 막내 과장까지 술잔 채우고 자, 환영합니다, 하면서 짠 부딪치는데 나는 또 왜 이렇게 머냐. 엉거주춤 일어나서 반쯤 리모컨 건배 했지 뭐.


  고기가 익으니까 과장이 작은 접시에 몇 점 덜은 걸 선배가 전달해서 내 앞에 놔주더라고. 와, 기분이가 나쁘려니까 이것도 싫더라. 내가 무슨 견공도 아니고, 옛다 너도 먹어라, 접시 놔주면 코 박고 먹는 그것처럼 이 상황, 저 행위들, 내 반응이 너무 싫은 거야. 저들 넷은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젓가락으로 불판에서 집어 따뜻한 고기 먹고, 나는 전용 밥그릇에 식은 것 먹는 무엇처럼 외딴 자리에서 허기 채우는 이 작태가 울화가 치밀더라고. 알아, 내가 많이 예민한 걸 수도 있다는 거. 감안하고 들어주라.


  그 와중에 옆에 선배가 나를 쿡 찌르더니 한 마디 하는 거야. “Hoon아, 너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먹냐?” 그 얘기 듣는데 속에서 뭐가 탁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 있지. 내가 이 선배랑 친분이 아주 없진 않은데,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거 알아. 근데 사람이 좀 세심한 맛은 없어. 그 말 듣고 내가 그랬어. “선배님, 자리를 한 번 보세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고 있겠냐고요. 저 지금 마치 고매한 네 분 식사하시는데 동석하면 안 되는 위치인 제가 억지로 한 자리 구석에 붙어서 동냥밥 빌어먹는 것 같은 기분 참으면서 앉아 있어요. 제 딴에는 희생하고 양보한 건데, 왜 야구선수 오타니가 야구장에서 휴지 줍는다면서요. 저도 이런 사소한 선행이 언젠가 큰 복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내 딴에는 많이 참다가 튀어나온 거였어. 지난 석 달간 누구보다 겸손하게 지내왔는데 도무지 못 참겠더라고. 사람을 소외시키고 무시해도 정도껏이지, 어떻게 저럴 수들 있나. 내가 많이 민감한 것도 전제에 두어야 하겠지만, 의도 없이 한 것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더 빡치지 내 입장에선. 그야말로 무신경하게 했다는 거잖아. 나는 그런 처우받아도 된다는 얘기잖아.


  그 뒤로 식사 분위기 어땠냐고? 몰라 ㅅㅂ. 저 넷이 나한테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들었는지, 아니면 이상한 대목에서 갑툭튀 골부리는 예민 보스 놈 하나 납셨네, 했을지. 나로선 알 게 뭐야. 나는 술 입에도 안 댔어. 마시기 싫더라고. 기분 잡쳐서 마시는 술은 극약보다 나쁜 독이라고 생각하거든. 식사 마지막에 팀장이 그제사 마음 쓰였는지 “Hoon 팀원 자리가 불편해서 좀 저기 했겠다.” 이러더라. “아니요, 뭐 익숙합니다.” 했더니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가 너무한 사람들이 된다나 어떻다나. 그걸 아는 분이, 아는 분들이 이렇게 합니까. 그리고 차장 ㅅㄲ 너! 네가 나빴어, 짜샤. 나중에 나이 많은 팀장 밀어내고 팀장 되면 제발 나는 다른 팀으로 뻥 차버려라. 나는 평소에도 너랑 얼마든지 호의적으로 지낼 의사를 비쳤는데 네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거 아니겠냐?!


  나도 참 회사 생활 피곤하게 하지? 좋은 게 좋은 걸로 좋게 좋게 넘기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날 오랜만에 본성 나오고 말았네. 세 달이면 많이 참았지, 한 번은 나도 발끈하고 싶더라고. 다만 신사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잘 된 건지는 모르겠어. 몰라, 또 그랬다고 뒷말들 하고 다니면 그것도 내가 감당해야지 뭐. 이런 생각도 들더라. 해 바뀌고 인사이동 되면서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수양이 멀었나 봐 아직. 누구 얘기처럼 고생을 덜 해서 그런 건지 잘 안 되네. 글고 이 얘기를 퇴근하고 아내한테 했더니 나한테 그러더라고. 호의도 알아주는 사람들한테나 해야지, 이제 그러지 말라고. 그냥 그 사람들이랑 다음에 또 비슷한 경우 생기면 그냥 오빠 자신만 챙기라고.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 됐네. 너무 내 얘기만 길게 했다, 쏘리 쏘리! 넌 뭐 잘 나가니까 가엾고 못난 친구 위로 한 번 해준다 생각해라 야. 대신에 다음에 만나면 내가 한 번 쏠게. 우리 예전에 갔었던 그 갈매기살 집 한 번 가자. 그 집 된장찌개 술밥 죽이는데 갑자기 군침 도네. 그래, 어여 들어가, 다음에 보자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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